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술도 못 먹는데 주사라고요?” 어느 피부과 전문의의 다짐
[특별기고] “술도 못 먹는데 주사라고요?” 어느 피부과 전문의의 다짐
  • 김현조 피부과전문의(CN차앤박피부과 천안불당점 원장)ㅣ정리·한정선 기자 (fk0824@k-health.com)
  • 승인 2021.01.27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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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조 피부과전문의(CN차앤박피부과 천안불당점 원장)

“저는 술을 못 마시는데요?”

병원에 방문한 환자에게 “환자 분의 안면홍조는 주사(酒齄)로 인한 증상으로 생각됩니다”라고 설명할 때 대다수 환자분가 이러한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주문화에 비교적 관대한 대한민국에서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의 실수, 즉 주사(酒邪)는 “삶이 팍팍해 그런 거니 한번쯤 그럴 수도 있지” 또는 “좋은 일 있어서 과음한 건데” 등 여러 가지 변명으로 넘어가긴 하지만 어쨌거나 불명예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피부과의사로서 진료를 하면서 주사환자를 만나면 주사(酒齄)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것이 첫 번째 순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환자 분 제가 말씀 드린 주사(酒齄)는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주사(酒邪)가 아니라 술(주 : 酒), 주부코(사 : 齄)라는 한자조합을 말합니다. 주부코(사 : 齄)는 음주와 상관없이 마치 술을 많이 마신 듯 코가 붉고 부어오른다는 뜻의 한자어이니 환자분이 애주가라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이렇게 설명해주면 환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데 왜 술도 안 마시는 제가 얼굴이 자주 붉어지고 뾰루지 같은 것이 지속적으로 재발할까요?”라는 질문을 합니다.

물론 주사의 악화요인 중 음주가 있지만 음주는 주사의 원인 중 일부일 뿐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주사’라는 병명은 언젠가 좀 더 적절한 병명으로 바뀌어야 술을 전혀 못하는 주사환자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친구와 식구들조차 고통의 정도를 알아주지 못해 혼자 속앓이할 수밖에 없는 안면홍조의 주범인 만성염증성피부질환인 주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모든 만성피부질환이 그렇듯 주사도 정신적·육체적으로 환자를 괴롭히고 지치게 만드는 질환입니다. 따라서 주사를 가장 잘 진단하고 치료하는 피부과의사는 피부는 물론 정신적으로 지친 환자의 마음을 보듬는 정신과 주치의 역할까지 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겨울날 스키, 스노보드 같은 겨울 레저를 즐기고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날에는 따뜻한 난로 옆에서 몸을 녹이며 때로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가 하면 여름에 태양이 작열하는 바닷가를 찾아 바캉스를 즐기고 싶은 바람은 모든 사람들의 당연한 욕구일 것입니다.

누군가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스트레스와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듯이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 술 한잔으로 위로 받고 싶고 땀을 흠뻑 흘리면서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사환자에게는 이 모든 일이 악화인자로 다가오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삶을 살아가며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지 못하면서 ‘조심’ ‘주의’라는 단어를 항상 가슴에 묻고 살아야합니다.

따라서 피부과 전문의는 주사환자의 불편과 고통을 덜어주고 환자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것을 하늘이 내린 소임이라 생각하고 치료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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