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의료정책에 멍드는 의료계
무지한 의료정책에 멍드는 의료계
  •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9.24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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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의사로 살면 되지 왜 정책에 관심을 갖느냐”며 정치하려고 하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의사가 환자 열심히 보고 연구하면 좋은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의료를 펼치는데 있어 의료 환경이 문제가 없다면 당연히 본업에 충실하겠지만 불행하게도 의료 환경이 그렇지 못하기에 정책에 관심을 갖는 의사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 출신 국회의원이 많이 생기면 좋아질까? 매번 의사회는 의료정책의 올바른 방향정립을 위해 의사 출신 국회의원을 하나라도 더 배출하려고 하지만 이거야 말로 착각도 보통 착각이 아니다. 의사 출신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 국민의 국회의원이지 의료계를 위한 국회의원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평범한 의사들이 정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바닥을 떠나면 이상하게도 의료에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는 수혈과 관련 의사들이 정책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수혈은 아주 신중하게 그리고 가급적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남의 피를 받는 순간 받은 사람의 몸에서는 면역체계가 흔들리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기 시작하는데 이런 사실은 최근 10년 사이의 연구 결과라서 일반인은 물론 많은 의사들도 모른다.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문제는 훨씬 오래전에 남의 피를 마치 보혈주사라고 생각하던 시절, 국가는 원활한 혈액을 환자들에게 공급하는 것을 당연한 사명으로 알았고 그 기조가 아직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고 이러한 무지로 인해 수혈을 줄이기 위한 일체의 관심을 정부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몸에 좋지도 않은 피를 값싸게 많이 공급하는 것이 정책 기조이니 할 말이 없다. 수혈을 줄이기 위한 대체치료를 권장해도 시원찮은 판국에 정부는 시대 흐름을 읽지도 못하고 관련자들은 알면서도 정책당국에 알리지 않는 것은 본인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한국은 이 분야 정책에서 글로벌 추세에서 역행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빈혈을 교정하기 위해 철분제를 투여해 스스로 혈액을 만들어 내게 하고 싶어도, 수술실에서 수혈을 적게 하기 위한 제반 노력을 하고 싶어도 이런 노력은 대부분 비급여 항목이라 비용이 만만치 않고 결국 우리나라는 좋지도 않은 피를 고민 없이 뿌리는 것이 편한 그런 나라인 것이다. 막말로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피는 값싸게 공급할 테니 고민 없이 사용하라는 식이다.

돈은 펑펑 쓰면서도 국민건강에 일체 도움이 안 되는 아니 해치는 이런 정책은 분명 잘못된 정책이다. 의사가 의사로만 살면 되는 그런 세상이 올까? 모든 의료 정책이 정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고 당국자는 수시로 교체돼 정책 전문가도 없고 그렇다고 의료계의 의견을 듣지도 않는 그런 나라에 사니 그런 시절은 올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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