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해요! 희귀질환] 혈액암, 백혈병과 유사한 ‘고셔병’, 골든타임 놓치면 회복 불가
[극복해요! 희귀질환] 혈액암, 백혈병과 유사한 ‘고셔병’, 골든타임 놓치면 회복 불가
  • 이원국 기자 (21guk@k-health.com)
  • 승인 2020.09.0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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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셔병, 대식세포 간·비장에 축적돼 제 기능 못해
환자 개인마다 증상이 달라 정확한 진단 어려워
효소대체요법·기질감소치료법으로 일상생활 가능

희귀질환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인 관심이 부족하다 보니 희귀질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제대로 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희귀질환자들의 고통분담을 위해 1월 ‘희귀난치성질환자 산정특례제도’를 발표했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지원이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에 헬스경향은 희귀질환자들의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극복해요! 희귀질환’이라는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고셔병은 증상이 다양한 만큼 진단하기 매우 까다로운 질환이다. 또 혈액암, 백혈병과 증상이 비슷해 오진하기 쉬워 정확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고셔병은 증상이 다양한 만큼 진단하기 매우 까다로운 질환이다. 또 혈액암, 백혈병과 증상이 비슷해 오진하기 쉬워 정확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저는 30대 직장인입니다. 어렸을 때는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멍이 잘 들고 뼈가 쑤시기 시작했습니다. 노화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고 무시했는데 갑자기 코피가 자주 나면서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습니다. 심각성을 느끼고 병원에 방문했습니다. 의사는 헤모글로빈과 혈소판수치가 낮게 나와 ‘백혈병’이 의심되니 정밀검사를 진행해야한다고 했습니다. 검사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백혈병이 아니라 극희귀질환인 ‘고셔병’으로 진단됐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모두 건강하신데 고셔병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치료제가 없는 30년 전과 달리 치료제가 개발돼 지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됐습니다.<어느 날 고셔병을 진단받았습니다-서울아산병원 제공>

고셔병은 전 세계 인구 4만~6만명당 한 명꼴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병의 특성상 정확한 집계가 어렵지만 국내에는 약 80여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셔병은 효소결핍으로 인해 생기는 리소좀축적질환(LSD)이다. 리소좀은 세포 내에서 ‘재활용센터’ 역할을 하는 주머니로 못 쓰게 된 세포를 분해해 다시 단백질로 만들거나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물질로부터 우리 몸을 지킨다.

이때 리소좀에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glucocerebrosidase)라는 효소가 없거나 문제가 생기면 특정 당지질이 분해되지 못하고 리소좀에 축적된다.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커진 리소좀은 대식세포(면역세포)에 잡아먹히고 대식세포에도 당지질이 축적되면서 제 기능을 못 하게 된다. 결국 대식세포가 간과 비장 등에 축적돼 빈혈, 혈소판감소증, 간, 비장이 커지면서 ‘고셔병’이 발생한다.

고셔병은 진단하기 매우 까다로운 질환이다. 증상이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다. 고셔병은 멍·코피 등 출혈경향, 관절통·고관절 등 골격계증상, 소아의 성장지연 또는 성인의 근육량 감소, 간 및 비장의 비대 등 여러 증상이 개개인의 건강상태, 질환진행과정 및 속도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혈액 관련 증상만 나타나거나 골격 관련 증상만 나타날 수 있으며 심지어 특별한 증상이 드러나지 않을 때도 있다. 또 혈액암, 백혈병과 증상이 비슷해 오진하기 쉬워 정확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고셔병등록사업보고에 따르면 증상이 나타난 시점부터 고셔병으로 확진 받기까지 평균 13년이 걸렸다. 문제는 소아환자에서 고셔병이 발생하면 약 50%가 성장장애를 동반한다는 점이다.

고셔병은 증상과 진행과정에 따라 ▲제1형 ▲제2형 ▲제3형으로 구분된다. 가장 흔한 제1형이 90%를 차지하며 신경계합병증이 없다. 제2형은 신경계증상이 심하게 나타나 생후 1년 이내 영유아기에 발병해 대부분 만3세 이전에 사망한다. 제3형은 제1형과 제2형의 복합형으로 혈액 및 골격이상, 신경계합병증이 모두 나타나지만 제2형보다 질환 진행속도가 느린 것이 특징이다.

서울아산병원 소아내분비내과 유한욱 교수는 “대표적인 희귀난치성질환 중 하나인 고셔병은 리소좀축적질환의 한 종류로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효소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한다”며 “문제는 환자도 많지 않고 백혈병, 다발성골수종, 비호지킨성림프종 등 혈액암과 증상이 유사해 다른 혈액질환과의 감별진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완치 불가능해도 관리는 가능한 고셔병

희귀질환 중 치료제가 개발된 질환은 5%에 불과하다. 다행히 고셔병은 1994년 치료제가 개발돼 조기치료를 통해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고셔병은 상염색체에 의한 열성유전질환 만큼 부모 모두에게 고셔병유전자를 물려받아야 발병한다. 만일 한 명의 부모에서만 고셔병유전자를 물려받으면 보인자가 된다. 따라서 고셔병은 DBS(Dried Blood Spot)검사를 통해 특정효소 결핍여부, 효소활성도, DNA 등을 확인해 진단한다.

고셔병치료는 효소대체요법(ERT)과 기질감소치료법(SRT) 2가지가 있다. 효소대체요법(ERT)은 정맥주사를 통해 체내에 부족한 효소를 대체하는 치료법으로 현재 국제고셔병협력협회(ICGG)가 권장하는 표준치료법이다.

하지만 효소대체요법은 주사제로 치료가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들은 일정기간마다 병원을 방문해야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특히 효소대체요법은 치료중단 시 파킨슨병, 혈액암 등이 발병할 수 있기 때문에 규칙적인 치료가 필수다.

기질감소치료제(SRT)는 효소대체요법과 달리 체내합성효소를 억제해 효소가 분해해야하는 기질의 양을 미리 줄이는 방법이다. 기질감소치료제는 저분자물질로 구성돼 전신흡수가 빠르다. 특히 뼈 관련 치료에 효과가 크다. 더욱이 주사제였던 효소대체요법과 달리 경구용제제로 출시돼 복용편의성도 높다.

서울아산병원 소아내분비내과 이범희 교수는 “효소대체요법은 장기간의 임상경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된 치료법일 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전문의와 함께 치료효과나 이상반응을 모니터링할 수 있어 안전성이 높다”며 “하지만 국내 고셔병환자의 50% 이상에서 신경증상이 발생하는 만큼 신경증상치료제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셔병치료제 현황

현재 국내에서 정식으로 허가받은 고셔병치료제는 사노피-아벤티스의 이미글루세라제(제품명 : 세레자임), 엘리글루스타트(제품명 : 세레델가), 다케다제약의 베라글루세라제알파(제품명 : 비프리브주), 이수앱지스의 이미글루세라제(제품명 : 애브서틴)이 있다.

국제고셔병협력협회(ICGG)가 1991년부터 수집해온 고셔병환자 데이터에 따르면 사노피-아벤티스의 이미글루세라제 사용 시 간 및 비장크기의 장기간 감소, 헤모글로빈 및 혈소판수치의 장기간 개선, 뼈통증 장기간 개선 등이 확인됐다. 무엇보다 장기간 사용 시에도 안전성을 확인했으며 임산부와 소아환자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사노피-아벤티스는 기존 제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질감소치료제인 엘리글루스타트도 개발했다. 엘리글루스타트는 2015년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았으며 임상을 통해 기존 효소대체요법으로 치료받은 환자에게 모두 효과를 보였다. 특히 경구제로 출시돼 복용편의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다케다제약의 베라글루세라제알파도 주목할 만하다. 베라글루세라제알파는 이미글루세라제 출시 이후 20여년 만에 새롭게 등장한 효소대체요법치료제다. 특히 인간세포에 기반했다는 점이 동물세포에 기반한 이미글루세자제와 큰 차별점을 갖는다. 인간세포에 기반한 만큼 체내에 자연생성되는 효소와 구조가 동일해 치료효과가 빠르고 안전성이 높다.

이밖에도 이수앱지스의 이미글루세라제도 있다. 이수앱지스의 이미글루세라제는 사노피-아벤티스의 고셔병치료제와 동일한 성분명을 가진 치료제다. 2012년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았으며 이후 이란, 멕시코 등에서 판매승인을 받아 국내는 물론 해외 고셔병환자들에게도 제공하고 있다. 현재 호주에서 임상을 진행 중이다.

이범희 교수는 “고셔병 중 신경형고셔병은 치료시기를 놓치면 치료제를 사용해도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없다”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국가 차원에서의 고셔병 조기진단 관련 진행사업이 없는 만큼 학회나 연구자들이 개별적 연구를 통해 질환을 스크리닝하고 조기진단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다음 기획기사는 ‘듀센형근이영양증(DMD)’입니다. 듀센형근이영양증은 주로 남아에게만 발생하는 근육위축 희귀유전질환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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