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정신과 의사는 항상 마음이 평안한가요?
[특별기고] 정신과 의사는 항상 마음이 평안한가요?
  •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우장훈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8.12.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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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훈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우장훈 용인정신병원 진료과장

“정신과 의사는 항상 마음이 평안한가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 심지어 동료 의사에게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 증권회사 다니면 늘 투자에 성공하고 학교 선생님 자식들이라고 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화가 날 때는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지만 적어도 환자를 볼 때만큼은 마음을 평안하게 가지려고 노력한다. 비만한 헬스트레이너가 코치하는 식단과 운동이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없듯 정신과 의사가 마음이 평안하지 않으면 환자의 문제를 제대로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는 어느 순간에도 내 생각을 멈추고(투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보려 노력해야 한다’고 배운다.

風來疎竹 風過而竹不留聲 (풍래소죽 풍과이죽불유성)
雁渡寒潭 雁去而潭不留影 (안도한담 안거이담불유영)
故君子 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隨空(고군자 사래이심시현 사거이심수공)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도,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대숲은 소리를 남기지 않고
기러기가 차가운 못을 지나가도, 기러기가 날아가고 나면 못에는 그림자가 남지 않는다.
고로 군자는 일이 있으면 마음이 나타나고(그대로 받아들이고), 일이 끝나면 마음도 따라서 빈다(집착하지 않는다).

30여 년 전쯤 햇병아리 의사 시절, 인턴을 마치고 오랫동안 꿈꾸던 정신과 전공의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선배 정신과 선생님 병원에서 1년간 일을 도우며 다음 해 정신과 전공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위의 채근담 글귀를 직접 적어 주셨다. 그 메모지를 아직도 다이어리 첫 장에 붙여두고 마음이 평안하지 않을 때 펴보곤 한다.

필자는 당시 견디기 힘든 좌절감을 준 실패의 원인을 나를 뽑아주지 않은 주임교수와 주위 탓으로 돌렸다. 그때 선생님은 “훌륭한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공부를 해야한다”며 글귀의 뜻을 마음에 새겨보라고 하셨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불안, 우울, 화 등의 증상도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거나 자신의 문제를 외부에 투사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로 생기는 수가 많다. 이런 마음의 병에는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 외에도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잘 살피고 집중하는 마음공부가 근원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수도 없이 봤다.

공자님은 ‘내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원하는 바대로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從心所慾不踰矩)’고 하셨는데 필자는 이제 15년 정도 남았다.

열심히 마음공부를 하고 부단히 실천하면 70에 이르렀을 때 마음이 항상 평안할 수 있을까? ‘열심히, 부단히’라는 대목에서 자신이 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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