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건강이야기] 길고양이와의 공존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
[반려동물 건강이야기] 길고양이와의 공존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
  • 이바른 대구 죽전동물병원(동물메디컬센터) 내과원장ㅣ정리·이원국 (21guk@k-health.com)
  • 승인 2019.09.09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귀가 잘린 고양이를 본 적이 있나요?

예로부터 사람 곁에서 쥐를 잡으며 살아왔던 고양이는 도시화로 인해 양극화된 삶을 살게 됐다. 어떤 고양이는 가정에서 사람과 함께 지내며 반려동물로서의 삶을 살고 그러지 못한 고양이는 어느 정도의 야생성을 간직한 채 길에서 나름의 생태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길고양이가 됐다. 자연에서 작은 새나 설치류를 주로 잡아먹는 고양이에게 도시, 길 위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 팍팍해졌다. 결국 많은 길고양이가 사람이 버린 쓰레기에서 영양을 보충할 음식물을 찾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위 포식자가 사라진 도시, 거기에 고양이 반려인구가 늘어나며 더해진 유기묘 수까지 가세해 이제는 길고양이가 너무 많다고 한다. 눈에 치이듯 어디에서라도 한 번쯤은 보게 되는, 사람을 위협하기는커녕 눈치껏 피해 다니고 섣불리 곁에 다가오지도 않는 이 길고양이들은 언제부터 사회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인식된 걸까. 쓰레기봉투를 엉망으로 만들고 발정기에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는 것. 그것은 온전히 고양이의 탓일까. 우리가 모두 함께 어우러져 살 방법은 없을까.

가끔 한쪽 귀 끝이 반듯하게 잘린 길고양이를 볼 수 있다. 일상에서는 잘 생기지 않는 이런 형태의 상처는 누군가의 장난이나 학대가 아니라 바로 이 고양이는 ‘중성화수술’을 받았다는 일종의 표식이다.

‘TNR’.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인도적인 방법으로 포획해(Trap), 중성화수술을 실시한 후(Neuter), 원래 포획했던 장소에 다시 방사하는(Return)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고양이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곳의 모든 고양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역을 지키던 고양이가 사라진 빈 영역에는 반드시 다른 고양이가 유입돼 다시 세력을 형성한다. 영역동물인 고양이의 특성이다. TNR은 길고양이가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발정기의 영향에서 벗어나 큰 싸움에 휘말려 다치거나 심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억제할 수 있게 한다. 또 무분별한 개체 수 증가를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이바른 대구동물병원(동물메디컬센터) 죽전 내과원장
이바른 대구동물병원(동물메디컬센터) 죽전 내과원장

■TNR의 현장, 자칫 꺼질 뻔한 생명이 살아나다

언젠가 TNR을 위해 포획돼 수술대에 오른 한 암컷 고양이가 있었다. 사람 손을 전혀 타지 않은 야생고양이였다. 애초에 마취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쓰다듬는 것조차 불가능했기에 별다른 검사를 하지 못하고 바로 수술을 진행해야 했다.

“자궁이 너무 큰데요.” 고양이의 자궁은 자그마한 몸집과는 다르게 출산 예정일이 임박한 고양이와 비슷할 만큼 컸다. 임신 기간이 두 달 남짓인 고양이는 사람과 다르게 며칠만 일찍 출산해도 미처 성숙하지 못한 새끼는 생존하기 어렵다. 새끼를 꺼낸다고 해서 산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참담한 상황에 수술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수술을 집도하던 동료 수의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한마디 말과 함께 제왕절개 수술을 시작했다.

“한번 살려보죠.”

수술 끝에 고양이 4마리가 태어났다. 정확한 임신일수를 알지 못했기에 스스로 호흡하기에는 너무 이른 건 아닐지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모두 건강했다. 그렇게 수술실에서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질 뻔했던 아기 고양이들은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으로 나왔다.

모두가 박수를 치며 아기 고양이의 탄생을 기뻐했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수술을 받은 어미 고양이가 병원에서 이틀간 안정을 취한 후 다시 길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기 고양이를 어미와 함께 길로 내보낼 수 없어 당장 병원 직원들이 아기 고양이 육아를 자처했다. 두 시간마다 분유를 먹이고 배변을 유도해야 하는 아기 고양이들을 수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돌아가면서 집으로 데리고 퇴근해 돌보기 시작했다.

육아는 쉽지 않았다. 물수건으로 아기 고양이를 닦아주는 것을 보다 못한 동료의 어머니는 직접 물을 끓인 후에 식혀서 손수 목욕을 시켜주기도 했다. 아무리 열심히 돌보아도 여전히 살도 잘 붙지 않고 꼬질꼬질한 아기 고양이들의 모습에 모두 의기소침하던 그때,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어미 고양이가 방사했던 그 자리에서 다시 포획돼 병원으로 온 것이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예민한 어미 고양이를 위해 병원 제일 구석 조용한 입원실을 마련했다. 야생고양이는 사람 손을 탄 아기 고양이를 돌보지 않을 수도 있고 지금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새끼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어미 고양이의 입원실 한 편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놓아두고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걱정과는 달리 어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기 고양이를 핥아 주었다. 나머지 아기 고양이들을 넣어주니 차례로 물고 구석으로 가 젖을 물리고 품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지켜본 모든 사람은 작은 환호성을 질렀다. 아마 앞으로 아기 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힘겨운 육아에서 벗어난 기쁨(?)이 교차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환경이 바뀌어 혹시나 밥을 먹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그것 또한 기우였다. 어미는 한 끼도 굶지 않고 잘 먹었다. 사흘이 지나니 아기 고양이들의 뭉쳐있던 털은 뽀송뽀송해지고 살도 통통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실로 사람의 손길과는 차원이 다른 육아의 현장이었다.

그 후로 어미 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들이 젖을 떼기까지 한 달간 병원에 머무른 후 원래 살던 길로 돌아갔다. 비록 사람에게는 경계가 심한 녀석이었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 자신의 새끼 외에도 어미를 잃은 아기 고양이 두 마리에게 젖을 물리고 품을 내어준 착한 고양이였다.

한 번 포획된 길고양이는 풀어주고 나면 다시 잡기가 그렇게 어렵다던데. 혹시 병원에 두고 간 아기 고양이가 눈에 밟혀 그 험한 길을 돌아왔던 걸까. 그렇게 네 마리 아기 고양이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어미가 길로 돌아간 후에 아기 고양이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에게 입양됐다.

아름다운 해피엔딩 뒤에는 수의사 생활 내내 곱씹을 만한 적지 않은 여운이 남았다. 수의사로서 수많은 길고양이를 위한 인도적인 TNR 사업에 동참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중성화수술뿐인가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다. 길고양이 포획, 수술에 대한 지침은 있지만, 만삭의 어미 고양이, 네 마리 아기 고양이, 끝내 병원으로 돌아와 아기 고양이에게 젖을 물린 작은 어미 고양이에 대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 경이로운 이야기는 그저 운 좋게 일이 풀려 모두가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던, 한 편의 동화 같은 일일 수도 있다는 씁쓸함이 진하게 남았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세요!

TNR을 위해 포획한 고양이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건강 상태를 평가하고 적합하지 않은 고양이는 임시 보호하며 수술한 고양이를 회복하기까지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기관이 생겨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당장은 현실적이지 않은 바람인 것 같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며 포획하기 전뿐 아니라 수술 후 길로 돌아간 고양이의 회복까지 멀리서나마 지켜볼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들에게 규칙적인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무작정 불쌍하다고 먹을 것을 던져주라는 것이 아니다. 책임감을 갖고 정기적으로 동일한 위치에 사료를 제공하거나 공식적인 급식소를 설치해 그 구역 고양이 수와 상태를 확인하길 권한다. 거기다 TNR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면 수술을 받게 할 고양이, 수술을 받고 돌아온 고양이의 상태를 챙겨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마저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끊이지 않는 길고양이 학대, 그리고 길고양이에게 사료를 주려는 사람과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의 쫓고 쫓기는 관계는 종종 뉴스에 보도된다. 밥을 먹으러 오가느라 그 장소에서 눈에 띄는 고양이들이 일시적으로 늘어나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언젠가 눈에 보이는 동네 고양이가 싫어 극약을 놓고 지하실에 가둬 몰살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이 우리나라에 TNR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아무리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인간이 형성한 도시에서 나름의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이 작은 생명체를 대책 없이 무작정 혐오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고양이들도 도시의 생태계의 일원이다. 이제는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부드럽게 접근하는 사회적인 약속이 필요하다. 많은 지자체에서 TNR 사업과 급식소 설치를 하며 길고양이와의 평화로운 상생을 꾀한다. 또 길고양이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시간은 좀 걸릴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다림과 너그러운 마음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