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전 세계 인구의 10%가 씹는다? ‘빈랑(檳郞)’이 도대체 뭐길래
[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전 세계 인구의 10%가 씹는다? ‘빈랑(檳郞)’이 도대체 뭐길래
  • 한동하 한의학 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0.10.1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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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몇 년 전 한의대 학생들의 강의차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길거리에 커다랗게 ‘檳郞’이라고 써 있는 간판이 자주 눈에 띄었다. 우리말로 읽으면 ‘빈랑’이다. 대만 사람들은 환각작용을 얻기 위해 생빈랑을 씹는 전통이 있었다. 당시 동행했던 대만의 학생이 ‘빈랑을 씹으면 구강암이 생긴다고 해서 젊은이들은 안 씹는데 노인 분들이 많이 씹어요. 아마도 중독되신 것 같아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빈랑은 전통적으로 구충작용이나 정장작용을 위해서 사용해 왔던 한약재다. 국내에서도 전문 한약재로 유통되고 있지만 요즘은 한의사들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약재다.

그런데 며칠 전 중국에서는 코로나19를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빈랑을 권한다는 뉴스가 등장했다.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중국 외에도 빈랑이 감염성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 꽤 있었다. 빈랑이 중독성이나 구강암 가능성이 있어 안 그래도 걱정스러웠는데 감염성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까지 믿고 있다니 다소 황당하다.

이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는 빈랑에 감염성질환의 예방효과가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고 대신 빈랑의 부작용으로 발암 가능성이 있음을 분명히 강조했다.

생빈랑을 씹는 행위는 식물 유적을 통한 역사를 보면 거의 기원전까지 올라간다. WHO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의 10% 정도인 약 7억명 정도가 아직도 향정신성 효과를 내기 위해서 빈랑을 씹고 있다고 한다. 빈랑이 니코틴, 에탄올, 카페인 다음으로 전 세계적인 중독성 물질이라는 것이다.

빈랑에 포함된 아레콜린(arecoline)은 아드네날린 호르몬을 방출해서 일시적으로 기운이 나게 하고 마치 니코틴이나 카페인처럼 강심작용을 나타내서 심장이 빨리 뛰게 하며 혈관을 수축시킨다. 또 각성작용이 있으면서 기분을 좋게 한다. 사람들이 빈랑을 씹는 이유다. 특히 장거리 운전사나 택시기사, 힘든 노동일을 하는 경우 많이 씹는다고 한다.

빈랑을 씹는 것은 인도나 대만,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 태평양 섬나라 등 일부 나라의 전통이라고는 하지만 구강암 발생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매우 크다.

실제로 WHO는 빈랑 열매에 든 아레콜린 성분을 구강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아레콜린은 알칼로이드 성분으로 빈랑의 지표물질이기도 하다. 이 성분이 구충작용, 신경자극제, 각성작용 등의 향정신작용을 나타낸다. 문제는 이 성분이 암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아레콜린은 생리활성물질이면서 동시에 독성물질이다.

빈랑이 구강암을 유발한다는 연구들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빈랑의 부작용에 관한 연구는 1980년대부터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고 2000년이 넘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 같다. 특히 2014년 인도에서 시행된 연구(Indian J Med Paediatr Oncol. 2014 Jan-Mar; 35(1): 3–9. A review of the systemic adverse effects of areca nut or betel nut)를 보면 빈랑은 구강뿐 아니라 인두, 식도, 간 및 자궁에 발암성이 있으며 기타 신경계, 심혈관계, 위장소화기, 내분비, 생식기, 호흡기, 태아, 급성 독성 등 전신에 걸쳐서 부작용을 유발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규제돼야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빈랑은 현재 전문 한약재로 등록돼 있어 한의사의 처방이 가능하다. 이에 생빈랑을 씹는 것과 말린 빈랑을 수치(修治; 한약재의 약성과 독성을 변화, 조절하는 방법)해서 끓여서 섭취한 경우 부작용은 다를 수 있지만 아레콜린 같은 알칼로이드 성분은 끓인다고 해도 파괴되거나 모두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끓여서 복용하는 경우에도 섭취량, 섭취기간 등에 대한 안전성 차원의 연구가 절실해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한의사들도 빈랑의 처방에 신중해야 할 것 같다. 생빈랑을 씹는 것과 빈랑을 끓여서 섭취했을 경우 발암의 위험성에 대한 비교 연구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구충작용은 차치하고 장질환과 관련해서도 빈랑은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인 다른 한약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한약의 전문가인 한의사의 입장에서도 빈랑의 아레콜린은 생리활성물질이면서 동시에 발암물질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대신 빈랑을 감싸고 있는 껍질을 대복피(大腹皮)라고 하는데 대복피도 전문 한약재로 유통 중에 있다. 대복피는 구충작용은 없지만 기타 약리학적 효능은 빈랑과 비슷하면서 부작용이 적다. 본초서에서도 빈랑의 기는 급(急)하지만 대복피의 기는 완(緩)하다고 했다. 때문에 빈랑 대용으로 안전하게 처방이 가능할 것이다.

빈랑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마치 과거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했던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나 대마초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던 전통이라 할지라도 알고 보니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를 유발해 왔다면 통제가 마땅하다. 귀한[檳] 손님[榔]이 오면 건네줬다는 빈랑(檳榔), 이제는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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