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가를 하늘나라로 보낸 ‘악성림프종’
짱가를 하늘나라로 보낸 ‘악성림프종’
  • 황철용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 승인 2013.09.02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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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 나는 짧은 크림색 털과 여우처럼 쭉 나온 주둥이와 바짝 선 큰 귀가 무척 매력적인 ‘짱가’는 조상이 누구인지 추정키 어려운 일명 발바리과로 분류되는 애견이다. 어린 자녀와 내원한 젊은 부부는 십년 전 남편이 대학생일 때 육교위에서 강아지 몇 마리를 박스에 담아 팔고 계신 할머니로부터 짱가를 데려와 평생가족이 됐다고 했다.

짱가라는 이름은 80년대 초반 초등학교를 다녔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이름이다. 부부는 그 주인공과 같이 믿음직스럽고 강인하며 가족에게 큰 희망이 되는 애견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짱가의 목에 혹이 생겼답니다. 동네 병원에 갔었는데 상태가 심각하다면서 큰 병원으로 가 보라 했습니다. 많이 심각한가요?”
근심 가득한 얼굴에 목소리마저 떨리는 남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 손을 잡고 진료실 한쪽에 서 있던 아이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엄마! 짱가 죽어?” 아직 진료를 시작도 하지 않았고 물음에 대한 답변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미 진료실 분위기는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해 보였다.

“괜찮아요. 짱가가 조금 아프긴 한데 이제 병원에 왔으니 곧 괜찮아질 거예요. 봐요. 저렇게 짱가도 괜찮다고 꼬리치고 있잖아요?”

“애견에서 발생되는 악성림프종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서는 평소 애견 목 밑의 림프절이 부어있지 않은지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우선 아이를 달래기 위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만져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짱가의 목 양쪽 혹 상태는 심각했다. 하지만 눈도 충혈 되고 부어오른 목 때문에 입을 벌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지만 짱가는 진료실에서 처음 만난 의사들과 눈이 마주치면 힘든 와중에도 꼬리를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했다. 짱가는 이렇게 천성적으로 낙천적이며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착한 애견이었다.

“혹에서 세포를 조금 떼어내 검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혈액검사와 방사선촬영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곧 바로 여러 가지 검사가 실시되었고 검사결과 짱가는 악성림프종을 앓고 있는 것으로 진단됐다. 흔히 임파선 또는 림프절로 불리는 신체 면역조직계에 발생하는 혈액성 종양 중 하나인 악성림프종은 개에서 비교적 발병 빈도가 높은 암(癌) 중 하나이다.

대부분 짱가에서와 같이 목덜미 부근의 턱밑림프절 부위와 같은 림프절에서 발병되나 전신 어느 장기에서도 발생할 수 있고 병이 진행되면 골수, 간, 비장 등에서도 병변이 발견된다.

사실 개의 악성림프종은 워낙 발병이 많은 암 중 하나이기에 이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진행돼 있고 치료를 위한 항암요법 방법도 다른 암에 비해 잘 수립돼 있는 편이다. 항암요법을 통해 암의 진행을 늦추게 할 수 있고 발병 후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확률도 높을 뿐 아니라 초기에 발견되면 완치까지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짱가는 이미 내원 시 악성림프종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간과 비장뿐 아니라 골수에서도 병변이 관찰되고 있는 말기상태였다. 설령 항암요법을 실시하더라도 그 효과를 장담키 힘든 상황이라 선택이 필요했다.

힘들지만 유일한 희망인 항암요법을 받는 경우와 지금의 상태를 받아드리고 소염제와 진통제를 복용하면서 힘들어 하는 증상 하나하나에 대처하다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게 해 주는 경우가 있지만 이 중 어떤 선택이 더 옳은 판단인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름이 짱가 아닙니까? 우리 짱가는 로봇 짱가처럼 어떤 어려운 상황도 잘 이겨 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부부의 굳은 의지에 따라 짱가는 이후 항암요법을 받았고 모두의 바람대로 기적처럼 수개월에 걸친 항암요법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항암요법을 끝내고 두 달 무렵이 될 때쯤 다시 짱가의 몸 여기저기에서 림프종이 재발됐고 결국 엄마, 아빠 그리고 짱가의 등을 잡고 걸음마를 시작한 부부의 아들의 슬픔을 뒤로 한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혹이 만져질 때 빨리 병원을 찾았어야 했는데 직장 다니고 아이 돌보느라 차일피일 미룬 게 정말 후회됩니다.”

초기에 발견되면 예후가 좋을 수도 있지만 이미 이상이 있을 정도로 림프절이 크게 만져 진다면 암세포는 몸 속 곳곳에 퍼져 있는 상태일 수 있다는 말로 위로를 드렸다.

또 포기하지 않고 짱가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은 짱가도 알고 있을 거라는 것도 말해드렸다.

“저도 로봇 짱가 좋아했는데 마지막 회에 그 로봇 짱가도 하늘나라로 갔었지요? 아마 이름이 같은 두 짱가가 하늘나라에서 신나게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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