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건강이야기] 반려묘가 갑자기 다리를 못 써요! 동맥 혈전증이란?
[반려동물 건강이야기] 반려묘가 갑자기 다리를 못 써요! 동맥 혈전증이란?
  • 남예림 24시 해마루동물병원 내과 팀장|정리·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19.04.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예림 24시 분당 해마루동물병원 내과 팀장
남예림 24시 분당 해마루동물병원 내과 팀장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보니 항상 반가워하며 뛰어나오던 반려묘가 안 보인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오늘 너무 늦게 돌아와 토라진 건지, 좋아하는 식탁 의자에서부터 소파 밑, 안방 장롱까지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 겨우 발견한 반려묘의 뒷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 힘차게 바닥을 딛고 허리께까지 점프하던 뒷다리가 축 늘어졌으며 어쩐지 숨이 거칠고 빠른 것 같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뒷다리를 만지려 하니 생전 보이지 않던 하악질을 하며 피하려 하는데 통증이 심한 듯 표정이 좋지 않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출근할 때만 해도 멀쩡하던 반려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위 내용은 필자의 실제 꿈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상당히 자주 진료실에서 듣게 되는 상황이다. 반려묘를 돌보는 보호자라면 누군가에게 들어봤음직 한 이야기일 것이다.

반려묘가 갑자기 뒷다리를 잘 쓰지 못해 응급실로 찾아올 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진단명은 고양이 동맥 혈전증이다. 혈전이란 혈관 안에서 피가 굳어져서 생긴 덩어리를 말한다. 혈액은 혈관 안에서 서로 엉기지 않고 부드럽게 순환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혈관에 상처가 생기면 혈액이 바깥으로 흘러나가고 출혈이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혈소판과 응고인자가 출동해 상처가 생긴 부분을 틀어막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피딱지가 바로 이렇게 생긴다. 피딱지가 혈관을 돌아다니는 것을 혈전이라고 하며, 혈관 안을 돌아다니다 중요한 혈관을 막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혈전증이다.

심장에서 나오는 대동맥은 뒷다리 쪽으로 갈수록 굵기가 얇아진다. 고양이 동맥 혈전증이란 대동맥에서 뒷다리로 갈라지는 부위가 혈전으로 막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동맥 혈액이 뒷다리로 흐르지 않게 되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오랫동안 무릎을 굽혔거나 책상에 엎드려 팔을 오래도록 굽혔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러면 팔과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고 손끝 발끝이 차가워지며 파랗게 질린다. 이와 비슷한 상태가 고양이 뒷다리에서 일어나게 된다. 말초 신경에 손상이 발생하고 시간이 갈수록 근육과 피부가 괴사돼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통증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보호자의 손길에도 평소와 달리 예민해지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원인은 심장 질환이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나 드물게는 종양 환자에게서도 일어난다고 보고된 바 있다. 정확한 원인이 진단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혈전증이 발생했을 땐 가능한 한 빠르게 동물병원에 내원해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한다. 24시간이 지나면 신경 손상이 시작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급속히 악화한다. 만약 혈전용해 치료를 시도한다면 시간이 지체될수록 적용하기 어렵다. 혈전을 급속히 용해하면 막힌 혈류 주변 조직에서 생성된 독소가 전신으로 퍼지면서 급사하게 될 위험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우리의 반려묘에게는 야생성이 남아 있어 아픈 곳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고양이 동맥 혈전증은 기존에 심장병을 치료받던 환자들 외에도 멀쩡해 보이던 고양이에게서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보호자가 알아야 할 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양이 동맥 혈전증에 관해 꼭 알아야 할 사항
고양이 동맥 혈전증에 관해 꼭 알아야 할 사항

첫 번째, 심장병 호발 품종이라면 평소에 심장 검진을 시작하자.

메인쿤, 랙돌, 스핑크스, 노르웨이숲 등의 품종에게는 정기적인 심장 검진을 해주는 게 좋다. 특히 마취, 수술을 앞두고 있다면 검진을 미리 받는 것을 권장한다. 심근 질환이 있는 고양이의 최대 약 20%에서 동맥 혈전증이 발생할 수 있다. 심장 검진 상 예방적 항혈전제 투약이 추천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항혈전제 투약이 모든 혈전증을 예방할 수 없으므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후지마비의 초기 증상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리가 저리거나 통증 때문에 평소와 다른 곳에 숨어 있으려 하거나 잘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심한 통증으로 보호자의 손길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고양이의 패드가 핑크색이라면 앞발과 뒷발의 패드 색이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아챌 수도 있다. 또한 만졌을 때 사지의 말단 부위가 차게 느껴진다. 애매하다면 반대편 뒷발이나 앞발을 동시에 잡고 비교해보면 좋다. 어두운 색의 패드라면 발톱의 핑크색 부위 색이 변하지 않았는지 관찰해볼 수도 있다.

세 번째, 후지마비가 의심된다면, 지체 없이 동물병원에 내원해야 한다.

빨리 혈전용해제를 투여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통증이 극심하고 탈수가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빠른 진통제 투약과 대증처치, 추가적인 혈전이 발생하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도록 항혈전제를 투여하는 것이 혈전증 치료의 핵심이다.

고양이 동맥 혈전증의 경우 양쪽 후지 마비가 발생한 환자의 약 3분의 1만 생존한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한쪽만 마비가 발생했다면 생존율은 크게 높아진다(약 68~93%). 최근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도가 큰 혈전용해 치료를 받은 고양이와 일반적인 표준치료를 받은 고양이의 생존율에 큰 차이가 없었다는 데이터도 발표되고 있다. 안락사 비율과 질환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비슷한 만큼, 좀 더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선다면 이러한 생존율이 더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통증은 혈전증이 발생한 지 24시간까지는 극심하지만, 48시간이 지나면 상당한 정도로 감소한다. 신경 손상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환자 중 약 50%에서 회복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예전에는 동맥 혈전증이 사망선고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 치료 과정은 지난할 수 있으나 회복해서 퇴원하는 환자들이 실제로 점차 늘고 있는 만큼, 고양이 동맥 혈전증이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는 질환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