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김치에 빠지지 않는 ‘고추’, 한국엔 언제 들어왔을까
[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김치에 빠지지 않는 ‘고추’, 한국엔 언제 들어왔을까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02.03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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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국인에게 빨간 김치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 중 하나다. 더불어 고추는 빨간 김치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다. 불현듯 고추가 한국에 언제 유입됐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면 볼수록 고추 유입에 관한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학창시절 고추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1492년 콜럼버스가 스페인으로 먼저 전파했고 이후 전 세계로 퍼졌다고 배웠다. 우리나라에는 16세기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반하는 다양한 연구들이 존재한다.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유입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한국에 자생하고 있었다는 내용과 함께 고추가 일본이 아닌 중국으로부터 유입됐다는 설도 있다.

고추가 일본에서 유입됐다는 내용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1850년경)>나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년)>을 근거로 생겨난 것이다. 해당 서적에서는 번초(蕃椒), 왜개자(倭芥子), 남만초(南蠻椒)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 유입됐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일부 학자들이 이 식물을 고추로 여겼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전부터 한국에 고추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한글이 창제(1443년)된 이후에 발행된 <훈몽자회(1527년)>에는 ‘椒’ 자의 한글 표기로 ‘고쵸’라고 적혀 있다. 이미 그 이전에 발행된 <향약집성방(1433)> <의방유취(1445년)>나 <식료찬요(1460년)>에도 ‘椒醬’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일부 학자들은 고쵸는 고추를 의미하고 초장은 고추장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학자는 훈몽자회에 나오는 한글 ‘고쵸’라는 이름은 고추가 아니라 천초 등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주장한다. 당시에는 고추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椒) 자는 주로 조피나무의 열매나 후추 등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됐다. 그러다가 고추가 전래된 이후에는 동시에 초(椒) 자는 고추도 포함하게 된다.

고추의 ‘추’는 바로 ‘초(椒)’에서 온 것이다. 과거에는 고추를 한자로 ‘苦椒(고초)’로 표기했다. 일부 다른 서적에는 ‘苦草(고초)’라고 적혀 있기도 한데 고(苦)는 보통 ‘쓰다’라는 의미지만 여기서는 매운맛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극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실린 일본을 통해 번초(蕃椒)가 들어왔다는 내용은 학자들 간 이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들어온 번초는 한국에서 흔히 먹었던 고추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을 통해서 번초가 들어왔지만 이미 한국에는 고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고추 자생설을 주장하면서 한국 고추만의 고유 유전자적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추가 가지과이기 때문에 이 주장은 가지과인 가지, 고추, 감자, 토마토, 피망 등의 유입과 함께 논의돼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일본의 <대화본초(1709년)>에는 고추가 한국에서 전래됐다고 기록돼 있다. 또 고추를 당초(唐椒)라고도 불렀는데 이것은 바로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고추라는 것이다. 사실 임진왜란 당시 중국 군사들을 통해 당초가 들어왔다는 역사적 기록이 존재한다. 이것을 보면 고추는 중국, 한국을 통해서 일본으로 들어간 것이 된다. 소위 말하는 고추의 북방 유래설이다. 일본 유래설과 공통점이라면 전래시기가 바로 임진왜란이라는 것이다.

고추의 유래와 관련된 또 다른 의문이 있다. 만일 고추가 임진왜란 이전부터 한국에 존재했다면 임진왜란 이후에 쓰여진 한의서에는 고추가 기록돼 있어야한다. 하지만 조선 중기의 <동의보감(1610년)>에는 고추의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초(椒) 자가 들어간 단어가 총 16종류가 있지만 모두 천초나 호초 등을 지칭한다. 심지어 조선 후기의 <제중신편(1799년)>이나 <방약합편(1885년)> 등에도 고추는 없다.

동의보감 이전 서적인 중국 명나라 때의 <본초강목(1596년)>에도 고추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섭취 가능한 모든 것이 총망라돼 있다는 본초강목과 동의보감에 고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당시 중국이나 한국에 고추가 흔치 않았거나 없었던지 아니면 있었지만 누락됐던지 말이다. 고민해 볼 부분이다.

몇몇 논문에서는 <향약집성방>에 기록된 초시(椒豉)가 고추장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동의보감에 나오는 초시는 초목(椒目; 천초 씨앗)과 발효시킨 메주콩인 담두시(淡豆豉), 파두를 섞어 놓은 처방으로 설명돼 있다. 바로 초시원(椒豉元)이라는 처방이다. 초시는 고추가 아니라 천초를 이용한 것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쓰여진 <향약집성방(1433년)>이나 <의방유취(1445)> 등에 ‘椒醬(초장)’이라는 단어가 나오지만 여기서 椒(초) 자가 고추라는 증거도 명확하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이 초장이 고추장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천초로 만든 천초장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마도 초기 초장(椒醬)은 천초 등으로 만들다가 고추가 전래되면서 빨간색 고추장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문제는 고추가 유래된 나라와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고추 유입의 역사가 궁금해서 많은 자료와 논문들을 찾아봤지만 더 혼란에 빠졌다. 고추의 유래와 관련된 학자들의 연구내용이 서로 상충되는 것들이 많다. 이 문제는 국내 학자들만의 연구로 해결될 리 만무하다. 한국, 중국, 일본의 학자들이 서로 모여 역사적·문헌적 고찰을 통해 연구·정리돼야 할 것이다.

최근 김치 종주국이 어디냐에 대해 말들이 많다. 고추의 역사가 정리돼야만 한국의 (빨간) 김치의 역사도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단지 주장이 아닌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역사적·학술적·과학적 근거가 절실해 보인다.

이쯤 되면 고추 역사의 타임머신을 타고 싶다. “고추야 언제, 어디서 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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