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이야기] 비만도 아닌데…식욕억제제, 좀처럼 끊기 힘들다고요?
[배현 약사의 약 부작용이야기] 비만도 아닌데…식욕억제제, 좀처럼 끊기 힘들다고요?
  •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09.0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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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배현 밝은미소약국(분당) 약국장

“김소영(가명) 님, 안녕하세요.”

김소영 님은 한눈에 봐도 수척한 30대 초반의 여성입니다.

오늘은 호흡기질환으로 병원 방문 후 약국에 오셨습니다. 저는 조제 전에 처방 내용을 먼저 확인했지요.

“오늘은 열 나고 콧물, 코막힘이 있으셨나 봐요?”

“네.”

“항생제도 포함된 처방이고요. 평소 항생제 알레르기 등은 없으셨지요?”

“네, 없어요.”

“조제하는 데는 2~3분 정도 걸립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원래 쾌활하신 분인데 오늘은 평소보다 기분이 좋지 않으신지 단답식으로 대답만 하셔서 조금 의아했습니다.

“김소영 님, 약 나왔습니다. 혹시 다른 약이나 따로 드시는 건강기능식품은 없으신가요?”

“다른 건 없고요. 디에타민 먹고 있어요.”

한눈에 봐도 마른 체격인데 식욕억제제를 드시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식욕억제제는 오전에 드시죠? 오늘 약에도 교감신경 항진제가 들어 있어 같이 드시면 입이 마르고 시야가 흐려지거나 소변, 대변 보기가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심하면 저녁에 잠도 잘 안 올 수 있어요. 식욕억제제는 바로 끊을 수 없으니 불편한 증상이 생기면 처방받으신 병원에 바로 문의해 주세요. 그런데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식욕억제제는 왜 드세요?”

프라이버시라 조심스러웠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참견이세요!” 라며 싫은 소리를 하신다 해도 혹시 약물 남용상태이시면 큰일이니까요.

“약을 많이 받아 봤지만 약사 님처럼 질문하는 사람은 처음이네요. 식욕억제제를 안 먹으면 살이 금방 찌고 컨디션이 너무 나빠져서 계속 먹게 돼요.”

다행히 김소영 님은 제 질문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으셨어요.

“끊으면 끊겠지만 그게 쉽지 않네요. 중독되는 거 아니겠죠?”

김소영 님은 아마 약을 먹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먹게 되는 자신이 걱정되기도 하고 실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중추에 작용해서 식욕을 억제하는 제제들은 기분이 흥분되는 부작용이 있어요. 그러니 약물을 갑자기 중단하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의욕이 떨어질 수 있어요. 오랫동안 드셨다면 약을 천천히 줄이는 방법으로 요요현상이나 컨디션 난조를 막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디에타민은 중단해도 금단증상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해요. 자주 가시는 병원에 방문하셔서 약물 감량과 중단 요법을 상의해 보세요.”

“그래요? 저는 약을 먹다가 딱 끊었을 때 오늘처럼 기분이 다운됐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군요. 감량과 중단 요법을 반드시 상의해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올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는 흥미로운 데이터를 공개했습니다. 마약류 통합관리 시스템 빅데이터를 활용해 식욕억제제 처방 정보를 분석, 발표한 것이죠.

2018년 7월부터 2019년 4월까지 10개월 동안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은 국민은 116만명이나 됐다고 합니다. 전체 국민 45명 중 1명꼴로 식욕억제제를 복용했다는 것인데 만일 0~19세를 제외한 인구 약 4100만명으로 생각해보면 35명 중 1명꼴이 됩니다. 성비로 복용 비율을 따졌을 때는 당연히 여성이 105만명(92.7%)으로 압도적으로 많았지요. 성인 남녀 비율을 대략 50%로 놓고 계산해 본다면 성인 여성 20명 중 1명이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것입니다.

식약처로부터 인증받은 식욕억제제는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로카세린, 마진돌이며 이 중 펜터민 복용이 74만명으로 다른 4개 성분을 합친 것보다 많이 복용했다고 합니다.

정말 많은 국민, 아니 여성들이 식욕억제제를 복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체중이 적게 나가는 걸 미(美)의 기준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한 원인이겠지만 이와 관계없이 약 복용 후 느껴지는 컨디션 변화도 계속 약을 먹게 되는 이유입니다.

펜터민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1959년 승인된 이래 오랫동안 사용돼 온 식욕억제제로 중추흥분제인 암페타민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 중추흥분제는 뇌신경 전달 물질인 노르아드레날린 분비를 자극합니다. 증가된 신경전달물질이 식욕을 조절하는 시상하부 ß-아드레날린 수용체를 자극하면서 식욕을 억제하지요.

극도로 흥분되는 게임이나 운동을 할 때 밥 생각이 안 나는 걸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때문에 펜터민 복용시간은 오전 식전 또는 식후 1~2시간으로 돼 있습니다. 과도한 흥분으로 수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오후 복용은 피하도록 권고하고 있죠.

약을 복용하면 3~4.4시간에 혈중 최고 농도에 이르며 12~14시간 동안 식욕 억제 효과를 보입니다. 아침 8시에 약을 복용하면 저녁 10시까지 식욕이 뚝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문제는 이런 약물들은 식욕을 억제하는 것뿐 아니라 중추신경을 지속적으로 흥분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약물 복용 후 나타나는 과잉 자극, 불안, 현기증, 불면증, 행복감, 떨림, 두통 등은 이러한 과흥분 때문에 나타납니다. 폐고혈압, 판막질환 등 심혈관질환이나 녹내장 등을 악화시킬 수 있으며 교감신경 흥분으로 인한 항콜린 작용이 나타나 소화관 장애 등을 일으키기도 하죠. 두드러기 발생이나 성욕 감퇴 등의 부작용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펜터민 같은 중추흥분제들은 다른 약물과 복용 시 부작용이 더욱 심해질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MAOI 항우울제’입니다. 고혈압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항우울제 복용 14일 이내에는 펜터민을 복용해선 안 됩니다.

술 또한 부작용 위험을 높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 약물 농도가 오래 유지되기 때문에 펜터민을 복용한 날에는 술을 드시면 안 됩니다. 펜터민 복용으로 교감신경이 흥분해 혈압이나 혈당이 조절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부작용 때문에 대한비만학회는 비만치료지침을 통해 체질량 지수 25kg/㎡ 이상인 환자에서 비약물치료로 체중감량에 실패한 경우 약물 처방을 고려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약물 치료 시 반드시 식이, 운동, 행동치료를 병행하며 약물치료 시작 후 3개월 내에 5% 이상 체중 감량이 없다면 약물을 중단 또는 변경할 것을 규정하고 있지요.

펜터민 같은 중추흥분제 식욕억제제 효과는 수주일 내에 내성이 나타난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때는 용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투여를 중단해야 합니다. 펜터민의 치료기간은 4주로 정해져 있어요. 4주 연속으로 복용하면 그만 복용해야합니다.

하지만 주변에 많은 분들이 오랫동안 약물을 복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추흥분제를 복용하다가 중단하면 피로, 우울감, 의욕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위에 소개해 드린 김소영 님 역시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지만 이런 느낌 때문에 약을 계속 드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펜터민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미국 마약단속국(DEA, Drug Enforcement Adminstration)에서는 Schedule Ⅵ로 분류해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도 중추흥분제가 갖고 있는 특성상 얼마든지 남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최근 연구에 따르면 펜터민을 복용하다 중단해도 금단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비만환자의 경우 체중 감량으로 인해 심혈관질환이 오히려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도 있어요. 단 이는 비만 판정을 받은 사람이 의사의 정확한 지시에 따라 펜터민을 복용했을 때 얻어지는 이득입니다. 적정 체중이라면 득보다는 몸에 미치는 폐해가 더욱 크기 때문에 권장하기 어렵습니다. 허가된 치료기간 이상으로 복용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되겠지요.

많은 이들이 펜터민을 복용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이들이 기분 변화 등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약을 끊지 못하고 계속 남용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비만이나 과체중이 아닌데도 식욕억제제를 장기간 복용하고 있다면 반드시 의사, 약사와 꼭 상의해 주세요. 지금 느끼는 좋은 기분이 그저 약 때문일 수 있으니까요.

TIP. 펜터민 함유 식욕억제제

노브제정(대화), 디에타민정(대웅), 레디펜정(명문), 레티스정(이니스트바이오), 로우칼정(유니메드), 로페트정(우리들), 메타맥스정(구주), 비엠진정(한국비엠아이), 비타펜정(콜마파마), 솔레민정(메디카코리아), 씬스펜정(조아), 아디펙스정(광동), 아트민정(마더스), 웰트민정(서울), 케이터민정(한국콜마), 틴틴정(에이프로젠), 판베시서방캡슐(부광), 페니민정(태극), 페딘정(명인), 페스틴정(대한뉴팜), 펜민정(영일), 펜키니정(대원), 펜타인정(일동), 펜타젠정(한림), 펜타지아정(휴비스트), 펜터미정(제이더블유중외신약), 펜트민정(바이넥스), 푸리민정(알보젠코리아), 피티엠정(대한뉴팜), 휴터민정(휴온스)

※참고

본문에 제시된 환자와의 대화는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 재구성 된 것입니다.

※참고문헌

Lauralee Sherwood, 《인체 생리학 제9판》, 강명숙 외 21 옮김, 라이프사이언스, 2016

J.G.Salway, 《한눈에 알 수 있는 의학생화학》, 백영환, 범문에듀케이션, 2013

《약국에서 써본 두번째 약 이야기》, 박정완, 조윤커뮤니케이션, 2016

《Addiction potential of phentermine prescribed during long-term treatment of obesity》 Hendricks EJ, et al. Int J Obes (Lond). 2014.

《비만의 치료지침》 박용우. 대한의사협회

《약물백과-펜터민》 약학정보원

“Stopping Phentermine After Long-Term Treatment Does Not Result In Amphetamine-Like Withdrawal” medicalnewstoday. 2013년 5월 17일 기사

“Was Addicted to the Weight-Loss Drug Phentermine for 15 Years: 'I’d Spiraled to a Dark Place'” explore health, 2019년 7월 11일 기사.

“Phentermine for weight loss seems safe, effective longer term” kaiser permanente 2019년 3월 22일 기사

“국민 45명 중 1명 식욕억제제 처방…최다 처방 성분은 펜터민” 청년의사 2019년 7월 30일 기사

“WEIGHT LOSS OR BRAIN LOSS? : LONG TERM USE OF PHENTERMINE POSSIBLY INCREASES RISK FOR ISCHEMIC STROKE” journal of hospital medicine 2016년 3월 6일 기사

※참고 사이트

https://webmd.com/

https://www.nlm.nih.gov/

https://irresistibleicing.com/phentermine-addiction.html

https://www.addictioncenter.com/stimulants/diet-pills/

https://dailymed.nlm.nih.gov/

https://www.drugs.com

약학정보원 홈페이지 https://www.healt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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