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와 고구마는 식량으로 또는 간식으로 아주 흔하게 사용돼온 식재료다. 감자와 고구마는 다른 듯 많이 닮았다. 과거 조상들의 구황작물이 됐고 최근에는 건강식으로 인기가 높다. 이 둘은 모양도 비슷하고 영양성분도 비슷한데 원래 모두 ‘감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감자와 고구마는 중남미 지역이 원산지로 인류 식용역사는 아주 오래됐지만 우리나라로 들어온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모두 조선 후기에 들어왔는데 고구마는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고 뒤이어 감자는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다.
감자와 고구마는 명나라 때 편찬된 본초강목에는 등장하지만 이후 시대에 저술된 동의보감에는 나오지 않는다. 동의보감에 기록되지 않은 이유는 당시 조선에 감자와 고구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감자와 고구마는 동의보감 편찬 이후에 들어온 것이다. 동의보감에 수록된 본초에는 당시 조선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은 기록되지 않았다.
고구마는 조선 후기 영조 때 조선통신사인 조엄이 일본 대마도로부터 들여왔다. 고구마는 일본에서 효자마(孝子麻) 등으로 기록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고귀위마(高貴爲麻, kogiyima)’라고 발음한다고 했다. 고구마라는 이름은 한글이지만 일종의 귀화어로 볼 수 있다. 효(孝)나 고귀(高貴)라는 이름을 보면 당시 구황작물로 톡톡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초강목과 같은 한의서에서는 고구마를 감저(甘藷)로 기록하고 있다. 맛이 달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자가 들어오고 나서 고구마와 감자를 구분하기 위해서 고구마는 남쪽에서 유래했다고 해서 남감저(南甘藷), 감자는 북쪽에서 유래했다고 해서 북감저(北甘藷) 또는 북저(北藷)라고 불렀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고구마의 가장 흔한 이름은 감저였다. 조선 후기 서적인 해동농서(海東農書)의 감저조(甘藷條)나 감저보(甘藷譜), 감저신보(甘藷新譜)는 모두 고구마 재배 전문서적이다.
아직도 지방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고구마를 감자 또는 감재로 부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1925년에 출간된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는 실제로 고구마를 지칭한 단어였다. 소설의 배경이 된 평양에서도 당시 고구마를 감자로 부른 것이다.
지금이야 감저라는 이름을 감자에게 빼앗겼지만 감저는 감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이름이다. 감자는 맛이 달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감자와 고구마의 이름이 포테이토(potato)로 같다. 고구마가 먼저 중남미를 통해서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당시 원주민들이 부르던 이름인 파타나(patata)가 변해서 포테이토가 됐다.
그런데 이후 감자가 들어오면서 감자에게 포테이토라는 이름을 빼앗긴 고구마는 스위트 포테이토(sweet potato)라는 이름으로 구분했다. 이와 비교해서 감자는 화이트 포테이토(white potato)라고도 부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서양 고구마도 동일한 처지인 것 같다.
감자가 고구마로부터 감자라는 이름을 빼앗게 된 이유는 바로 재배가 쉽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자는 늦게 전래됐지만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순식간에 전국에 퍼져서 최고의 구황작물이 됐다. 반면 고구마는 당도가 높아 쉽게 썩고 토질에 따라 재배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구마의 예민함(?) 때문에 이름을 빼앗긴 것은 아닐까.
그래도 고구마는 감자에게 이름은 빼앗겼어도 달달함은 빼앗기지 않았다. 고구마와 감자는 모두 탄수화물 덩어리지만 고구마의 당도가 감자에 비해서 높다. 심지어 고구마를 구우면 당도는 훨씬 높아진다. 구운 고구마의 혈당지수는 쌀밥과 같다. 당연히 많이 먹으면 살찐다.
이제 와서 고구마에게 감자라는 이름을 돌려준다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제 고구마하면 고구마가 떠오르고 감자하면 감자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구황작물로 시작해서 이제는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맛있는 간식들. 고구마는 고구마고, 감자는 감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