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가을 ‘추(秋)’가 들어가는 단어엔 그만 한 이유가 있다
[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가을 ‘추(秋)’가 들어가는 단어엔 그만 한 이유가 있다
  •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0.09.2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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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내일이면 추석(秋夕)이다. 추석을 해석하면 ‘가을 저녁’이란 의미다. 아마도 저녁에 볼 수 있는 커다란 보름달 때문에 저녁이 강조된 것 같다. 가을 ‘추(秋)’가 들어간 다른 단어들에도 왜 추(秋)가 사용됐는지 문득 그 이유와 어원이 궁금해진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추어탕이다. 모두들 알고 있듯이 추어는 미꾸라지를 말한다. 흔히들 ‘秋魚’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 정확한 한자 이름은 ‘鰍魚’다. 하지만 추(鰍)에도 고기 어(魚)와 함께 가을 추(秋)가 들어가 때문에 미꾸라지를 가을 물고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미꾸라지는 여름에도 잡지만 가을이 되면서 살이 가장 도톰하게 올라오기 때문에 가을철 미꾸라지가 가장 맛이 좋다고 알려졌다. 겨울이 되면 동면을 하는데 늦은 가을 수온이 5~6℃ 이하로 떨어지면 진흙 속 깊이 파고들어 겨울을 난다. 과거에는 겨울철에도 논 웅덩이의 얼음을 깨고 물을 퍼낸 후 더운물을 부어 놓으면 미꾸라지가 진흙 밖으로 빠져 나와 잡기도 했다. 그래도 여름, 겨울보다 가을 미꾸라지가 가장 맛이 좋아서 추어라는 이름이 붙었다.

추석과 동일하게 발음되는 이름이 바로 추석(秋石)이다. 이 단어는 많이들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추석(秋石)은 바로 소변에서 얻어지는 결정체를 말한다. 과거에는 어린아이의 소변(동변)을 농축해 결정을 얻어서 약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추석(秋石)이란 이름은 실제로 한의서에 기록된 이름이다.

요즘은 추석을 이용해서 혈전용해제를 얻는다. 유명한 유로키나제가 바로 소변 결정체인 추석에서 추출한 혈전용해 효과가 있는 효소다. 유로키나제(Urokinase)라는 이름의 ‘uro(유로)’는 소변을 의미하는 접두어다.

요즘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과거 고속도로 휴게소의 남자 화장실을 보면 소변기가 플라스틱 통이었다. 그리고 플라스틱 소변통 안에는 노란색 침전물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노란색 침전물이 바로 추석으로 플라스틱 통은 추석을 얻고자 제약회사에서 인위적으로 설치한 소변통이었다. 가정용 소변기 안쪽에 끼어 있는 노란색 돌 같은 것도 사실은 추석이다.

그런데 왜 소변에서 얻어진 노란색 결정체를 추석(秋石)이라고 했을까. 아마도 추(秋)에는 가을이란 의미 이외에도 ‘결실, 열매, 맺다’ 등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가을이 되면 열매가 열리듯 소변으로부터 얻어진 결실(결정체)이란 의미로 만들어진 것 같다.

다음으로 언급할 단어는 바로 천추(千秋)다. 흔히들 ‘천추(千秋)의 한(恨)’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이때 추(秋)는 가을보다는 1년을 뜻한다. 1년에 한 번씩 가을이 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4계절 중 가을이라는 계절은 가장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한을 표현하기 위해 추(秋) 자를 이용했을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모든 것이 활량해진다. 낙엽은 다른 계절에 비해 가을바람인 추풍(秋風)에 가장 쉽게 떨어지기 때문에 추풍낙엽(秋風落葉)이라고 했다. 가을의 기운은 움츠러들고 우울감은 한(恨)의 감정과도 맞물려 있다. 실제로 추(秋) 자에는 ‘근심하다,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는 의미가 있다.

어쨌든지 천추의 한은 ‘천년동안 한을 품었다’는 의미로 그 한이 그만큼 처절하고 애절해서 오랜 시간동안 풀지 못할 정도로 절실하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추(秋)에는 잔잔한 감정이 담겨 있기도 하다. 바로 추파(秋波)를 던지는 것이다. 추파는 누군가를 사모해서 은근하게 쳐다보는 눈짓을 의미한다. 아마도 가을철 호수의 잔잔한 물결처럼 마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근한 눈짓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춘파(春波)나 하파(夏波)였다면 다른 사람들조차 쉽게 눈치 채 버릴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니 이유없이 만들어지는 말도 없는 것 같다.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속내는 어떤지 살펴보면 상황에 맞게 보다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추석. 둥근 보름달을 기대해 보면서 차분히 추사(秋思)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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