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건강이야기] 먼 길 떠나는 고양이들아… 꼭 다시 만나자
[반려동물 건강이야기] 먼 길 떠나는 고양이들아… 꼭 다시 만나자
  • 이바른 대구 죽전동물병원(동물메디컬센터) 내과원장|정리·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0.03.09 16: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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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른 대구동물병원(동물메디컬센터) 죽전 내과원장
이바른 대구동물병원(동물메디컬센터) 죽전 내과원장

■누구나가 다 늙는다. 사람이 늙어가듯 강아지도 고양이도 늙는다.

반려동물의 평균 수명은 보통 18세 정도라고들 한다. 수의학이 발달하고 여러 좋은 의료서비스와 케어를 받을 수 있게 된 요즘, 반려동물들에게도 ‘백세시대’ 가 열렸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중년과 노년의 삶을 살고 평균수명에 다다라 생을 마감하는 반려동물들이 크게 늘어났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잘 살아가는 것만큼 생을 잘 마감하는 것 역시 반려동물들에게도 중요한 이슈가 되는 요즘이다.

■평균수명의 막바지를 넘어가는 한 늙은 고양이가 있었다.

눈빛은 멍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과연 여기가 병원인 것은 알기나 하는 것인지 집에서 가족들을 알아보기는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엎드려서 하염없이 울기만 한다는 그 고양이는 전형적인 노령동물의 인지장애, 치매의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변해가는 고양이의 모습이 걱정되는 마음에 보호자는 늙은 반려묘를 데리고 꽤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고 했다. 이것저것 좋다는 약을 먹이고 큰돈을 들여 마취위험까지 무릅쓰고 뇌 MRI까지 찍어봤다고 했다. 그렇게 온갖 검사를 해봐도 치매라는 결론 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화장실을 찾아가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도 불편한 기색은 없었다. 멍해진 정신과 두서없는 울음을 우는 것 외에는 비교적 밥도 잘 먹고 컨디션도 양호했다.

여러 검사를 마치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좋다는 나의 말에 보호자는 안도하는듯했다. 필요 이상으로 먹고 있던 약의 종류를 줄이는 대신 인지장애를 조금이나마 개선해줄 수 있는 약과,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고양이를 위해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해줬다.

■“이제 이 아이를 놓아주어야 할 때일까요?”

어느 날 반려묘의 가족들이 모두 함께 병원에 찾아왔다. 그들은 이제 이 고양이를 편하게 보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나이도 많고 앞으로 좋아질 가능성은 없고 점점 쇠약해질 일만 남은 고양이였기 때문에 그러한 상담 요청이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다.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고 보호자들을 마주했다.

말썽이던 인지장애 증상 외에는 식사도 잘하고 건강하던 고양이인데 왜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되었냐고 되물었다. 이 고양이가 힘든 점과 보호자가 힘든 점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정말로 이 친구를 보내주실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인지 되물었다.

몇 달간 잘 지내는 듯싶었던 늙은 고양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힘들어졌다고 했다. 갈수록 잠을 자지 않고 밤낮없이 크게 울어대는 통에 덩달아 함께 잠을 자지 못하는 가족들의 삶이 너무나 피폐해졌다고 했다. 약을 먹고 잠깐 잠을 자는 네다섯 시간이 보호자들이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웃들은 견딜 수 없는 소음을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가족들은 본인들도, 고양이와도, 이웃들과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릴 적 쓰레기 더미에서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울고 있던 아기고양이를 데려와 평생을 함께 지내면서 이 고양이는 가족들에게 정말 많은 행복과 웃음을 줬다고 했다. 사실 그동안 가족 모두가 힘들었지만, 이 친구에게 살아가며 받은 수많은 선물 같은 시간이 고마워 포기하지 못한 채 어쩔 줄 모르고 여기까지 왔다고 보호자는 털어놓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이러한 시간이 온 것일 뿐인데 현실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어 안 좋은 생각이 드는 것이 미안하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날 그 진료실 안에서 그 고양이를 진심으로 보내줄 마음의 준비는 그 누구도 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다. 고양이와 함께 10대, 20대를 자라며 이제 어엿한 30대 중반을 넘어선 보호자와 머리가 희끗희끗한 부모님들까지 모두 눈물을 글썽였다.

그 곁에서 이제는 너무나 늙어버린 그 고양이를 바라보며 사람보다 너무도 빨리 흘러가는 고양이의 시간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병원에 맡기시는 건 어떨까요.”

“여기선 울어도 돼요.”

“이 친구가 잘 지내는 한 언제까지라도 계속 데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비용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언제든 보러오셔도 됩니다.”

누군가에게 한때는 인생의 큰 행복이었던 고양이가 이제 나이가 들어 돌보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이유만으로 삶을 마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누가 봐도 포기할 다 늙어버린 고양이를 끌어안고 그동안 갖은 애를 써왔던 가족들의 그 마음이 다치지 않길 바랐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어설픈 이별보다는 모두가 평온한 마지막을 준비하도록. 그리고 그동안만큼은 고양이도 보호자도 그 누구도 힘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되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진심을 담아 전했다. 평생 가족들과 살던 집 외에 다른 곳에서 생활한 적이 없던 고양이를 걱정하고 주저하던 보호자는 마침 명절이었던 연휴 며칠간 병원에 고양이를 위탁해보고선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늙은 치매 고양이의 긴 병원 생활은 시작되었다. 밥도 잘 먹고 잘 움직이지 못해 가만히 기저귀에 용변을 보니 비교적 케어는 수월했다. 24시간 간호사가 상주하는 동물병원이니 밤에도 시간마다 자세도 바꿔주고 기저귀를 갈아줬다. 모두가 잠들만한 시간에 깨어나서 큰 울음소리를 낸다고 해도 그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여긴 동물병원이니까.

다행히 고양이는 바뀐 환경에도 큰 무리 없이 잘 적응하는 듯했다. 마지막을 위하여 장기입원을 하게 된 나이 든 고양이 환자는 병원에서도 처음이다 보니, 행여 집보다 못한 환경일까 싶어 늘 두꺼운 새 이불을 깔아주고 따뜻하게 지내도록 병원 식구가 모두 신경을 써줬다.

가족들은 늘 찾아와 고양이와 시간을 보냈다. 가끔 일주일 정도씩은 보호자의 품에 안겨 집으로 외출도 했다. 그럴 때면 우리는 그의 자리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렇게 그 고양이는 몇 달을 병원에서 지냈다.

■‘안녕. 우리 꼭 다시 만나!’

어느 날 집으로 외출을 했던 고양이가 여느 때보다 일찍 돌아왔다. 그간 늘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지내왔고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터라 여느 때보다 깨끗하게 닦이고 준비를 해서 보냈던 외출이었다. 집으로 가 잘 지내다 갑자기 밥을 먹지 않고 구토와 설사를 하며 기운이 떨어진 고양이는 황급히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간 몸은 제대로 못 가눌지언정 고개는 꼿꼿이 들고 우렁찬 울음을 짖던 늙은 고양이는 이제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옆으로 누워 힘겨운 숨만 내쉬고 있었다.

오랜만의 기분 좋은 외출에 보호자들은 평소 고양이가 좋아하던 음식들을 준비해 배부르게 먹이고 나서 크게 배탈이 난 것 같다고 했다. 검사결과 심한 췌장염이 확인됐다. 젊은 고양이들도 꽤 힘들게 이겨내는 질환이었다.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동원했지만 늙은 고양이는 회복을 하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상태가 나빠지고 있었다.

“이제 이 친구를 편안하게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틀을 아프고, 이젠 염증을 넘어 장기가 녹아내리는 고통이 올 것이 예상되던 때, 보호자에게 이 말을 건넸다. 그간 건강하게 잘 지내다 평생을 살던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깨끗하게 목욕도 하고,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던 맛있는 음식들도 원 없이 먹었다.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를 참 많이 안아주었다고. 준비한 음식들은 여느 때보다도 더 맛있게 잘 먹더라고 가족들은 말했다. 울음도 울지 않고 밤에는 편안하게 잠도 잘 잤다고 했다. 그렇게 늙은 고양이는 마지막의 기분 좋은 기억들만을 품고서 가족의 품에서 고통 없이 편안하게 19세의 삶을 마감했다.

“네가 우리 집 고양이여서 고마웠어. 우리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가족들은 깊은 잠에 든 고양이를 안고서 한참을 속삭였다. 헤어짐의 슬픔에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가족들은 모두 굳건했고 어떤 자책이나 후회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떠한 인연일지라도 만남이 있으면 또 헤어짐이 있다.

‘안락사(euthanasia)’라는 단어가 있다. 편안함을 뜻하는 ‘안락’과 죽음을 뜻하는 ‘사’의 합성어이다. ‘good, well’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인 ‘eu-’와 ‘death’를 뜻하는 ‘thanatos’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실제로 의학적인 회복이 불가능하고 심한 고통을 느끼는 환자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죽고 싶은 동물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이 아닌 반려동물에게서만큼은 안락사는 그들의 의사로서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문제기에 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최종 결정까지 고려해야 할 문제들을 되짚어보는 여러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반려동물의 살아온 삶과 그와 함께해온 가족들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이제 때가 되었을까요?’ 수없이 듣는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먼저 떠날 수밖에 없는 그들. 언제나 아기 같아 보이지만 어느새 우리의 시간을 빠르게 뛰어넘어 가버리는 그들. 사람의 시간으론 잠시이지만 반려동물의 시간으론 평생, 백 세를 함께한 가족, 보호자. ‘반려동물 백세시대’. 가끔은 이 단어가 참 마음 아프게 와닿는다.

언젠가 ‘첫 만남’에 대한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안타깝게도 수의사라는 업을 짊어진 나는 첫 만남의 그 파릇파릇한 기쁨과 설렘보다는 아픔과 이별을 훨씬 더 많이 마주하는 편이다. 예상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질병으로, 또는 생의 끝에 다다라서. 수많은 이유로 수많은 이별을 보고, 함께한다. 만남은 이별을 기약한 까닭에 슬프다 했던 이도 있지만, 그 사이로 지나간 시간들은 너무도 찬란하고 행복하기에, 그 기억의 마지막이 후회와 슬픔만을 남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늙은 고양이들. 늘 마주하게 되는 그 어느 날 갑자기 품에 안겨 온 작은 생명들 또 어떤 날은 먼 길을 떠나가는 그 생명들. 그들에게 나는 늘 마음속으로 되새김한다.

‘우리 언젠가 헤어지면 꼭 다시 고양이 별에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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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2022-05-26 14:27:15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