[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술주정처럼 밥도 과식하면 밥주정을 할까?
[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술주정처럼 밥도 과식하면 밥주정을 할까?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 승인 2018.08.0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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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 프로그램이 있다. 이영자 씨의 음식과 물아일체가 된 듯 한 혼신의 먹방은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방송을 보면 ‘이영자가 밥주정을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말 밥주정이 있을까?

주정(酒酲)은 보통 술주정이라고 사용되는데 과음을 한 이후의 증상을 말한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과식을 하고 난 후 술에 취한 듯 한 말과 행동을 해서 술주정과 빗대어 밥주정이란 말을 만들어낸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밥은 단순한 쌀밥이 아니라 다양한 음식을 포함한다. 인터넷 사전에는 밥주정이 북한에서 밥투정을 놀림조로 일컫는 말이라고 나온다. 사용되는 의미는 다르지만 원래 없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음식을 배불리 섭취했을 때 나타나는 생리적인 변화는 다양하다. 보통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울적하며 짜증이 나면서 예민해진다. 반대로 배가 부르면 기분도 좋아지고 기운도 난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배불리 먹으면 포만호르몬이 분비된다. 식사를 충분히 하면 지방세포에서는 포만호르몬 ‘렙틴’이 분비된다. 렙틴은 뇌의 시상하부 수용체에 신호를 전달해서 포만감이 생기게 만들고 이때 식욕이 억제된다. 비만일수록 지방세포가 많기 때문에 렙틴의 혈중농도가 높다.

몇 가지 연구논문을 살펴보면 렙틴은 단순하게 식욕만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은 쥐에게 렙틴을 투여했더니 항우울제나 항불안제와 같은 약물유사효과가 있었다. 기억력도 향상시켰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보면 배불리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비만할수록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비만한 경우 더욱더 약물유사효과가 높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인슐린의 영향이다. 혈당치가 낮아지면 피로감, 어지러움, 우울감을 느낀다. 이때 탄수화물이나 당분을 먹으면 혈당치가 높아지면서 피로감이나 어지럼증이 개선되고 동시에 기분도 좋아진다. 그런데 혈당치가 너무 지나치게 높아지면 다시 췌장에서 인슐린이 과량분비돼 저혈당에 빠지고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또다시 과식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주위에 보면 불안하고 초조할 때 당분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을 ‘슈거 블루스(Sugar Blues)’라 부른다. 당분이 부족해지면 우울해지는 것이다. 탄수화물중독도 슈거 블루스의 일종으로 저혈당에 빠지면 급하게 탄수화물을 섭취해 혈당을 올리고자 하는 중독증상이다.

세 번째는 행복호르몬 ‘세로토닌’의 영향이다. 강박적으로 과식을 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지나친 양의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약물을 섭취한 것과 비슷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평소 스트레스, 슬픔, 외로움, 두려움을 느낄 때 과식은 기분전환이 될 수 있다. 특히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방아쇠식품’을 섭취하면 세로토닌이 방출되면서 행복감에 빠진다. 그래서 과식하면 일시적으로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많이 먹는 중독성에 빠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율신경계에 의한 신체적 변화다. 보통 배불리 먹으면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계가 흥분한다. 그래서 체온, 호흡수, 맥박수가 상승한다. 얼굴은 붉어지면서 상기되고 신진대사가 빨라진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마치 술을 마셨을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배불리 먹은 후의 생리적인 변화는 누구나 겪는 것으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시청자들은 이영자 씨의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와 함께 동시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자신은 그렇게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일 수도 있다. 이영자 씨의 밥주정이 설정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밥주정’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밥도 많이 먹으면 취하는 것 같다. 이영자 씨의 건강하고 유쾌한 밥주정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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