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님, 소염제랑 진통제 조금 더 주세요.”

“김효남(가명) 님, 아직도 잇몸이 부어 있으세요?”

“네, 잘 가라앉지 않네요.”

“치과에 방문하시라니까요? 치아와 잇몸상태를 제대로 점검받으셔야 해요.”

“요즘 조금 바빠서요. 일단 급한 것만 가라앉히고 치과 갈 거예요. 그러니 며칠 먹을 것을 더 주세요.”

김효남 님은 40대 후반 남성으로 평소 건강을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그 나이 때 직장인이 그렇듯 잦은 술자리와 과로가 항상 따라 다니고 있지요. 몇 년 전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높게 나왔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약을 먹기 싫어 버텼는데 2019년 초 건강검진에서 혈압이 너무 높게 나와 재검을 받고 약을 복용 중이셨습니다.

“그나저나, 요즘에도 술 약속 많이 있으세요?”

“아뇨, 혈압 높다고 해서 약속을 줄였지요.”

“스트레스가 많은 건 아니시구요?”

“뭐, 이 정도도 안 받고 사는 사람 있나요? 직장인들이 다 그렇죠.”

조금 이상해서 잇몸을 다시 관찰해봤더니 부어 있는 게 아니라 조금 자라 있는 것 같았습니다.

“김효남 님, 잇몸을 보니 그냥 부어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오히려 조금 자라 난 거 같아요. 혹시 지난번 처방받은 혈압약이 어떤 거예요?”

“아, 그… 혈압약으로 젤 유명한 거라고 하던데…… 맞다, 노바스크예요.”

“그래요? 지금 드신 지 얼마나 됐지요?”

“올 초에 처방 받았으니까 한 6개월 정도 되었네요.”

“그렇다면 혈압약 때문에 잇몸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어요. 소염제 등은 복용하지 마시고 치과에 빨리 방문해 보세요. 만일 혈압약 때문이라면 해당 병원에 가셔서 혈압약을 다른 계열로 바꾸셔야 합니다.”

“혈압약 때문에 잇몸이 붓는다고요?”

“정확히 말하면 붓는 게 아니라 증식하는 거예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치주질환 환자는 2017년 15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는 급성 기관지염 환자와 비슷한 수치며 알레르기비염 환자보다 2배나 많습니다. 특히 치주염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3년 이후 5년 만에 약 70%가 늘어 이제 감기만큼 흔한 질병이 됐습니다.

보통 치주질환의 원인은 칫솔질로 제거되지 않은 플라그(치태)입니다. 플라그는 세균막으로 다양한 성분들과 결합해 단단해져 치석이 돼 잇몸에 염증을 유발하죠. 때문에 정확한 칫솔질과 정기적인 스케일링, 치실, 치간칫솔 사용 등이 잇몸질환 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약물에 의해서도 잇몸질환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정확한 병명은 잇몸 과증식(치육 증식)입니다. 잇몸이 이상증식하는 것이죠.

원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잇몸 과증식은 처음에는 증상이 없으나 오래되면 출혈, 부종, 통증 등 염증을 유발하며 심하면 치아 골격이 망가진다고 합니다. 염증이 생기는 과정에 이르면 흔한 잇몸염증으로 판단해서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것이죠.

잇몸 과증식을 유발하는 약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의 김효남 님 역시 암로디핀을 드시면서 잇몸 증식이 일어난 상황입니다. 별 증상이 없다가 잇몸이 붓고 아프니까 그냥 잇몸질환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죠.

그럼 혈압약을 먹고 잇몸 과증식은 왜 일어날까요? 사실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단 치은염을 갖고 있거나 플라그가 많은 사람이 혈압약(칼슘통로차단제)을 복용하면 잇몸 주위에 약물이 고농도로 농축될 수 있습니다.

이 농축된 성분이 결합조직 증식과 세포 인자들에 복잡하게 관여해서 잇몸을 과잉으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죠.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이성진 등은 《장기간 암로디핀 복용 후 발생한 심한 잇몸 과증식 1예》에서 약제에 의한 잇몸 과증식은 약제종류와 관계없이 유사하게 나타난다고 했고 가장 중요한 인자는 치태의 존재와 청결하지 못한 구강위생에 따른 치은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잇몸 과증식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치태를 제거하는 칫솔질과 치간칫솔, 치실의 사용 그리고 정기적인 스케일링이라고 보면 됩니다. 특히 위의 약들을 복용하는 환자들이라면 더욱 더 주의해야겠지요.

잇몸 과증식이 일어나면 대체 가능한 경우 일단 약물을 중단합니다. 보통 약물 중단 후 1~8주 이내에 호전된다고 합니다. 물론 약물 중단 후 치과에서 잇몸치료를 병행해야 하죠. 만일 약물 중단 후에도 호전되지 않는다면 잇몸을 잘라내는 시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잇몸 과증식의 원인은 약제 복용 말고도 임신, 사춘기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 질환, 비타민C 부족 등 영양학적 문제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원인 모를 잇몸질환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치과검진을 받아 보셔야 합니다. 물론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구강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겠지요?

※ 참고

본문에 제시된 환자와의 대화는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 재구성 된 것입니다.

※ 참고문헌

Lauralee Sherwood, 《인체 생리학 제9판》, 강명숙 외 21 옮김, 라이프사이언스, 2016

J.G.Salway, 《한눈에 알 수 있는 의학 생화학》, 백영환, 범문에듀케이션, 2013

오카다 타카오, 《집중 강의 생리학》, 김동현, 장일성, 진영호, 신일서적, 2015

《장기간 Amlodipine 복용 후 발생한 심한 잇몸 과증식 1예》 이성진 외6명, Korean J Med 2012;82(5):623-627.

《Drug-Induced Gingival Hyperplasia》 Francina Lozada-Nur October 23, 2009 Medscape Drug, Disease & Procedure

《 Pathogenesis of drug-induced gingival overgrowth. A review of studies in the rat model》 Nishikawa S, Nagata T, Morisaki I, Oka T, Ishida H. J Periodontol. 1996 May;67(5):463-71.

《 치주질환 환자 증가…잇몸병 예방법은?》 News1뉴스 2018년 11월 8일 기사

《 '잇몸병 경계경보‘…치주질환 2년새 53%↑, 20~30대도 조심, 성인 10명 중 3명은 치료를"》 헤럴드경제 2016년 1월 16일 기사

《 구강건강 빨간 불! 치은염 및 치주질환》 영주신문 2019년 3월 11일 기사

《 치주 질환 5년 새 67% 증가…치료제 종류 다양해져》 중앙일보 2018년 11월 8일 기사

※ 참고 사이트

https://www.nlm.nih.gov/

https://www.synthroid.com

https://www.drugs.com

약학정보원 홈페이지 https://www.health.kr

국가건강정보포털 http://health.cdc.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