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왜 누구에겐 술·담배가 더 해로울까? 술·담배 속 숨은 유전자 이야기
[김경철의 다가오는 미래의학] 왜 누구에겐 술·담배가 더 해로울까? 술·담배 속 숨은 유전자 이야기
  •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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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김경철 가정의학과 전문의(강남미즈메디병원 원장)

건강과 질병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술과 담배의 해악에도 사실은 개인차가 있다.

누구는 평생 담배를 피워도 폐암에 걸리지 않는 반면 누구는 간접흡연만 했는데도 폐암에 걸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또 술을 아무리 먹어도 끄덕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조금만 마셔도 금방 얼굴이 빨개지고 구토를 한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발생할까? 바로 술과 담배의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알코올(에탄올)은 체내에서 ADH 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하이드로 1차 분해된다. 이 아세트알데하이드는 체내에서 독소로 작용해 DNA에 손상을 일으키기에 재빨리 ALDH라는 효소에 의해 아세테이트로 분해돼야한다.

그런데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분해하는 이 ALDH 효소의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분해능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서양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이 효소의 유전자 변이가 거의 없는 반면 한국 같은 동아시아인에서는 약 30% 정도에서 유전적 변이가 있다. 유독 아시아인 중에서 술을 먹으면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 많아 이를 ‘아시안 홍조(Asian flush)’라고 부르기도 한다.

필자도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어서 술을 잘 못 마신다. 계속 마시다 보면 는다고 하는 것이 술인데 유전자의 변이 때문인지 여전히 못 마신다. 문제는 단순히 술만 못 마시는 게 아니라 독소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체내에 쌓여 식도암과 후두암이 2배 가까이 더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한 아이치현 암센터연구소가 암환자 1300명과 암에 걸리지 않은 1900명을 대상으로 알코올 분해와 관련있는 유전자 ‘ALDH2’의 형태와 음주습관 등을 조사한 결과, ALDH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이 한 번에 알코올 46g(소주 1병 정도) 이상을 섭취하는 음주를 매주 5일 이상 하면 80세까지 구강, 후두, 식도 등에 암이 생길 확률이 약 2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번은 필자의 환자 중 한 분이 유전자검사결과 ALDH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술을 잘 못 드시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시면서 하지만 중소기업 사장이라 어쩔 수 없이 술을 거의 매일 드신다고 했다.

필자가 그러면 식도암 등이 더 많이 걸린다고 했더니 이미 몇 년 전에 식도암수술을 했다며 당황해하시는 게 아닌가. 술 때문에 식도암까지 생겼었지만 특히나 술을 먹으면 안 되는 유전형인지 모르고 계속 술을 마셔왔던 것이다.

흡연과 관련된 유전자 연구도 많다. 폐암 유전자로도 알려진 CHRNA3 유전자는 니코틴성 아세틸콜린 수용체 단백질의 유전체인데 이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경우 흡연하면 이 물질이 활성화돼 폐암위험이 더 높아진다.

또 다른 흡연 유전자인 CYP2A6 유전자는 니코틴의 분해와 관련된 유전자다. CYP2A6 유전자의 변이로 인해 간의 니코틴 분해력이 저하되고 결과적으로 체내에서 니코틴이 제거되기까지 시간이 지연돼 니코틴 의존도가 3배가량 증가되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은 더 중독이 강해진다. 애당초 이런 유전자에 변이가 있으면 흡연을 시작하지 말아야한다.

도파민과 세로토닌 관련 유전자들은 니코틴 대사보다는 스트레스나 우울로 인해 흡연 중독을 일으키는 기전을 제공한다. 즉 이런 유전자들의 변이는 스트레스에 취약하게 만들고 보상적으로 음주나 흡연 등 중독성이 강한 유해 습관을 일으켜 금주와 금연을 더 어렵게 한다.

술과 담배와 관련된 유전자검사의 발달은 단순히 모든 유해 습관들을 유전자 탓으로 돌리거나 유전자 변이가 없을 경우 술과 담배를 맘놓고 하게 하는 면죄부 역할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유전자들은 술과 담배의 대사와 관련된 대표적인 유전자일 뿐 술과 담배가 질병에 영향을 주는 과정에서는 사실 훨씬 많은 유전자와 개인의 다양한 환경인자가 관여한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이를 뒷받침하고 유전자검사가 보편화된다면 금연과 금주 등 보다 건강한 생활습관과 건강증진 행위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지역사회 유전자 저널에 발표된 19개의 DTC(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검사 관련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상자의 23%가 긍정적인 생활습관의 변화, 19%가 금연, 12%가 운동 및 다이어트 등을 하게 됐다. 개인의 많은 데이터들이 생각을 바꿔 건강행위를 증진시킨 것이다.

여기에서 한 발짝 나아가 사람마다 개인의 유전자 차이를 고려해 맞춤 금주 및 금연방법 등이 제시된다면 더욱 효과적이고 스마트한 건강관리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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