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 : 병리과의 현실과 미래
[특별기고]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 : 병리과의 현실과 미래
  • SCL 서울의과학연구소 김동철 전문의(병리과)ㅣ정리·유대형 기자 (ubig23@k-health.com)
  • 승인 2019.03.0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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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L 서울의과학연구소 김동철 전문의(병리과)

의사가 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작업에는 아마 치료, 처방, 진단, 수술 등이 있을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만나서 ‘진단’을 하고, 약을 ‘처방’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치료’하고 심각한 질환이면 ‘수술’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고 대부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의사가 수술하는 것은 아니다.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전공과목들이 있고 이미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전공에 지원해서 4년 정도의 수련을 거친 뒤 전문의시험을 통과해 각종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수술을 주로 시행하는 외과의사는 영상 매체나 소설 등을 통해서 비교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고 있는 전공분야도 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병리과도 그런 분야 중 하나인데 역설적이게도 병리과는 수술하는 외과분야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병리과의 주된 업무는 ‘진단’이다. 의사라면 누구나 업무 과정에서 진단을 내리지 않나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영상의학과를 포함해 다른 전문과에서 내리는 진단 대부분은 ‘추정 진단’에 속한다. 환자의 연령대와 성별은 물론 환자가 보이는 증상을 분석하고 검사결과를 참조해서 가능성이 가장 높은 특정 질환을 추정하는 것이다.

병리과에서는 환자 신체에서 질병이 있는 부위, 즉 병변에서 떼어낸 신체 조직을 광학 현미경으로 직접 확대해서 보면서 진단을 내린다. 따라서 병리적 진단은 ‘확정 진단’이고 많은 경우 ‘최종 진단’이다. 의료비를 보장하는 사보험에서 병리 진단지를 요구하는 이유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영어로는 ‘Gold standard’라고 부르는데 다른 새로운 검사가 개발될 경우 비교의 기준이 되는 표준인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맞춤형 암 치료에 있어서 신체의 동일 부위에 생겼다 할지라도 암의 종류와 ‘아형(subtype)’에 따라 다른 약제와 치료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확하고 자세한 병리 진단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수술이나 조직검사로 떼어낸 신체조직을 화학약품으로 처리한 뒤 염색해서 현미경으로 보고 진단을 내리는 이 업무과정은 대략 100년 이상 큰 변화 없이 지속됐다. 진단의 복잡함과 정교함은 비교가 되지 않게 깊어졌지만 기타 의학분야에서 혁명이 거듭됐다고 한다면 병리분야는 비교적 조용하게 개량이 이어져 왔다.

기술적인 정체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진단’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은 병리과 전문의의 시각적 인지능력과 판단력에 의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3차 산업혁명까지의 지난 100년간의 기술적 발전으로는 병리과전문의의 안구와 뇌를 대체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병리과는 어찌 보면 고전적인 방법으로 진단하고 있었다.

이러한 병리과의 현상 유지는 인공지능, 더 정확히는 ‘Deep learning’의 발달에 의해 흔들리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에게 인공지능의 충격을 준 사건은 2016년 3월의 알파고 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었다. 비슷한 시기인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네덜란드의 Radboud 대학병원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하여 암 진단의 기술을 높이기 위해 CAMELYON16이라는 국제 대회를 개최했다. 유방암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들로부터 얻은 림프절 슬라이드 270장을 스캔해 디지털 파일로 만든 뒤, 각 팀이 개발한 인공지능에게 진단을 맡겨 유방암이 전이된 것을 찾게 하였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하버드대학 의과대학과 MIT의 연합 팀이었다.

이 대회가 끝난 후 동일한 자료들을 인간 병리과 전문의 11명에게 맡겨서 수동으로 판독을 의뢰한 뒤 비교하였다(https://jamanetwork.com/journals/jama/article-abstract/2665774)

상위 5개 팀의 결과는 인간 전문의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판독했을 경우와 유사하게 정확했다.

제한을 두었을 경우(2129장 판독), 인간 전문의의 결과는 우승자 팀의 인공지능보다 열등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알파고만큼이나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막상 병리진단의 일선에서는CAMELYON16의 결과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단은 의료의 비용적 측면에서 병리과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보니 병리진단을 인공지능화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크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또 병리진단의 디지털화에 필수적인 슬라이드 스캐너가 1억원~4억원 고가의 장비이면서 그 자체로는 현재의 의료수가시스템 상으로는 전혀 수익성이 없다는 문제도 있다. 대부분 흑백의 저용량 이미지인 영상의학과 이미지와는 달리 병리과의 현미경 진단용 슬라이드는 고해상도로 스캔할 경우 한 장에 10GB가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병리과 전문의 한 명이 하루에 보는 슬라이드를 200장에서 300장으로 잡을 경우 2TB에서 3TB의 저장용량이 필요한 것이다. 스캔도 시간이 걸려 최신 장비를 사용해도 슬라이드 한 장을 스캔하는데 5분에서 10분의 시간이 걸린다. 병리과 전문의는 대개 그 20~30%의 시간 내에 현미경검사를 완료할 수 있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 다들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국 대부분의 의과대학 및 대학병원은 슬라이드 스캐너를 도입했거나 도입 과정 중이다. 많은 의과대학의 병리학 교실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인공지능에 의한 병리 진단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거나 진행 중이며 대학이 아닌 수탁기관에서도 IT벤처업체 등과의 협업을 통해 연구를 진행 중인 곳들이 있다.

병리과 내부의 분위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100여 년을 거치면서 새로운 진단 기법이 나올 때마다 위협을 받았음에도 결국은 Gold standard로 남은 분야이기 때문에 인공지능 또한 흡수하거나 접목하여 이용할 기술적 발전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자면 병리 검사의 양은 나날이 팽창하는데 반해 병리과전문의는 세계적으로 만성적인 부족 상태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인공지능에 의한 진단을 이용하여 비정상적인 소견이 보이는 슬라이드를 먼저 걸러내고 그 슬라이드에서도 위험도가 높은 부위를 표시해 우선적으로 검사를 한다면 병리과전문의의 업무효율성과 검사속도 및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4차 산업혁명 및 인공지능 도입 등 변화하는 의료환경 속에서 병리과는 풀어가야 할 다양한 난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고 있다. 어느때보다도 병리과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병리과는 적절한 대책과 방안을 조용히 찾아 갈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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