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떫은맛’도 적당히 즐기면 ‘약(藥)’ 된다
[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떫은맛’도 적당히 즐기면 ‘약(藥)’ 된다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19.10.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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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떫은맛은 혀가 느끼는 정확한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흔히 얘기하는 맛이다. 그런데 사실 떫은맛은 맛이 아니라 혀 점막이 수축하면서 느껴지는 압각이다. 사람들은 음식에서 떫은맛이 나면 버리거나 해당 부위만 도려내곤 한다. 하지만 떫은맛도 적당히 즐기면 약이 될 수 있다.

보통 떫은맛은 안 익은 과일이나 나무의 껍질, 잎, 견과류 등을 통해 느껴진다. 대표적인 식품으로는 도토리(묵), 솜털이 붙은 밤, 덜 익은 감, 석류, 녹차, 커피, 적포도주 등에서 떫은맛이 난다. 녹두나 완두콩 등 대부분의 콩과 가지에서도 떫은맛이 난다. 과일은 대부분 익거나 숙성되면서 떫은맛이 줄어든다.

떫은맛이 나는 이유는 바로 탄닌과 페놀 때문이다. 도토리나 밤껍질에는 탄닌 함량이 높고 녹차에 들어있는 카테킨도 페놀류로 떫은맛이 난다. 철과 구리와 같은 금속류에서도 떫은맛이 난다. 따라서 철분이 포함된 피맛도 약간 비릿하면서 떫다. 건어물이나 지방이 산패되면 유리 지방산과 알데히드가 생성되는데 이 때문에 떫은맛이 난다.

떫은맛은 꺼려지는 맛이지만 적포도주 같은 일부 식품에서는 그 가치를 높여주기도 한다. 적포주에서 나는 특유의 떫은맛은 포도껍질에 포함된 탄닌의 함량에 따라 정도가 달라진다. 그 정도에 따라 ‘바디감이 있다 혹은 없다’라고 표현된다. 이런 것을 보면 떫은맛은 무거운 맛인 것 같다.

떫은맛은 약으로도 사용된다. 떫은맛은 삽미(澁味)라고 해서 수렴작용, 항산화 작용, 소염작용을 나타내는 맛으로 인정되고 있다. 떫은맛은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잡아주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인체에서도 몸 밖으로 빠져 나가는 액체의 누출을 일시적으로나마 막아준다.

떫은맛은 일시적으로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에도 도움이 된다. 한약으로는 유정증(자신도 모르게 정액이 흘러나오는 증상)에 처방하기도 한다. 이때 모려(牡蠣)라고 하는 굴껍질 가루를 많이 사용하는데 굴껍질 역시 떫은맛이 난다.

또 떫은맛은 피부에 상처가 가볍게 생겨 피가 날 때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고 응고작용을 촉진해 지혈작용을 한다. 떫은맛은 코 안에 혈액이 몰려서 충혈되는 것도 개선시켜주고 동시에 콧물이 흐르는 것을 막아준다. 기관지 점막을 튼튼하게 해서 기침과 가래를 완화하기도 한다.

떫은맛은 흐물거리는 것을 고정시켜 단단히 묶어주는 힘이 있다. 따라서 연부조직을 단단히 해서 관절의 인대를 든든하게 잡아주고 살과 근육을 탄탄하게 만들어준다. 늘어지는 것을 잡아주기 때문에 탈장이나 탈항을 막아주기도 한다.

떫은맛은 피부를 팽팽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피부가 늘어지고 잔주름이 있을 때 떫은맛 식품을 달인 물로 씻어 주거나 가루로 내서 팩을 하면 효과가 있다. 실제로 밤의 속껍질과 떫은맛이 강한 오배자는 화장품으로 개발돼 있다. 오배자는 붉나무의 벌레집인데 주성분 중 50~60%가 탄닌이다.

그런데 떫은맛을 너무 많이 먹으면 부작용도 생긴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바로 변비다. 떫은맛은 설사를 멎게 하는 효능이 있지만 변비를 악화시키거나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떫은맛 음식을 먹으면 침 분비가 일시적으로 차단되면서 입이 마르고 텁텁해지며 대장에서는 수분 흡수율이 높아진다. 소화가 잘 안 되고 가스가 차면서 복부팽만감이 생기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불안해지면서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가을이 되니 산에 도토리가 많이 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다람쥐들은 여기저기서 도토리를 주워 먹기 바쁘다. 다람쥐는 떫은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도 하는데 사실 다람쥐도 떫은맛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먹다 보니 익숙해진 게 아닐까.

사람에게 떫은맛은 거부감이 있는 맛이다. 다른 끌리는 좋은 맛들이 많아서 일부러 챙겨먹기도 힘들다. 하지만 먹다 보면 다람쥐처럼 익숙해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냥 버렸던 떫은맛도 적당히 즐길 필요가 있다. 떫은맛은 약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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