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겁나지 않냐고요? 확진자도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입니다
[특별기고] 겁나지 않냐고요? 확진자도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입니다
  • 김호중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desk@k-health.com)
  • 승인 2020.03.12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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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호중 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어서 오세요, 멀리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센터로 들어오는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전했다.

여행 가방을 가지고 이동하는 모습이 얼핏 보면 여행자 같지만 1평 남짓한 소독 장치를 통과하는 모습은 공항에서 보던 여행자와는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그렇다. 이들은 다름 아닌 전 세계를 대혼란에 빠트린 코로나19 확진 환자들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정부는 대구·경북 지역의 병상 포화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코로나 경증·무증상 확진 환자가 입소하는 집단 격리 생활 시설 ‘생활치료센터’를 속속 개소하고 있다.

(왼쪽부터) 충남대구1 생활치료센터에 파견된 순천향대 중앙의료원 김호중, 이철구, 이승재, 이희정 교수.
(왼쪽부터) 충남대구1 생활치료센터에 파견된 순천향대 중앙의료원 김호중, 이철구, 이승재, 이희정 교수.

순천향대학교 중앙의료원은 지난 3월 6일 전국에서 7번째로 개소한 ‘코로나19 충남대구1 생활치료센터(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에 의료 인력을 긴급 파견했다.

센터 책임자인 필자를 포함해 감염내과, 가정의학과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의료진과 방사선사, 행정 인력 등이 1차로 센터에 파견돼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고 입소 환자들의 건강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의료진이 도착한 당일 오후 1차로 대구·경북 지역 확진 환자 285명이 버스 1대에 20명씩 나눠 타고 대구에서 출발해 천안에 있는 생활치료센터에 도착했다.

의료진마저 긴장되는 순간이었지만 모두 동요하지 않고 차분히 입소 환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환자들 역시 낯선 장소에서 최소 1주일 이상 외부출입이 통제된 채 지내야 하는 부담과 긴장감을 안고 도착한 이곳이 편할 리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주변의 냉랭한 시선이 환자들을 더 힘들게 했다. 확진 환자의 원치 않는 개인정보가 네티즌에 의해 무작위로 퍼지고 인터넷 뉴스 기사에 달린 차가운 댓글은 바이러스와 힘겹게 싸워야 할 환자들의 전의마저 꺾었다.

방호복 착용 상태를 점검 중인 의료진.
방호복 착용 상태를 점검 중인 의료진.

하지만 필자가 만난 환자들은 두려움의 대상도 죄인도 아닌, 우리와 똑같은 ‘보통 사람’이었다.

20대 초반의 두 친구는 같이 아르바이트하다가 확진 판정을 받고 센터에 동반 입소했다.

“저희 때문에 너무 고생 많으시네요. 그런데 혹시 저녁밥은 언제 나오나요? 너무 배고파요”

직장 동료인 40대 남성 두 명은 “여기 들어가면 방에서 못 나오는 거죠? 소주가 생각날 텐데, 이번 기회에 술이나 끊어야겠네요”하고 말했다.

그들을 직접 만나고 나니 필자를 포함한 의료진 역시 그동안 갖고 있던 잘못된 편견을 반성하게 됐다.

센터에는 우리 의료진 외에도 보건복지부에서 파견한 공중보건의와 민간에서 자원한 간호 인력 등 총 34명의 의료진이 확진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대구지역 자원봉사를 지원했다가 긴급히 개소한 이곳에 배치된 의료진들의 사연도 다양했다.

초등학생 딸과 같이 뉴스를 보다가 “엄마는 간호사인데 왜 저기 안 가?”라고 물어서 온 경우,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온 경우, 센터 도착 직전에 가족에게 알린 경우 등등 저마다의 사연을 뒤로 한 채 본 센터에 모였다. 가족들을 떠나 약 한 달 정도를 생활해야 하는 이곳이 낯선 건 환자나 의료진이나 똑같았다.

이밖에도 대구시 공무원들과 보건복지부·행정안전부 공무원들, 군인, 경찰 등 많은 인력이 환자 관리를 위해 이곳에서 밤낮으로 애쓰고 있다.

현재까지 총 308명의 확진 환자가 이곳 센터에 입소해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확진 환자가 올 수 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가 얼마나 오래 갈지 아무도 모른다. 병원 시설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다 보니 음압 시설이 없어 여러 어려움도 많다.

하지만 더는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 그래서 ‘감염 안전’이 최우선이다. 의료진 및 지원인력이 감염되면 이곳도 무너진다. 감염에 최대한 유의하면서 이 많은 환자가 최대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다.

방호복을 입은 34명의 의료진은 오늘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총 대신 체온계와 전화기를 들고 비장한 각오로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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