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이야기] ‘멍’ 잘 드는 것도 약 때문일 수 있다고요?
[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이야기] ‘멍’ 잘 드는 것도 약 때문일 수 있다고요?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7.05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약국에서만 환자와 만나던 윤상현(가명) 약사는 얼마 전 ‘올바른 약물 이용 지원 사업(이하 올약)’이 시행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올약’은 10개 이상 다재 약물 복용환자 등을 대상으로 약사가 직접 방문해 약물 사용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점검해 드리는 활동입니다.

약사들도 환자에게 약을 주고 나면 정작 어떻게 복용하고 있는지 알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 사업이 시행되면 보다 정확한 복약지도가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윤상현 약사 역시 올약사업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지요.

드디어 첫 번째 환자인 80대 여성 김말순(가명) 님 댁에 방문했습니다. 심장이 좋지 않은 김말순 님은 혈압, 당뇨, 고지혈증, 관절약 등 10개 이상의 약물을 복용 중이셨습니다. 윤상현 약사는 환자와 많은 대화를 통해 약 복용법, 약물 중복 여부 등을 확인하고 생활요법 등을 말씀드렸죠.

“약 드시면서 불편한 사항은 없으셨어요?”

“없어. 몇 년째 먹는 약인데 뭐. 그냥 약을 안 먹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약 덕분에 건강 유지하시는 거예요, 아시죠? 영양제 더 드시는 건 없으시고요?”

“왜 없어? 자식들이 이것저것 사줘서 먹고 있지!”

김말순 님은 자식 자랑에 어깨를 으쓱이며 구석에 있는 영양제 한 움큼을 꺼내셨습니다. 관절에 도움을 주는 ‘리프리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비타민D’ ‘프로바이오틱스’ 등이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그 뒤로도 ‘오메가3’ ‘은행엽엑스’ 등이 더 있었습니다.

차근차근 개봉 날짜와 보관 상태를 확인하던 윤 약사는 순간 불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환자의 조제약에는 ‘와파린’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님, 혹시 코피 나거나 멍이 잘 들지는 않으세요?”

“코피는 잘 모르겠는데 멍은 잘 들어. 여기 봐. 살짝 부딪쳤는데도 이렇게 되더라니까.”

할머니께서 보여주신 팔뚝에는 시퍼렇게 멍이 든 자국이 보였고 다른 부위에도 시간이 좀 지났는지 노랗게 변한 멍 자국이 보였습니다.

“어머님, 이건 약과 영양제를 같이 드셔서 그럴 수 있어요. 건강기능식품은 당분간 중단하시고 다음에 병원 가셨을 때 의사 선생님과 꼭 상의해 주세요.”

“몸에 좋다고 해서 열심히 챙겨 먹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김말순 님은 영양제들이 너무 아깝다며 고집을 피우셨습니다. 설득하는 데 시간이 다소 걸릴 수밖에 없었지요.

혈액은 혈관을 따라 흘러야합니다. 혈관은 닫힌 구조를 갖고 있어 혈액이 유출되지 않게 돼 있어요. 몸 안에 혈액은 평균 5000~5500ml나 있지만 작은 생수병 하나 반 정도(750ml)만 빠져나가도 신경이 불안해지고 혈압이 떨어집니다.

이처럼 출혈은 생명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우리 몸은 혈관이 손상되면 바로 혈액 손실을 막을 수 있도록 최적화돼 있습니다. 혈액에는 다양한 성분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혈소판과 혈장내 응고인자, 섬유소 등이 지혈작용을 담당한답니다.

일단 혈관이 손상되면 혈소판과 응고인자들이 활성화됩니다. 먼저 혈관 내피세포에 혈소판이 부착돼 구멍을 메웁니다. 이를 ‘혈소판 마개(platelet plug)’라고 불러요. 활성화된 응고인자들은 섬유소를 생성하면서 부착된 혈소판과 결합해 혈액을 응고시킵니다. 이것을 ‘혈전(blood clot(=thrombus))’이라고 부르죠.

이처럼 정상적인 혈액 응고과정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지만 부적절한 혈전 생성은 큰 문제가 됩니다. 자칫 혈관 벽에 부착된 혈전이 많아지면 혈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혈전이 혈류에 영향을 받아 떨어져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큰 혈관은 통과하겠지만 작은 혈관은 막을 수 있습니다. 혈관이 막힌 부분부터는 산소와 영양분을 제공받지 못해 결국 조직이 손상되지요. 이렇게 떠다니는 혈전을 ‘색전(embolus)’이라고 부릅니다.

동맥경화증, 관상동맥질환, 이코노미증후군 등과 같은 혈관질환은 혈전에 의해 생기며 심부정맥 색전증, 폐 색전증, 뇌 색전증 등은 색전에 의해 발생합니다.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증 같은 대사질환자나 고령자, 비만, 운동 부족자, 경구 피임약 복용자 등은 혈전 발생위험이 높아 이에 대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만일 약을 복용해야 할 정도로 혈전 발생위험도가 높다면 혈전 생성 억제제를 사용해야합니다. 앞서 살펴 보았듯 혈전이 생기는 원인은 혈소판이 응집하는 것과 섬유소가 결합하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항혈전제도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로 나누어집니다.

항혈소판약제는 프로스타글란딘 생성을 억제하는 아스피린과 ADP 수용체를 차단하는 클로피도그렐(플라빅스)가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가장 많이 사용되는 항혈전제입니다. 그 뒤를 이어 효과와 부작용을 개선한 프라수그렐(네피언트), 티카그렐러(브릴린타) 등이 출시돼 사용되고 있습니다.

항응고제는 비타민K 길항제인 와파린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음식 제한이나 혈중농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하는 단점 등으로 인해 최근에는 다비가트란(프라닥사)나 리바록사반(자렐토), 아피사반 등 개량된 신약들도 경우에 따라 사용되고 있지요.

하지만 아무리 단점을 개선했다고 해도 혈전 생성 억제가 주 효능이기 때문에 출혈을 증가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항혈소판제인 아스피린의 경우 출혈 질환 발생을 70% 정도 증가시키며 한때 위장관, 두개강내 출혈도 일으킨다고 해서 이슈가 된 적도 있습니다. 클로피도그렐도 아스피린보다 위장관 출혈을 적게 일으킨다고는 하지만 다른 출혈증 증가에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항응고제 역시 출혈이라는 치명적인 합병증을 동반합니다. 일반적으로 출혈 가능성이 4배로 늘어난다고 해요. 따라서 색전증 위험성과 출혈 합병증 발생 위험성을 견주어 이득이 될 때만 사용합니다.

이런 출혈 부작용은 코피나 안구 출혈 등으로 나타나 환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인지할 수 없는 출혈증입니다. 위장관 출혈이나 뇌출혈 등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국내 주요 학회에서는 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아스피린 복용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상이나 수술 이후 출혈이 멎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내시경검사나 발치 등 흔히 받는 검사나 시술로도 지혈이 늦어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요. 혈전억제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외상에 주의해야합니다. 꼭 상처가 아니더라도 타박에 의해 쉽게 피하 출혈이 발생할 수 있어요.

흔히 멍이라고 부르는 것도 피하 출혈의 일종입니다. 출혈 증상은 음식이나 영양제, 약물에 의해 더욱 심해질 수 있습니다. 김말순 님도 항응고제와 출혈을 증가시킬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을 동시에 복용했기 때문에 멍과 같은 피하 출혈 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래 다양한 건강기능식품 성분은 모두 출혈을 증가시킬 수 있으니 항혈전제를 복용 중이라면 반드시 의사, 약사와 상의 후 드셔야합니다.

마늘, 콘드로이틴, 폴리코사놀, 생강, 글루코사민, 포도주, 인삼, 알코올, 울금, 은행잎, 카페인, 나토키나아제, 감초, 정향, 가시오가피, 캡사이신, 대구간유, 양파, 소팔메토 열매 추출물, 대구간유, 양파, 캡사이신, 당귀, 탱자나무 열매, 단삼, 호로파, 비타민E, 황금, 아마씨, 오메가3

<출처 : 서울대학교병원 약제부 ‘항응고약물(와파린) 복용 안내’>

만일 항응고제를 드시는 경우라면 비타민K 복용도 주의해야합니다. 종합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 속 비타민K는 고용량이어서 특히 조심해야합니다. 비타민K는 시금치 등 녹색 채소류나 콩류에도 다량 들어있어 섭취를 주의하라고 하지만 한 가지 음식만 계속 먹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골고루 드시는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일부 항생제나 항진균제, 진통제 등도 항응고제 효능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기나 피부 등의 증상으로 병원 방문 시에는 항혈전제 복용사실을 꼭 알려주셔야해요. 마지막으로 내시경이나 수술 등을 하기 전에 항혈전제 및 혈관 작용약 중단기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출처: 문답식 약사에게 필요한 질환별 약료지식Ⅱ
출처: 문답식 약사에게 필요한 질환별 약료지식Ⅱ

쉽게 지나치기 쉬운 멍이 자주 발생한다면 혈액 응고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약을 복용하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다면 언제나 단골 약국 약사와 상의하시는 것 도 잊지 마시고요.

※참고

본문에 제시된 환자와의 대화는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 재구성 된 것입니다.

※참고 문헌

Lauralee Sherwood, 《인체 생리학 제9판》, 강명숙 외 21 옮김, 라이프사이언스, 2016

《Medical Pharmacology at a Glance 6th》, M.J.Neal, Wiley-Blackwell, 2009

Takeshi Ueda 《약 바로 알고 처방하자》, 김영철 옮김, 대한의학, 2017

오오츠 후미코 《알기쉬운 약물 부작용 메커니즘》, 정성훈 옮김, 정다와,2015

키무라 다케시 《문답식 약사에게 필요한 질환별 약료지식2》 손기호 옮김, 신일서적, 2018

《근거중심의 외래진료 매뉴얼》 이상봉, 정세영, 대한의학서적, 2011

《항혈전 치료제》 오석규, 대한혈관외과학회지;제 19권 제2호(2003)

《심장과 혈관-항혈전제와 혈전용해제》 Volume 4 Number 3 (통권 제11호) 2002. ISSN 1229-5272

《허혈성 뇌졸중 치료의 최신지견》 윤혜원, 나정호, J Korean Med Assoc. 2016 Oct;59(10):775-784. Korean.

《약제부 항응고약물(와파린) 복용 안내》 서울대학교병원 약제부

《항혈전제의 분류와 사용 원칙: NOAC도 궁금하죠?》 김범준, 2015년 대한신경과학회 전공의 통합교육

《항혈소판제, 항응고제: 어떻게 할 것인가?》 김은수, 제54회 한소화기내시경학회 세미나

《항응고제와 항혈전제, 사용 현황과 새로운 약물들》 박준철, 제50회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세미나

《Pathophysiology of Hemorrhagic Shock》 Wu Seong Kang, Ji Woong Yeom, Young Goun Jo, and Jung Chul Kim, J Acute Care Surg 2016;6:2−6

“항혈전제, 클로피도그렐 정체속 과반수 … 신약과 복합제 소규모 성장” 하이엔드 의약뉴스 2015년 3월 19일 기사

“[약VS藥 꼼꼼 비교] 아세틸 살리실산 vs 에독사반<6> 혈전예방제” 약사공론 2019년 6월 7일 기사

“[약 이야기]고혈압, 당뇨병 있으면 아스피린 먹는 게 좋나요?” 중앙일보헬스미디어기사 2018년 6월 22일 기사

※참고 사이트

https://www.drugs.com

약학정보원 홈페이지 https://www.health.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