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건강이야기] 묘생의 질을 좌우하는 ‘고양이 화장실’
[반려동물 건강이야기] 묘생의 질을 좌우하는 ‘고양이 화장실’
  • 유현진 닥터캣 고양이병원(고양이동물병원) 원장|정리·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19.06.13 1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현진 고양이전문병원 닥터캣(고양이친화병원 인증) 원장
유현진 고양이전문병원 닥터캣(고양이친화병원 인증) 원장

오늘은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고양이 화장실에 관해 알아보겠다. 고양이는 수만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지낸 개와 달리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온 지 수천 년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귀중한 식량에 해를 끼치는 쥐를 사냥하기 위해서 인간의 생활 주변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살았다. 서구 사회에서도 고양이가 실내 생활을 주로 하게 된 기간은 이제 겨우 100년 남짓이다. 화장실 모래가 상업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1940년대 후반부터 고양이의 실내생활이 본격화됐다. 그만큼 고양이의 삶에서 화장실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고양이가 사람과 같이 살아가려면 고양이에게 적절한 화장실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요즘은 화장실의 재질, 형태, 모양, 기능 등이 다양해졌다. 화장실 모래의 재질과 종류 또한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지붕이 있는 화장실, 문이 달린 화장실, 집안에 모래가 떨어지는 것을 줄여준다며 미로 같은 입구의 구조를 갖춘 화장실, 고양이가 배변이나 배뇨를 하면 자동으로 모래를 걸러주는 고가의 로봇화장실로도 모자라 고양이가 화장실을 갈 때마다 보호자의 모바일 디바이스로 정보를 전송해주는 IOT 기술이 접목된 최첨단 화장실도 있다. 화장실 모래도 가지각색이다. 고전적인 응고형 모래의 대표주자 벤토나이트도 품질이 정말 다양해졌고 두부 모래, 우드 펠렛, 옥수수 모래, 종이펄프 모래, 제오라이트, 크리스탈 실리카겔 모래까지 판매된다. 보호자는 무엇을 사용해야 좋을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화장실과 모래를 선택할 때 가장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점은 사람의 기준으로 좋은 화장실이 아니라 고양이의 입장에서 편하고 좋은 화장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화장실 개수

전문가들은 최소한 고양이의 수(N) + 1개 이상을 추천한다. 이로써 동거묘끼리 사이가 좋지 않거나 한 개의 화장실에 이미 배변이나 배뇨한 흔적이 있어도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

■ 화장실의 위치

고양이가 주로 머무는 장소에서 너무 멀지 않아야 한다. 시끄러운 기계음이 없는 곳, 약간의 빛이 있는 곳, 쉬는 곳이나 밥/물그릇과 약간의 거리가 있는 곳이 좋다.

■ 화장실의 크기

고양이 몸길이의 최소한 1.5배 이상 커야 한다. 또한 배변 행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한다.

■ 화장실 덮개

야생 고양이는 동굴 속에서 배변하지 않는다. 하늘 아래서 주위를 보며 배변하므로 당연히 지붕이 없는 화장실을 선호한다.

■ 모래의 종류와 깊이

고양이는 자연에서 모래나 흙을 사용하므로 부드러운 입자의 뭉치는 화장실 모래를 선호한다. 입자가 굵으면 밟는 촉감을 싫어할 수도 있다. 배뇨 후 충분히 덮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깊이로 모래를 깔아줘야 한다.

■ 청소 및 위생 상태

고양이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5회 정도 화장실을 이용한다. 2~4회의 배뇨와 1~2회의 배변을 하므로 반드시 하루에 1~2회 정도는 배설물을 청소해 줘야 한다. 일주일에 1회 이상의 화장실 세척을 추천한다.

고양이에게 화장실의 질은 곧 삶의 질이다! 적절한 화장실을 갖지 못한 고양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질병에 취약해지며, 여러 행동학적인 문제도 보일 수 있다.

행복한 고양이의 정상적인 배설활동은 화장실에 느긋하게 들어가서 모래 냄새도 맡고 자리를 잡은 후 배변/배뇨를 하고 배설물을 확인하고 충분히 잘 덮고 나오는 것이다. 고양이가 화장실에 들어가길 주저하다가 들어가서 불편한 자세로 볼일을 보거나, 화장실 끝에 엉덩이만 걸치고 몸은 밖으로 쭉 빼고 볼일을 본 후 제대로 덮지도 않고 후다닥 가버린다면 반드시 지금 사용 중인 화장실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본인이 낡고 비좁고 더러운 화장실을 급해서 어쩔 수 없이 이용할 때와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을 이용할 때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고양이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비싼 고급 화장실이 반드시 우리 고양이에게 최적의 화장실은 아니다. 전 세계의 유명한 고양이 전문 수의사들이 제일 많이 추천하는 화장실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커다란 리빙박스다. 특히 언더베드 리빙박스(침대 밑 수납을 위해 낮고 크게 만든 용품)에 품질 좋은 벤토나이트 모래를 넉넉히 깔아준다면 체격이 큰 고양이나 노령묘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고양이가 모래를 집 안에 흘리고 다니는 것이 걱정이라면(일명 사막화), 화장실 앞에 이런저런 장애물을 만들어 주는 것보다 화장실 앞에 넉넉한 사이즈의 매트를 깔아주는 것이 도움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고양이에게 화장실의 질은 삶의 질 그 자체다! 또한 보호자에게는 우리 고양이의 행복과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기도 하다. 고양이가 화장실이 아닌 곳에 배뇨 실수를 하고, 감자(고양이가 소변본 후 뭉쳐 있는 모래 덩어리)가 평소 사이즈보다 작고 개수가 줄어들거나, 화장실을 자꾸 들락날락하면 빨리 동물병원을 방문해서 상담을 받아 보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