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슈만편모충’보다 무서운 대한민국 사회
‘리슈만편모충’보다 무서운 대한민국 사회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10.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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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슈만편모충이라는 기생충이 있다. 기생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착한 기생충과 달리 리슈만편모충은 ‘어떻게 저럴 수가?’라는 비명이 나올 만큼 심각한 증상을 일으킨다. 내장을 침범하는 내장형은 간, 비장은 물론 골수까지 침범해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된다. 피부나 점막을 침범하는 타입은 목숨까지 빼앗진 않지만 큼지막한 궤양을 만들어 평생 갈 흉터를 남기거나 코뼈를 완전히 박살을 내는 등 무서운 기생충이다.

내장형은 주로 인도, 방글라데시, 수단, 브라질 등에서 발생하고 피부 타입은 남미와 중동, 중앙아시아 등에서 생긴다. 리슈만편모충의 증상이 무섭게 느껴진다면 교과서에 나온 다음 구절을 보고 마음을 놓으시라. ‘이 원충은 매개체인 모래파리가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아서 유행하지 않는다.’

그렇다. 이 원충은 우리나라에 없다. 외국에 나가서 걸려오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국내에서 산다면 기초연금 걱정은 할지라도 최소한 리슈만편모충 걱정은 안 해도 되리라. 실제로 우리나라의 감염사례는 거의 외국서 걸려온 경우다.

‘1952년 중국에서 이주한 동포 3명에서 내장 타입 리슈만편모충이 발생했다’ ‘1981년 사우디에서 건설기능공으로 근무하다 귀국한 뒤 이듬해에 내장 타입이 발병’ ‘2004년 아르헨티나를 여행한 경력이 있는 9개월된 소아에서 내장 타입이 발병했다’ 등 몇 건의 발생보고가 있고 피부 타입은 이보다 훨씬 흔해 25례 이상 보고된 바 있다.

그렇다면 다음은 어떻게 된 것일까. 2004년 고려대병원 피부과에서 보고된 바에 따르면 70세 남자의 왼쪽 얼굴에 가려움을 동반한 붉은 결절이 돋았는데 조직검사 결과 리슈만편모충이 발견됐다. 놀라운 것은 이 남자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다는 것. 다시 얘기하지만 이 기생충은 모래파리가 옮긴다. 모래파리의 몸 안에서 발육해야지만 사람에 감염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럴 가능성은 있다. 나이가 마흔살만 돼도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는데 70세 노인분이 해외여행을 갔다는 사실을 정확히 기억하겠냐고.

그렇다면 다음 증례는 어떨까. 2006년 서울대 동물병원에 암컷 애완견이 내원했는데 코에서 피가 나고 몸에 결절이 보였다. 결절의 조직검사 결과 내장형 리슈만편모충이 관찰됐다. 리슈만편모충은 사람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가축과 야생동물에 감염될 수 있지만 그 애완견은 해외여행 경험이 없었고 개주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더욱 이상한 것은 다음 기록이다. 1914년 중국의학잡지에서는 한국에서 내장형 리슈만편모충이 발생한다고 했다. 오래된 자료긴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다.

사정이 이러니 유행지역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리슈만편모충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닐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리슈만편모충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기야 우리나라가 언제 안전한 적이 있었던가? 모래파리만 조심해야 되는 그쪽 나라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위험한 것들 투성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밀양에는 송전탑이 세워지고 사측의 부당한 횡포에 맞서 노동자들은 크레인을 오른다. 허탈한 심정으로 강가에 가보지만 강물은 이미 녹조에 점령당했다. 어떤가. 리슈만편모충이 차라리 덜 무섭지 않은가?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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