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규의 자가면역질환 이야기] ⑤ "자가면역질환, 최고의 치료제는 예방약!"
[이신규의 자가면역질환 이야기] ⑤ "자가면역질환, 최고의 치료제는 예방약!"
  • 이신규 위너한의원 대표원장 l 정리·유대형 기자 (ubig23@k-health.com)
  • 승인 2018.10.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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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한의원 이신규 대표원장

필자가 일본에 패키지 가족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가이드가 쇼핑에 대해 안내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국인들은 일본 여행 와서는 대부분 약을 많이 사간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정로환, 동전파스 등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구입하는 약들을 소개했다. 가이드의 설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약을 상중하로 나눠 설명한 부분이었다.

“가장 하급의 약은 당장의 통증만 없애주는 진통제, 중급의 약은 병이 발생했을 때 고치는 치료제, 상급의 약은 병이 발생하지 않게 건강을 지켜주는 예방제입니다.”

한의사가 듣기에도 친숙하고 좋은 설명이었다. 한의학에서도 ‘방약합편’이라는 책에서 이런 식의 개념으로 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약처방을 상통(上統), 중통(中統), 하통(下統)으로 나눠서 소개하고 있다.

상통(上統)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보약이 될 만한 약, 중통(中統)은 흐트러진 기혈을 고르게 하고 속을 편하게 다스리는 약, 하통(下統)은 병을 직접 공격하는 약으로 분류하고 있다. 상중하의 분류에 따라 복용법도 달라진다. 상통의 처방은 성질이 부드러워 오래 먹어도 좋은 약이고 하통의 처방은 성질이 강해 병이 있을 때만 잠깐만 사용하도록 적혀있다.

방약합편에서는 약의 종류를 처방 목적에 따라서 상통, 중통, 하통으로 나눴다. 사진출처 : 위너한의원

필자가 주로 보는 류마티스관절염, 쇼그렌증후군, 섬유근육통 등 자가면역질환자들은 먹는 약의 종류가 많다.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이다 보니 양약, 한약, 건강기능식품 등 치료에 좋다는 다양한 종류의 약을 먹는다. 그러다보니 어떤 약을 먹어야 할지, 끊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질문도 많다. 그럴 때면 위에서 언급한 상통, 중통, 하통의 개념을 설명한다.

서양 의학에서도 이런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널리 처방되는 약 중 하나인 아스피린은 500mg 이상 용량을 사용하면 해열, 소염, 진통 효과가 있다. 하지만 아스피린을 100mg 정도 적은 용량을 특수 코팅해 체내에서 서서히 흡수되도록 만들면 혈전생성을 억제하고 심장병예방 효과가 있다.

약의 종류와 환자가 처한 상황, 그리고 치료 목적에 따라 약은 짧게 또는 길게 먹어야한다. 평소 쉽게 접하는 소화제, 두통약, 감기약, 해열제 등의 약들은 대부분 한의학적으로 보면 하통에 속한다. 병이 있을 때만 짧게 복용해야 하는 것이 맞다.

병이 들었을 때 약으로 치료하는 것보다 아프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생활관리가 중요하다. 약을 처방하더라도 하통의 약으로 증상을 억지로 조절하는 것보다 장기간 복용해 몸을 꾸준히 회복시킬 수 있는 상통의 약을 권장한다.

자가면역질환자들에게 널리 처방되는 진통소염제, 스테로이드제, 면역억제제 등의 약도 염증을 억제하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 쓰는 하통의 약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약들을 장기복용하면 부작용이 있다는 걸 뻔히 알지만 병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최선의 약이 없기 때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인체의 면역체계는 고도의 복잡한 시스템으로 진화돼 왔다. 이 모든 과정을 규명하고 자가면역질환을 완전히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는 것은 사실상 암을 정복하는 것만큼 어렵다. 자가면역질환은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이름조차 없는 질환이었다. 하지만 서구화 이후 점점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는 질환이다.

필자는 한의원에서 만나는 대부분 환자에게 상통에 해당하는 치료법을 주로 쓴다. 쑥뜸을 권장하여 체온을 올리고 한약을 통해 몸의 회복능력과 기능을 증진시킨다. 병이 들었을 때 약으로 치료하는 것보다 병이 들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생활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약을 처방하더라도 하통의 약으로 증상을 억지로 조절하는 것보다는 장기간 복용해 몸을 꾸준히 회복시킬 수 있는 상통의 약을 처방한다.

예방을 위해서 정말 환자에게 필요한 약과 치료를 권장해도 “지금은 아픈 데가 없어요”,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요”, “꾸준히 먹기가 귀찮아요” 등 같은 반응이 나올 때가 있다. 예방약은 효과가 눈에 당장 나타나지 않아서 치료약보다 효능이 떨어진다고 느낀다. 하지만 ‘최고의 약’은 병이 생기고 고치는 것이 아닌 병이 오기 전 미리 막아주는 약이다.

위너한의원 이신규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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