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인 대변검사…간첩색출의 지름길
대대적인 대변검사…간첩색출의 지름길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9.06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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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고리촌충이란 기생충이 있다. 사람이 유일한 종숙주로 이 기생충에 걸린 사람이 변을 보면 갈고리촌충의 알이 무수히 나온다. 그 알을 중간숙주인 돼지가 먹으면 유충이 부화돼 돼지의 근육 속으로 가는데 사람이 그 돼지고기를 덜 익혀 먹으면 창자 안에서 유충이 몇 미터짜리 성충으로 자라서 알을 낳는다.

 

즉 갈고리촌충의 생활사가 유지되려면 종숙주인 사람과 중간숙주인 돼지가 있어야 하며 결정적으로 사람의 변을 돼지가 먹는 구조적인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1960년대까지의 우리나라가 그랬다. 소위 말하는 ‘똥돼지’는 사람한테서 나온 변을 먹고 자란 돼지로 아예 변소 밑에 살면서 사람이 변을 볼 때마다 달려가서 먹곤 했다. 우리가 삼겹살을 바싹 구워 먹어야 한다는 신화가 만들어진 것도 다 갈고리촌충 때문이다.

 

하지만 갈고리촌충은 사람의 창자에 살면서 얌전하게 있으니 그 자체로 위험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문제가 되는 건 갈고리촌충의 알을 먹었을 때다. 사람이 종숙주이긴 해도 알을 먹으면 사람은 중간숙주처럼 행동하는지라 돼지에서 그런 것처럼 유충이 알 껍질을 까고 나와 근육을 비롯해 여러 장기에 가서 유충 상태로 머무르게 된다.

 

피부나 근육으로 가면 괜찮지만 뇌로 가서 간질발작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 무서울 수밖에. 원래 유충엔 이름이 없는 법인데 이 기생충의 유충은 하도 악명이 자자해 ‘유구낭미충’이란 이름이 붙었다. 갈고리촌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유구낭미충에 걸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대변에 갈고리촌충의 알이 무수히 들어 있으니 항문을 긁은 손으로 튀김을 먹으면 얼마든지 감염 가능성이 있고 그 사람의 대변을 비료로 써서 재배한 상추를 먹는다면 그와 일면식이 없던 사람들까지 단체로 유구낭미충에 걸릴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쇠고기에 비해 돼지고기를 날로 먹는 행위를 꺼려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척추에서 꺼낸 유구낭미충 (하얀 주머니처럼 생긴 게 유구낭미충이다)

하지만 돼지에게 더 이상 변을 먹이지 않게 되면서 갈고리촌충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1990년 하얀 유구낭미충이 쌀알처럼 박힌 돼지가 발견된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갈고리촌충의 유충이 발견된 적이 없다.

필자가 “삼겹살은 남들이 먹기 전에 먹어야 합니다. 다 익을 때를 기다리면 늦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다녔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물론 유구낭미충 환자는 그 후에도 계속 나왔지만 그 대부분이 해외에서 걸려온 것으로 추정됐고 설사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름의 설명이 가능했다.

 

유구낭미충의 증상이 나타나는 건 뇌 속에 살던 낭미충이 죽으면서 그 안의 단백질이 한꺼번에 혈관 속으로 나올 때고 유구낭미충의 수명이 5-10년, 길면 20년까지 되니 갈고리촌충이 멸종한 뒤 10년이 넘도록 유구낭미충 환자가 나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건 필자뿐 아니라 기생충학계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 주장은 2010년을 지난 지금도 유구낭미충 환자가 계속 발생하는 것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예를 들어 2011년 72세 남자의 척추에서 유구낭미충이 발견됐는데 이분을 조사해보니 해외에 나간 적이 없었다. 이분들 말고도 갈고리촌충의 유행지에 다녀온 적이 없는 유구낭미충 환자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쯤 되면 필자의 견해를 수정해야 맞다.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국내에서도 유구낭미충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1990년 이후 갈고리촌충에 걸린 환자를 발견한 적은 없지만 누군가가 몸에 갈고리촌충을 품은 채 계속 알을 내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 누군가가 누군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을 의심한다.

 

사이버테러, 방화 같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북한이 범인이라고 신문에 나는데 사이버테러보다 더 쉬운 게 갈고리촌충에 감염된 간첩이 자신의 변을 밭에다 비료로 뿌리는 일이 아니겠는가? 남한 사람들 상당수가 간질발작과 두통에 시달리면 적화하기도 쉽고 말이다. 간첩이든 아니든 대대적인 대변검사를 통해 갈고리촌충 감염자를 색출해 낼 필요가 있다. 갈고리촌충은 디스토시드 한알로 쉽게 치료되니까.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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