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겨울철 전통음료 ‘수정과’, 왜 차게 먹어도 배탈 안 날까
[한동하의 웰빙의 역설] 겨울철 전통음료 ‘수정과’, 왜 차게 먹어도 배탈 안 날까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강태우 기자 (burning.k@k-health.com)
  • 승인 2021.02.10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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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어릴 적 필자의 어머니는 설 때마다 수정과를 만드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추운 겨울철 살얼음이 둥둥 떠 있는 수정과를 마실 때마다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했다. 추운 겨울에 찬 음료라니. 하지만 수정과를 마시고 배탈이 나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다. 수정과 속에는 특별한 음식궁합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수정과(水正果)는 정과(正果)를 물(水)에 넣어서 마시는 음료다. 정과는 전과(煎果)라고도 하는데 과일이나 견과류, 뿌리채소를 말려서 꿀에 졸인 것을 말한다. 과거부터 연근, 인삼, 마, 밤, 천문동 등을 이용해서 밀전과(蜜煎果)를 만들었다.

수정과는 보통 생강과 계피 또는 통후추를 넣고 끓인 물을 식힌 후 여기에 곶감과 잣 등을 넣어 먹는다. 수정과를 겨울에 먹는 이유 중에 하나는 곶감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면서 완성되기 때문일 수 있다.

먼저 음료를 만든 후에 여기에 건시(乾柿), 즉 곶감이 들어가면 건시수정과(乾柿水正果)로 부르고 다른 과일 말린 것이 들어가면 잡과수정과(雜果水正果)로 부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가 흔하게 먹는 수정과의 주인공은 곶감 같지만 사실 그 뒤에는 수정과 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에 수정과는 따뜻한 곳에 보관하지 않고 시원한 곳에 뒀다. 겨울철인데도시원하게 먹었고 살얼음이 떠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원래 시원하게 먹는 겨울철 음료였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 수정과를 먹고 복통, 설사가 일어나거나 탈이 생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생강과 계피, 후추 등에 있다.

생강과 계피, 후추는 기운이 따뜻한 대표적인 식재료다. 생강에는 쇼가올, 진저롤과 같은 특유의 매운맛 성분인 생리활성물질이 풍부해서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따라서 몸에 냉감이 있거나 평소 피부와 손발이 찬 경우 생강을 즐겨 먹으면 좋다. 껍질을 벗겨내면 기운이 더욱 따뜻해진다.

계피 또한 냉증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생강과 마찬가지로 기운이 따뜻한데 차이라면 생강은 차가운 기운을 밖으로 몰아내면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계피는 찬기운을 몸 속에서 억눌러서 몸을 덥힌다. 따라서 생강을 먹으면 땀이 나지만 계피는 땀을 내지는 않는다. 특히 아랫배가 차가운 경우에 많이 활용된다.

계피의 주성분은 신남산(계피산)으로 독특하게 매운 맛이 난다. 보통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계피는 카시아 계피로 주로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생산된다. 카시아 계피는 육계(肉桂)라고도 부르는데 과거부터 수정과에 넣어 먹어왔던 계피다. 카시아 계피는 매우면서도 약간 쓴맛이 난다.

카시아 계피 대신 수정과에 실론 계피를 넣어도 된다. 실론 계피는 보통 시나몬이라고 부르는데 카시아 계피에 비해서 쓴맛은 적고 부드러운 단맛이 강하다. 또 카시아 계피에 비해 쿠마린 함량이 적어서 간독성이 거의 없다. 실론 계피는 카시아 계피에 비해서 가격이 비싸다.

통후추도 대표적인 열성식품이다. 맛이 독특하게 매워서 향신료로 많이 사용하고 과거 중세유럽에서는 금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후추는 호초(胡椒)를 말한다. 후추 대신 조피나무 열매인 천초(川椒)를 사용하기도 했다. 후추나 천초 역시 냉증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 약성이 강해서 아주 소량만 사용한다.

수정과는 차갑게 해서 마시는 음료지만 그 안에 포함된 성분은 모두 냉증을 치료하는 약재들이다. 만일 몸이 춥고 손발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 있다면 생강, 계피, 호초 등을 끓여서 차처럼 마시면 몸이 따뜻해질 것이다. 이것을 식혀서 마시거나 차갑게 마셔도 효과는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냉증이 심한 사람은 수정과를 따뜻하게 데워 온수정과(溫水正果)로 마시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만일 여름철에 차가운 아이스크림이나 빙수를 먹고 싶은데 몸이 냉해서 배탈이 걱정이라면 여기에 생강가루나 계피가루를 살짝 뿌려서 먹으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사실 속이 냉한 사람은 찬음식을 피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먹어야하는 경우도 있고 입에서 당기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 아이스크림이나 빙수가게에 생강가루나 계피가루를 준비해줬으면 한다. 평소 몸이 냉한 사람들까지 부작용 없이 먹게 할 수 있으니 매출이 더 많이 오를 것이다. 음식궁합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선조들이 겨울철에 차갑게 먹는 음료의 주성분을 생강, 계피, 호초 등으로 만든 것은 지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맛있으면서도 부작용까지 없게 하는 음식궁합을 실천한 셈이다. 오히려 수정과는 겨울철 몸을 따뜻하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원하게 먹는 수정과는 역설적으로 몸을 덥히는 열성음료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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