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식 자라, 선모충 주의보
보양식 자라, 선모충 주의보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9.11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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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을 미리 알았다면 좋았을 뻔했어요. 그랬다면 저희가 그걸 먹지 않았을 텐데요.”

그녀의 말에 필자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매스컴에 보도된다고 해서 모든 이가 보는 것은 아니지만 8명 중 1명 정도는 그 기사를 봤을 테고 그들이 자라 대신 다른 것을 먹어 영양보충을 했을 수도 있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그 사건이 벌어진 건 지난해 9월이었다. 친구들끼리 자라회를 먹고 단체로 선모충에 걸린 것. 감염자들은 모두 얼굴이 붓고 근육통증이 심해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이었지만 병원 측에서는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시행한 혈액검사 결과 놀랍게도 선모충이라는 기생충이 이 사단의 원인이었다. 회충약을 썼지만 환자들은 쉽사리 좋아지지 않았다. 창자 안에 있으면 약이 즉시 효과를 나타낼 수 있지만 선모충은 유충이 근육에 박혀 약기운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데다 유충이 죽으면서 배출하는 단백질이 염증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8명의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는 데는 한 달 정도 걸렸다. 문헌을 찾아보니 자라가 선모충의 원인인 경우는 2008년 대만의 레스토랑에서 자라회를 먹었던 일본인들이 유일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자라로 인해 선모충에 걸릴 수 있음이 입증됐다. 이쯤 됐으면 자라의 위험성을 알려 더 이상의 감염자를 막는 것이 기생충학자의 임무지만 필자는 이 사건에 대해 논문만 한편 썼을 뿐 매스컴에 알리는 일은 최대한 자제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첫째, 선모충은 원래 파충류에 드물다. 이번에 자라에서 선모충이 나온 것은 백만분의 일 정도의 확률이었고 앞으로 또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둘째, 자라를 팔아 먹고사는 식당이 타격을 받을까 걱정됐다. 아주 위험한 질환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선모충은 회충약으로 잘 치료되며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올해 8월 회사직원 8명이 여름보양식으로 자라회를 먹고 단체로 선모충에 걸려버렸다. 필자가 매스컴에 알리지 않았던 첫 번째 가정은 무너졌다.

게다가 이분들은 모두 같은 회사 직원들로 회사 사장은 “하루 다섯 군데 현장을 뛰고 있었는데 모두 중단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선모충에 한 번도 걸리지 않은 필자의 판단이 너무 안일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병원에 입원 중인 젊은 직원은 “걷는 게 힘들 정도”라며 “교수님이 이 고통을 느꼈다면 증상이 심하지 않다고 얘기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작년에 선모충 문제를 이슈화하지 않은 것을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 이 글을 쓴 것은 바로 그들의 요청 때문이다. 환자들에 따르면 선모충 진단을 받고 난 뒤 자라를 판 식당에 항의했는데 업주 측에서는 “우리랑 상관없다”며 외면했다고 한다. 지면을 빌어 식당 사장님께 한 말씀 올린다.

“사장님, 그게 아닙니다. 이번에 입원하신 분들은 사장님 가게에서 판 자라를 먹고 선모충에 걸린 겁니다. 우리나라에 선모충이 워낙 드물고 선모충의 자연계 생활사가 완전히 파악돼 있지 않아 그 책임을 온전히 사장님께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사장님이 키운 자라가 선모충의 원인임은 분명합니다.

자라를 키울 때 그놈이 뭘 먹는지 꼼꼼히 살펴봐 주십시오. 언제 제가 한번 찾아뵙고 그 먹이들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 중 선모충을 가지고 온 놈이 있을 텐데 그놈만 조심한다면 앞으로 사장님께서 파는 자라회는 문제 없을 겁니다.”

환자분들도, 그리고 불안에 떠는 사장님도 모두 힘내시기를. 곧 추석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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