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운동능력도 타고난다? 흥미로운 ‘스포츠 유전학’의 세계
[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운동능력도 타고난다? 흥미로운 ‘스포츠 유전학’의 세계
  •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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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

사람이 가진 재능 중에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여러 재능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운동능력이다. 어떤 사람은 높은 산을 등반하거나 깊은 바다에 잠수를 해도 끄떡없는 강한 심폐능력을,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근육과 골격의 발육이 남달라 육상선수로서의 재능을 타고나기도 한다.

유전적 차이라 할 수 있는 인종적·국가적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2013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결승점에 들어온 남자선수 상위 다섯 명의 국적은 케냐였다. 자메이카는 우사인 볼트 등 세계 정상급 단거리 육상선수의 산실이 된 지 오래다. 반면 아시아인들은 신체적 능력보다 집중력과 관련된 스포츠에서 더욱 좋은 성과를 낸다.

스포츠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고 믿는 국가에서는 스포츠와 관련된 영재 발굴을 위해 유전자검사 실시 후 선수 선발부터 훈련까지 시행하는 스포츠 유전학이 발달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중국은 2022년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동계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유전자 분석을 할 예정이다. 2018년 9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서는 ‘중국 과학기술부에서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공동으로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속력, 지구력, 폭발력 분야에서 경쟁하는 참가 선수들에게 전면적으로 게놈시퀀싱(유전자 분석)을 실시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런 접근은 잘못되면 개인의 타고난 능력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유전자 차별을 하는 우성사회의 한 모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능력에 맞춰 훈련하게 하는 맞춤 스포츠의학의 적용이란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에서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딴 윤성빈 선수도 이런 유전자 검사를 통해 맞춤훈련을 한 경우다. 한국스포츠개발원에서는 2015년부터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대표팀을 대상으로 유전자 특성을 분석한 뒤 선수별로 맞춤형 체력 훈련 프로그램을 짰다.

연구팀은 운동능력과 관련된 수십 가지 유전자 중에서 특히 ‘ACTN3’이라는 유전자에 주목했다. 사람의 근육섬유는 ▲수축속도가 빨라 순발력 운동에 필요한 속근과 ▲수축속도는 느리지만 지구력이 좋은 지근으로 이뤄진다. ACTN3 유전자는 속근과 지근 구성비율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팀은 이 유전자의 변이에 따라 운동선수들의 개별적 능력을 극대화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짠 것이다.

대표적인 운동 유전자로 지구력과 관련된 ‘안지오텐신 변환 효소(ACE) 유전자’가 있다. 1998년 네이처지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7000m 이상의 고산지대를 무산소로 등반하는 엘리트 등반가 1900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분석을 실시했더니 ACE 유전자의 II형을 가진 경우가 일반인보다 5배나 많았는데 이 II형이 바로 심폐능력 및 지구력과 관련된 유전자 변이형인 것이다. 이후 이뤄진 연구에서도 중장거리 육상선수에서 이 ACE 유전자의 II형 변이가 더 많고 단거리 운동선수에선 DD형 변이가 더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밖에도 GDF-8 유전자는 근육량과 관련된 대표적인 유전자로 알려졌다. 적혈구의 산소 운반 능력과 관련된 EPOR 유전자는 크로스컨트리 등 지구력 운동을 주로 하는 선수들에게 중요한 유전자다.

스포츠 부상과 관련된 유전자들도 많이 연구되고 있는데 MMP3, COL1A1 등의 유전자는 콜라겐 생성과 관련된 유전자로 여기에 변이가 있는 사람은 인대손상위험이 높아 그만큼 더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되고 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스포츠 유전학에서는 운동 자체가 건강에 미치는 효과의 개인 차에 대해서도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운동을 통해 혈압이 낮아지는 반면 어떤 사람은 오히려 혈압이 높아질 수도 있는데 이는 혈관의 내피와 관련된 EDN1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맞춤 운동, 즉 스포츠 유전학의 발전은 엘리트 스포츠 선수뿐 아니라 운동을 생활화하는 대다수의 일반 국민에게도 관심이 많은 주제다. 최근에는 미국 DTC 업체들을 중심으로 유전자 맞춤운동 프로그램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두 유전자를 갖고 지나치게 개인의 특성을 강조해 단순하게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타고난 유전적 능력뿐 아니라 운동에 대한 태도, 습관, 질병의 유무 등 종합적인 고려를 통해 전문가에 의한 맞춤치료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건강한 운동습관은 타고난 질병의 유전적 위험을 극복하고 DNA 발현을 건강하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자신의 설계도에 맞춰 운동할 뿐 아니라 끊임없는 운동을 통해 그 설계도를 기반으로 멋진 건축을 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100세 시대를 맞은 똑똑한 우리 국민들이 추구해야 할 건강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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