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캡사이신이 낸 불은 물이 아닌 ‘기름’으로 꺼야한다
[한동하 원장의 웰빙의 역설] 캡사이신이 낸 불은 물이 아닌 ‘기름’으로 꺼야한다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4.1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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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많은 사람이 음식의 빨간색이 진하면 진할수록 맛이 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고춧가루와 고추장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색이 빨갈수록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도 많이 들어있을 것 같지만 사실 캡사이신은 별다른 색이 없다.

고추의 붉은색은 라이코펜와 카로틴과 같은 카로티노이드 색소 때문이다. 이들 색소는 풍미를 좋게 하지만 특별한 맛이 없다. 단지 색을 내는 역할을 하는데 토마토, 당근, 수박, 감, 피망, 자몽 등의 붉은색도 모두 이들 색소 때문이다. 색이 붉다고 해서 매운 것이 아니다. 청양고추가 빨간 고추보다 맛이 더 맵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될 것 같다.

시중의 캡사이신 소스 색이 빨간색인 이유는 일부러 색소를 넣은 것이다. 빨간색이 더 매울 것이라는 플라시보효과를 노린 것 같다. 이들 소스는 칠리페퍼 등에서 추출한 무색의 캡사이신(올레오레진 캡시컴 등)으로 매운맛을 내고 파프리카나 치자에서 추출한 색소(올레오레진 파프리카 등)로 붉은색을 낸다. 괴한 퇴치용 스프레이나 시위 진압용 물대포에는 합성 캡사이신(PAVA)이 이용되기도 하는데 역시 무색이다.

보통 고추를 먹고 입안이 얼얼하면 급하게 찬물을 마신다. 이때 캡사이신의 자극은 통증으로 인식되고 마치 화상과 같아서 찬물이나 얼음물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금세 다시 통증이 나타난다. 캡사이신이 혀와 입안에 여전히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물은 극성분자이기 때문에 캡사이신을 녹이지 못한다.

캡사이신은 무극성 분자다. 따라서 무극성 분자를 녹이기 위해서는 무극성 용매를 사용해서 녹여야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유다. 또 캡사이신은 지용성이기 때문에 우유의 지방성분에 의해 효과적으로 녹는다. 간혹 우유가 도움이 되는 이유를 우유 속 카제인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카제인은 단백질성분으로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유 대신 식용유를 이용해도 좋다. 올리브유, 포도씨유, 들기름 등 어떤 기름도 좋다. 약간의 식용유를 입안에 넣고 가글하듯이 돌리면 매운맛이 사라진다. 이들 기름도 무극성으로 캡사이신을 효과적으로 씻어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고추를 기름에 넣고 끓여서 고추기름을 내는 방법 역시 캡사이신 추출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매운 비빔냉면에 들어있는 달걀도 아무 때나 먹어도 상관없지만 맨 나중에 먹는다면 달걀노른자 속의 지방이 캡사이신을 씻어줄 수 있을 것이다.

밥도 도움이 된다. 밥에는 지방성분은 없지만 주성분인 탄수화물은 탄소와 수소로 이뤄져 있어 무극성이기 때문에 매운 김치를 밥과 함께 먹을 때 덜 맵게 느껴진다. 예민한 피부는 고추를 다듬고 나서 피부에 화상을 입기도 하는데 이때 얼음물에 담그면서 동시에 우유나 식용유로 씻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캡사이신의 매운맛은 고통만 주는 것은 아니다. 혀를 통한 통증 자극이 뇌로 전달되면 뇌는 통증을 줄이기 위해 엔돌핀을 분비한다. 따라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심지어 매운 음식에 중독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도 호르몬 때문이다.

매운맛을 먹으면 먹자마자 곧바로 땀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캡사이신이 혀를 통해 뇌를 자극해 고온을 감지하는 센서 유전자(TRPV1)를 활성화시켜 마치 고온 환경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매운 음식을 먹으면 몸이 더워지고 땀이 나는 것이다.

캡사이신은 이러한 이유로 혀는 아프게 하지만 몸의 통증은 덜 느끼게 만든다. 캡사이신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면 신경절의 뉴런에서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억제된다. 적당량을 국소 부위에 발라도 통증이 억제되기 때문에 관절염이나 근육통, 대상포진 후 신경통에도 사용된다.

캡사이신이 포함된 매운 음식을 섭취할 때 지방성분을 적절하게 활용해 보자. 음식 속의 지방성분은 매운맛 때문에 느껴지는 입안의 통증도 줄여주면서 위장관에서의 흡수율도 높여 줄 것이다. 미처 흡수되지 못한 캡사이신이 대장 점막을 자극하는 것도 줄여줄 것이다. 캡사이신이 낸 불은 물이 아닌 지방이나 기름으로 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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