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만 해도 텍사스에서 싸이클로스포라에 걸린 사람이 무려 48명이었습니다.”
미국은 지금 ‘싸이클로스포라’ 때문에 난리가 아니다. 2013년 8월 1일까지 보고된 환자만 해도 397명에 달하고 있고 아이오와 주와 네브라스카 주가 가장 많고 텍사스를 비롯한 중서부 지방에서도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대체 이 기생충은 무엇이며 어떻게 걸리는 걸까?
싸이클로스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기생충이다. 크기가 10마이크로도 안되니 눈에 안 보이는 정도라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크기가 작다고 해서 무시해선 안 되는 것이 큰 기생충은 우리몸 안에서 숫자를 불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작은 기생충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증식해 증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물론 싸이클로스포라는 기생충이고 기생충은 숙주를 안 건드리고 잘 살고 싶은 속성이 있다. 하지만 숫자가 엄청나게 많을 때는 그런 기생충의 속성 따위는 신경을 못 쓰게 된다. 그 결과 배가 아프고 식욕이 떨어지며 물 같은 설사를 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환자가 기생충에 면역을 갖게 되면 증상이 점점 없어지고 며칠이 지나면 완전히 회복된다.
‘TMP-SMX’라는 좋은 약이 있어 진단만 이뤄지면 설사를 더 짧게 할 수도 있지만진단이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에이즈 환자라든지 항암치료를 받는다든지 면역기능이 떨어진 사람들의 경우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싸이클로스포라는 원래 사람의 대변으로 나갔다가 물이나 음식물을 통해 다시 사람에게 들어오는 소위 ‘항문에서 입으로’ 전파되는 기생충이다. 즉 사람의 배설물이 어떤 이유로든 식수와 섞이거나 그 식수로 야채를 씻으면 이 기생충에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냉면에 대장균이 많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 대장균 자체가 나빠서라기보다는 사람의 대변에 사는 대장균이 냉면 육수에 들어간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 냉면이 대단히 불결하게 조리됐다는 뜻이며 싸이클로스포라 같은 기생충이 들어갈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수처리가 비교적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난리가 일어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과거 사례를 살펴보자. 싸이클로스포라가 최초로 주목받은 1996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1400명이 넘는 감염자가 나왔다.
감염자들은 모두 과테말라에서 수입된 라즈베리(산딸기의 한 종류)를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후부터 과테말라의 라즈베리는 보다 철저히 관리됐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이클로스포라의 집단발병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듬해에도 라즈베리에 의한 집단발병이 일어났고 라즈베리 말고도 양상치나 허브 등등의 식품이 원인이 된 집단발병도 계속 나왔다.
전 세계의 음식물이 교환되는 상황이 기생충의 세계화를 촉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의 집단발병은 어떤 게 원인일까? 보건당국의 추적조사 결과 멕시코의 한 농장에서 미국의 유명한 레스토랑 체인점에 샐러드를 공급했는데 그게 이번 사태의 원인이었단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싸이클로스포라의 집단발병이 없지만 유행지에 갔다가 걸린 사례는 보고돼 있다. 14세 소녀가 인도네시아에 다녀온 후부터 계속 심한 설사를 했는데 그 아이의 대변에서 싸이클로스포라가 발견됐다.
안타깝게도 진단을 한 건 한참 후고 의사들이 진단을 못해서 우왕좌왕하는 동안 환자는 계속 물설사를 해야 했다. 그녀가 회복된 것도 약을 잘 쓴 것이 아니라 환자의 면역이 작동한 결과라니 어린 소녀가 의사를 안 믿게 됐을까봐 마음이 아프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남미나 동남아에 나가는 여행객들에게 싸이클로스포라의 예방법을 말씀드린다. 물은 꼭 생수를 사먹고 현지 야채가 싱싱해 보인다고 막 먹으면 안 된다. 눈에 안 보이는 싸이클로스포라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