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날 기획] 예산심의 본격화...여성농업인 특수검진사업은?
[농민의 날 기획] 예산심의 본격화...여성농업인 특수검진사업은?
  • 김보람 기자 (rambo502@k-health.com)
  • 승인 2020.11.11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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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유병률·의료비용 개선 목적
내년 시범사업 예산 편성 절실
남성 농업인과의 형평성 문제도

정부에서는 지난해부터 여성농업인들의 높은 유병률과 의료비용을 개선하고자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내년 이뤄질 시범사업과 제도의 지속을 위해선 예산 확보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농민의 날(11월 11일)을 맞아 여성농민 건강실태와 특수건강검진제도의 필요성을 짚어봤습니다<편집자 주>.

“새벽에 눈 뜨자마자 잠들기 직전까지 쉴 새 없이 일하는 거예요.”

전남 화순에서 30년간 복숭아농사를 짓고 있는 여성농민 김순내씨는 수확철인 여름이 되면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밤 12시까지 재배와 작업을 반복한다.

김순내 씨는 “하루 종일 서있으니 무릎부터 발목, 허리가 늘 시리고 땡볕에서 수확을 하다보면 머리도 아프다”고 말한다. 하지만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진통제를 먹고 버틴다. 밭일을 하다가도 끼니때마다 밥을 차리고 청소, 빨래 등 온갖 집안일이 남아있는 데다 농촌의 노동력이 한없이 부족한 탓이다.

■지나친 노동부담...높은 유병률·의료비로 나타나

여성농민들은 논농사보다는 기계화가 덜 진행된 밭농사에 종사하며 가사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아 지나친 노동부담을 진다. 이는 높은 유병률과 의료비용으로 증명된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에 따르면 여성농민의 근골격계질환(목, 어깨, 허리, 팔다리 신경·근육 및 주변 조직에 나타나는 질환) 유병률은 70.7%로 남성농민(55.1%)과 비농민(52.2%)보다 훨씬 높다. 논농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계화가 덜 진행된 밭농사에 주로 종사하기 때문이다. 밭농사는 앉았다 일어서고 무거운 짐을 드는 등 관절과 근육에 무리가 가는 동작이 많다.

여성농민들의 노동부담은 집안일로 더욱 가중된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는 농촌에서 가사는 대부분 여성의 몫이다. 또 밭일과 가사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으니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갖기 힘든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농민들은 유해인자에 쉽게 노출되는 농작업특성상 ▲감염성질환 ▲농약중독 ▲온열질환 ▲호흡기질환 등에 취약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농업, 광업, 건설업을 3대 위험산업으로 분류하고 그에 준하는 안전보건관리를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광업과 건설업 종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특수검진을 시행하고 있으나 농업에는 전무하다.

여성농민과 일반여성의 의료비용 또한 차이가 두드러진다. 여성농민의 1인당 연평균 의료비는 874만원으로 일반여성의 229만7000원보다 약 4배가량 높다. 높은 유병률은 물론 열악한 의료환경으로 인해 병이 꽤 진행되고 나서야 치료를 받게 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취약한 의료접근성 보완할 특수건강검진

조선대병원 전남농업안전보건센터에서 특수건강검진을 받은 여성농업인들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농민이 취약한 질병에 대한 검사항목을 추가, 100%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일반여성 대비 여성농민의 높은 유병률과 의료비용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부터 준비사업이 실시돼 농업안전보건센터 5곳에서 여성농업인 1000명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이 이뤄졌다. 내년 시범사업을 거쳐 2022년 여성농업인 20만명에게 본사업을 시행하는 것이 목표다.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실시를 위한 법적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 2018년 ‘여성농어업인 육성법’에는 여성농업인에 대한 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실시해야한다는 조항이 신설됐으며 여성농어업인 육성법 시행령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특수검진을 받은 여성농민들은 제도의 필요성을 적극 공감하고 있었다. 김순내 씨도 조선대병원 전남농업안전보건센터에서 특수검진을 받았다. 김순내 씨는 “골다공증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며 “그간 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가도, 일반건강검진을 받아도 알 수 없었던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여성농민 김남순 씨는 가족력에 없던 당뇨 진단을 받았다. 김남순씨는 “이제 당뇨약을 복용하며 정기적인 검사도 받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여성농민들이 특수검진을 받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남농업안전보건센터 봉세웅 연구원은 “특수건강검진을 받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는 분들이 많았다”며 “농촌은 의료접근성이 매우 떨어져 제대로 된 검사나 치료를 받지 못해 자신의 몸상태를 잘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고 특수검진제도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예산확보 절실...형평성 문제도

하지만 제도가 시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농식품부에서 내년 시범사업을 위한 예산 32억원을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 신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9일 국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는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사업을 포함한 예산안을 증액 의결했다. 이번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통과해야 확정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서삼석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조경숙 비서관은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은 농촌사회에서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여성농민들에게 꼭 필요한 사업”이라며 “여성농민들의 높은 유병률과 의료비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식품부 여성정책팀 오미란 과장도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이기도 하다”며 “이번 국회예산안 심사에서 예산이 반드시 편성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여성농업인 특수검진사업이 제대로 정착될 수 있으려면 일부 남성들의 공감적 지지를 얻는 것 또한 필요한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남성농민도 여성 못지않게 농작업 관련 질환에 시달린다며 여성농민에게만 검진을 시행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기재부가 예산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여성만 한정해 농업인 특수검진을 시행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조선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이철갑 교수(전남농업안전보건센터장)은 “남성농민도 여성 못지않게 각종 질환에 노출돼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농업어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에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한다는 조항을 신설, 대상을 모두에게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농업인 특수검진은 농업인질환의 예방·치료 연구를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 추후 사업대상을 넓히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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