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어 1만 마리 해부해도 찾기 힘든 기생충
송어 1만 마리 해부해도 찾기 힘든 기생충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8.02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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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때 이런 얘기를 가끔 한다.

 

“과거에 기생충이 나쁜 짓을 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생충의 본성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들은 인간에게 세든 세입자고, 원하는 것은 작은 몸을 누일 조그마한 공간과 하루 밥 한 톨 정도 식량이 전부입니다. 요즘같이 비만이 걱정되는 시대에 기생충 한 마리 키울 여유가 없을 만큼 우리가 야박해서야 되겠습니까?”

 

회충을 예로 들면 옛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회충을 갖고 있었고 마릿수도 한 사람당 최소 10마리 이상이었다. 그때 회충들은 짝짓기도 하고 바람도 피우면서 나름 즐거운 시절을 보냈을 테지만 지금 회충 감염률은 0.003%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한 마리가 고작이다. 짝짓기는커녕 같이 얘기할 친구도 없다. 어두컴컴한 창자에 남겨진 회충이 고독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것도 부족해 우리는 몸에 이상이 없는데도 내시경을 하고 그 바람에 넋 놓고 있던 회충이 내시경 겸자에 끌려 나가 생을 마감한다.

 

봄과 가을에 구충제를 먹는 사람의 비율은 예상외로 높다. 직업상 기생충의 입장을 대변할 때가 있는 필자이기에 이런 세태가 안타까워 강의 때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 등이 기생충 멸종과 더불어 증가됐다는 논문발표로 입증된 마당이니 기생충을 키우라는 게 꼭 기생충을 위해서만도 아니다.

 

그런데 한 여고에서 강의를 하던 중 질문을 받았다.

 

“그러면 교수님도 기생충을 지금 키우고 계시나요?”

 

너무 예리한 질문이라 보이스피싱을 당했을 때보다 더 당황했다.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 그게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알을 구할 수가 없어서, 그러니까….”



알을 구하지 못해서 기생충을 먹지 못한다는 내 말은 학생들에게 변명처럼 들렸으리라. ‘지가 먹기 싫으니까 저렇게 둘러대는 거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면을 빌어 그때 못한 변명을 해본다.

 

첫째, 내가 기생충을 한 마리쯤 키우는 게 뭐가 나쁘냐고 한 것은 일부러 기생충을 찾아서 먹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몸에서 기생충이 나왔다고 기절할 듯이 놀라고 몸에 기생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며칠씩 잠을 못자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기생충은 그렇게 나쁜 애들이 아니며 우리 몸에서 심각한 증상이 있는데 그 원인이 기생충인 경우는 거의 없다.

 

두 번째 기생충의 알을 구할 수 없다는 내 말은 진실이다. 회충알을 대체 어떻게 구해서 먹는단 말인가? 내가 회충에 걸리려면 일단 회충알을 구하기 위해서는 1000명 중 3명꼴인 회충 감염자를 찾아야 한다.

 

그 회충이 수컷이면 소용이 없고 암컷이라 해도 암컷 혼자 있으면 알을 낳지 못한다. 암수가 최소한 한 마리씩 이상 있는 감염자를 찾는 건 우리나라에서 하늘의 별따기다. 다른 기생충은 어떨까?

 

광절열두조충은 우리나라에서 인체감염원이 무엇인지 내가 열심히 찾고 있는데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나오기만 하면 난 얼마든지 그 유충을 먹을 마음이 있지만 그걸 찾기 위해서는 민물송어를 최소한 1만 마리 정도는 해부를 해야 한다. 송어 한 마리를 1만원이라고 칠 때 1억원의 비용이 들어가고 해부하는 데 3년도 더 시간이 걸리는 것도 그렇지만 1만 마리를 해부한다고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물론 걸리기 쉬운 기생충이 없는 건 아니다. 바로 간디스토마로 이건 민물회를 먹고 걸리니 유행지인 낙동강 유역에서 물고기를 잡아 회로 떠먹으면 된다. 하지만 간디스토마는 기생충 중 몇 안 되는 나쁜 기생충으로 간을 파괴할 뿐 아니라 담도암의 확률을 4배 이상 증가시키니 구태여 이런 기생충을 먹어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

 

게다가 간디스토마는 크기가 그리 안 커 알레르기를 없애주지도 못하니 먹는다고 건강상의 이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명색이 기생충을 사랑하는 기생충 교수지만 몸에 기생충 한 마리도 키우지 않고 있는 이유다.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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