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말라리아의 천적은 ‘개똥쑥’
지독한 말라리아의 천적은 ‘개똥쑥’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6.28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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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강조한 바 있지만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은 한 해 100만명 이상을 사망하게 하는 말라리아다. 단순히 사람만 많이 죽여서 무서운 것이 아니다. 말라리아는 약 한 알이면 다 해결되는 기생충의 본성을 잊어버리고 약제에 대해 엄청난 저항성을 보인다. 이 때문에 십년 전만 해도 말라리아의 1차 약으로 쓰이며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했던 클로로퀸은 이제 대부분의 유행지에서 무기력한 약제가 돼버렸다.

 

유럽에 알려진 최초의 말라리아 약제는 키니네였다. 17세기 남미를 정복한 스페인은 자국에서 사람을 불러다 총독을 시켰는데 페루총독으로 간 백작의 부인이 그만 말라리아에 걸렸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의료진은 최후의 수단으로 원주민 사이에서 유행하던 민간요법을 사용하기로 한다.

 

안데스 산맥에서 자라는 키나나무의 껍질을 끓인 물을 이용한 이 민간요법을 통해 백작부인은 기적적으로 살아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키니네는 말라리아의 특효약으로 오랫동안 사용됐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키니네보다 효과가 월등한 클로로퀸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 후 클로로퀸은 말라리아 1차 약의 지위를 계속 누려 왔지만 세계 곳곳에서 이 약제에 듣지 않는 말라리아가 출현함으로써 세상은 보다 강력한 항말라리아 제제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이 욕구에 반응한 나라는 놀랍게도 중국이었다. 1967년 중국 당국은 과학자들을 모아 놓고 5천 여 개의 전통요법이 말라리아에 듣는지 여부를 체크하도록 시켰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때만 해도 중국은 당에서 내리는 명령이 절대적이었고 인구가 많은 만큼 과학자의 숫자도 절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 대규모 프로젝트는 결국 결실을 맺었다. 투요우요우 (Tu Youyou)라는 과학자가 개똥쑥이란 식물의 잎에서 항말라리아 효과를 지닌 물질을 찾아낸 것이다. 그 식물 이름이 ‘아르테미시아’였기에 그 약제의 이름은 ‘아르테미시닌’이라 명명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개똥쑥은 2천년 전부터 중국에서 말라리아와 피부질환을 비롯해 이런저런 치료에 쓰이던 약제였고 4세기 중반에 발간된‘응급의학책’에도 말라리아 치료에 쓰면 좋다고 소개돼 있었다.

 

아르테미시닌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이 약제는 이전에 나온 어떤 약제보다 더 빨리 말라리아를 격퇴해 냈다. 개똥쑥이 중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자라고 심지어 워싱턴의 강가에서도 자라는 식물이었으니 다른 나라 사람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이 식물을 옆에 두고도 활용법을 몰랐던 것이다.

 

클로로퀸에 대해 염증을 느끼던 세계보건기구는 아르테미시닌에 열광했고 2006년 아르테미시닌은 클로로퀸을 제치고‘말라리아에 우선적으로 쓰이는 약제’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클로로퀸의 실패 경험이 있었기에 세계보건기구는 다른 말라리아 약과 섞어 쓸 것을 권고했다. 영악한 말라리아가 금방 저항성을 나타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권고를 따르지 않고 아르테미시닌을 대량 살포한 지역에서는 이 약제에 대한 저항성이 벌써 나타나기 시작했다. 말라리아 약이 매년 개발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이마저 저항성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2013년 아르테미시닌을 발견한 투요우요우 여사는 84살이 됐다. 말라리아 1차 약을 발견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이 여사님은 몇 번이나 노벨의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아직 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내가 기생충학을 전공한 탓도 있겠지만 투 여사의 업적이 노벨의학상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노벨상이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수여된다는 점에서 하루속히 노벨위원회가 결정을 내려주면 좋겠다. 투 여사님, 그때까지 오래오래 사세요.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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