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아빠 따라 나도 아침형인간? ‘습관 유전자’ 이야기
[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아빠 따라 나도 아침형인간? ‘습관 유전자’ 이야기
  •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6.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희한한 습관을 가진 자녀를 두고 부부끼리 “서로 당신 닮았다”며 옥신각신할 때가 있다. 그때 지나가는 시누이가 확인 사살을 한다.

“OO 하는 것 보면 어렸을 때 오빠 모습 그대로인데요 뭘~.”

자녀들의 습관과 버릇도 부모로부터 유전될까? 마치  어미 오리를 따라 뒤뚱거리며 걷는 새끼 오리들처럼 어릴 적 습관은 후천적으로 각인(imprint)돼 따라하는 것뿐일까? 아니면 실제로 습관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따로 있을까?

필자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morning person)이다. 새벽 6시만 되면 전날 아무리 늦게 잤어도 눈이 번쩍 떠질 뿐 아니라 오전의 능률이 제일 높다. 반면 밤늦게까지 안 자는 대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올빼미형도 있다.

필자의 아버지 역시 아침형 인간으로 새벽 5시면 늘 일어나신다. 하지만 같은 집에서 자란 우리 형제 중 아침형 인간은 필자뿐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DTC 소비자를 갖고 있는 미국의 23&me 회사에서는 자신들의 고객 8만9000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아침형 인간을 결정하는 15개의 유전자를 발견, 2014년 세계적인 잡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를 진화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평소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라면 초기 인류시절 아침 일찍 일어나 채집하던 사람의 후손일 것이고 올빼미형이면 밤에 보초를 서던 사람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런 형태의 유전자 연구들은 수면 기전 연구나 자녀의 특성에 맞는 공부법 등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듯한 게으름도 유전자 탓일까? 2014년 영국의 애번딘 대학교와 중국의 과학원은 공동연구를 통해 게으름의 원인 유전자를 발견해 ‘카우치포테이토 (couch potato) 유전자’라는 흥미로운 이름을 붙였다.

하루종일 소파에 앉아 TV만 보면서 감자칩만 먹는다는 뜻의 이 유전자는 우리 몸의 의욕 및 집중력과 관련된 도파민 생성에 관여한다. 이 유전자의 변이가 있는 쥐들은 정상 쥐에 비해 비만일 뿐 아니라 걸음수가 1/3로 감소하고 더 천천히 걷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게으른 쥐에 도파민 활성체를 주입하자 걸음수도 빨라졌고 체중도 감소했다. 이 연구결과는 유명한 의학저널인 플러스원(PLOS ONE)에 실렸다.

2018년 옥스포드 의대에서는 영국바이오뱅크(UK BIOBANK) 데이터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9만명의 대상자의 하루 걸음수,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칼로리 소모 등과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14개의 유전자가 개인의 신체활동에 영향을 준다고 결론 내렸다.

이런 연구들은 개인의 게으름을 어쩔 수 없는 유전자 탓으로 돌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유전자의 기전에 따라 신체 활력을 높일 수 있는 신약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나아가 간식을 유달리 찾게 만드는 유전자, 그중에서도 유달리 단 것에 중독되게 만드는 유전자, 술이나 커피 등에 중독되게 만드는 유전자, 좀전에 확인한 것을 또 다시 확인해야 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적 습관유전자도 있다.

여전히 유전자가 습관을 지배하는지, 가족 환경이 습관을 지배하는지에 대한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았다. 타고난 유전자도 있지만 때로는 습관이 유전자를 바꾸기도 한다. 이것을 후성유전학이라 부른다. 특히 발생학적으로 중요한 태아 때는 엄마가 먹는 음식, 행동, 스트레스 등이 자녀의 훗날 습관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타고난 개인의 습관 유전자를 분석하고 아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창조됐고 개성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갖게 한다. 더 나아가 유전자에 따른 생활·건강관리가 보다 정교해지는 사회가 미래에 펼쳐질 것이다.

동시에 습관은 계속 변한다. 무엇보다 좋은 습관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리하게 태어난 유전자의 약점을 극복해 질병을 예방할 뿐 아니라 나쁜 유전자의 발현도 억제, 더욱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할 것이다. 유전자에 맞춰 살아가되 동시에 유전자를 극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똑똑한 소비자가 되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