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유전자에 발목 잡힌 범인…신기한 ‘얼굴 유전자’의 세계
[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유전자에 발목 잡힌 범인…신기한 ‘얼굴 유전자’의 세계
  •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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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

1932년 김동인의 장편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에는 얼굴이 하나도 닮지 않은 자식을 자신의 핏줄로 여기며 발가락이 닮았다고 우기는 주인공 M의 독백이 나온다.

소설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 지나가는 가족, 부자 또는 모녀들을 무심히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얼굴이 정말 닮은 경우가 많다. 매부리코, 쌍꺼풀 없는 눈, 넓은 이마, 튀어나온 광대뼈 등 부모 중 한 명 또는 엄마 아빠의 얼굴 특징이 교묘하게 뒤섞여 빚어진 자식의 얼굴. 그 자체가 유전자의 힘이다.

특히 얼굴 또는 외모의 유전적 경향성에 대한 연구는 사람들의 호기심 충족의 목적을 넘어 안면질환, 성형외과적 적용 등을 위해 꾸준히 연구돼 왔다.

2012년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 의료센터의 카이저 교수팀은 네덜란드, 호주, 독일, 캐나다, 영국 출신의 유럽인 5388명의 얼굴모양을 자기공명장치로 촬영해 얻은 자료를 이용, 얼굴 특성 48개와 연관된 250만개 이상의 DNA를 분석했다. 더불어 3867개의 2차원 사진들을 추가로 이용했다. 이를 통해 미간의 거리, 코의 높이, 주근깨의 여부 등과 관련된 5개의 유전자를 찾아 PLOS ONE이란 의학저널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2016년에 발표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는 동안 유전자를 찾았다는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바로 멜라노코르틴-1-수용체를 뜻하는 ‘MC1R 유전자’로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으면 유멜라닌을 거의 만들지 못해 머리카락이 붉은빛을 띠고 피부가 창백하며 얼굴 나이가 2살이나 더 들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피부는 탄력을 잃고 처진다. 피부 탄력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피부의 진피층을 지지하는 콜라겐이라는 섬유다. 안타깝게도 콜라겐은 나이 들면서 감소해 제발 없어졌으면 하는 주름을 만들고 피부 탄력을 떨어뜨리는 주원인이 된다.

그런데 콜라겐 감소속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바로 콜라겐 유지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유전자 중 하나인 MMP1 유전자에 변이가 있으면 남들보다 콜라겐이 더 빨리 감소되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유전자가 얼굴의 특성, 노화와 관련돼 있다.

이런 유전자의 특성을 이용해 미국의 스타트업인 파라반 나노랩에서는 스냅샵이라는 유전자 기반의 얼굴 예측 프로그램을 판매하고 있다. 스냅샷은 개인마다 다른 DNA 단기 염기 배열(SNP)을 분석한 후 머신러닝과 딥러닝을 통해 개인의 외모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구체적으로는 환경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인종(혼혈도 파악 가능), 눈동자의 색, 머리카락의 색, 피부의 주근깨, 그리고 얼굴형을 예상해 전체적인 외모를 3D로 표현해주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이 가장 먼저 응용되는 곳이 바로 범인을 잡는 형사과다. 예를 들어 목격자가 없고 범인이 현장에 자신의 DNA를 남겼지만 DNA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사람이 없는 미제사건에서 범인의 윤곽을 알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줄 수 있다.

현재 이 기술은 미국 40주에서 적용되고 있다. 실제로 패러번 나노랩스는 2015년 홍콩클린업이란 청소업체 의뢰로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DNA를 통해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사람들의 얼굴 몽타주를 공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KIST와 테라젠 이텍스가 미아를 찾는 과정에 유전자기술을 이용, 미아의 성인 얼굴을 예측하는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단순 흥미를 뛰어넘어 과학 수사, 미아 찾기, 성형외과 수술 전 결과 예측 프로그램 등 사회 전반을 거쳐서 유전자 기반의 기술들이 활용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유전자만 갖고 얼굴 형태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식습관, 흡연, 음주 등 개인의 생활습관도 분명 얼굴 노화에 영향을 미친다. 유전체 데이터 외에도 보다 다차원적인 데이터에 근거해 얼굴의 특성을 예측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까운 미래에는 나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을 때 사진 대신 자신의 게놈 데이터를 주고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물론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에서는 외모, 재능 등 차별과 관련된 유전자 검사는 금하고 있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실현될 가능성은 낮을 듯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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