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낮에는 심한 감정기복, 밤에는 열대야로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그냥 더위를 먹은 것으로 생각하며 넘기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이는 자율신경실조증으로 인해 몸의 항상성이 무너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
■기운 없고, 땀 많고, 소화도 안 되네 ‘더위 먹었나?’
‘더위를 먹다’라는 말은 ‘더위 때문에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의미다. 현대의학에서는 일사병, 열사병과 같이 장기간 햇볕에 노출돼 혈액과 체액이 손실되면서 발생하는 증상을 일컫는다. 하지만 실제로 중한 일사병환자는 흔치 않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기운 없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도 못 자고 소화도 안 되는 ‘더위먹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강동경희대병원 한방내과 고석재 교수는 “신체에는 교감·부교감, 두 자율신경계가 있는데 이들의 균형이 무너지면 자율신경실조증이 나타난다”며 “이는 소화관운동, 땀분비, 체온조절 등 생리적인 부분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더위먹음은 자율신경이 담당하는 체온과 땀조절기능의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증상은 평소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거나 면역력인 떨어진 노인에게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고석재 교수는 “만일 에어컨의 찬 바람이 싫거나 소화장애, 현기증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자율신경실조증을 더욱 확실히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율신경실조증은 심장박동의 변이된 정도를 측정하는 심박변이도 검사(Heart Rate Variability)로 측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아래 15가지 문항 중 10가지 이상에 해당한다면 자율신경실조증을 의심한다.
<자율신경 실조증 자가진단표> 1. 몸이 나른하거나 쉽게 피로해진다. |
■자율신경실조증, 어떻게 관리할까?
자율신경실조증은 증상 자체가 매우 다양하고 개인차가 크다. 또 검사상 이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정신적요인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약물요법으로는 항불안제, 수면제, 항우울제, 교감신경의 억제제 등이 있으나 본질적인 치료보다는 증상을 다스리는 경우가 많다.
이에 한의학에서는 무너진 균형이 기혈음양 중 어디인지 찾아내고 증상과 개인에 따라 달리 처방하여 항상성을 회복할 수 있게 치료한다. 교감·부교감신경의 균형회복을 도와주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옛 선인의 지혜를 통해 자율신경실조증을 치료해왔다. 조선시대 궁중 내의원에서는 제호탕(醍醐湯;여름철 더위를 대비한 한약)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쳤고 일반백성은 쑥이나 익모초(益母草)즙을 마셔 원기와 식욕을 돋웠다. 제호탕의 주원료인 매실은 한의학적으로 갈증을 멈추고 열독을 풀어주며 소화를 도와 식욕을 증진시킨다. 또 쑥은 설사와 복통을 멎게 하고 익모초는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이 편찬된 이후 한의학에서는 청서익기탕이나 생맥산과 등 한약을 활용해 여름철더위를 풀어줄 뿐 아니라 기력를 보강하고 소화기능을 활성화해 무너진 음양기혈을 회복했다. 청서익기탕과 생맥산은 오늘날에도 많이 쓰이는 약이라고. 두 약에 동시에 들어있는 오미자는 쇠한 기력을 보충하고 갈증을 멈추며 맥문동은 심장과 폐의 열을 식히는 효능이 있다.
■자율신경실조증을 예방하는 생활습관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자율신경실조증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흔한 질환이 됐다. 더위를 먹었다고 지나치게 찬 음료와 찬 음식을 섭취하거나 냉방을 하면 무너진 음양기혈은 회복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음양기혈의 어느 부분이 과하고 부족한지 알고 그에 따른 적절한 처치를 받는다면 아무리 더위가 심하다 할지라도 우리 몸은 항상성을 저절로 회복할 수 있다.
고석재 교수는 “자율신경은 외부환경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실내외 기온차를 최소화하고 무리한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며 “스트레스에는 감정을 배출하는 통로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