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와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의 차이
카터와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의 차이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10.16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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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만원밖에 없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 말이 세간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그가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꿀꺽했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 누구나 다 알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이 시공사라는 거대 출판사의 주인이 된 것도 그렇지만 전 씨 자신 역시 그 정도 돈밖에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비단 전 씨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재임 중 대통령업무를 제대로 잘 수행하지 못해 그럴 것 같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퇴임 후 뭔가 존경받을만한 일을 하는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이 더 큰 이유다.

 
 
 
미국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따지자면 ‘실패한 대통령’이었다. 그가 재임했던 4년은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소위 석유파동으로 세계경제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또 임기 말 이란에서 미국 대사관직원들을 억류하는 인질극이 벌어지고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바람에 재선에서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만다.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아오기까지는 그로부터 12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날 뻔했던 카터는 오히려 퇴임 후 더욱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 발판이 된 것은 1982년 만들어진 카터재단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청계재단이라는 훌륭한 재단이 있어 전임대통령과 그 친척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등 중요한 일을 하지만 카터재단의 성격은 달랐다. 집이 없는 사람에게 무료로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운동’을 전 세계에서 펼친 것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카터재단의 가장 큰 업적은 메디나충이라는 기생충을 박멸단계까지 몰아넣었다는 점이었다.

메디나충은 수단을 비롯한 아프리카에서 유행한다. 사람 몸 안에서 1미터까지 자라며 복사뼈 근처로 나와 알을 낳는 엽기적인 기생충이다. 이 기생충을 잡아 빼는 데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고 관절 등을 손상시켜 장애를 일으키기로 악명이 높다. 오죽하면 “기생충은 나쁘지 않다”며 기생충 편을 드는 필자까지 “메디나충은 박멸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겠는가?

꾸준히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 이외에 카터재단은 이 기생충을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이 기생충이 아프리카에서 유행하는 이유는 가난 때문에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없는 환경에서 물속에 있는 물벼룩이 들어가 인체감염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안전한 물 공급을 위해 노력하던 카터재단은 결국 주민들에게 물벼룩을 거를 수 있는 필터를 나눠줌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 1986년 300만명을 넘던 메디나충환자는 시나브로 줄어들기 시작, 2010년과 2011년 발생한 환자수가 각각 1000여 명에 불과했다.

이밖에도 카터는 1994년 대북특사를 자청,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막아냈고 국제분쟁과 인권신장을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노벨위원회는 2002년 카터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함으로써 그의 노력에 보답했다.

노벨평화상을 받고 난 뒤 카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겨우 80살이다. 몇 년은 더 일할 여력이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겨우 29만원밖에 없다고 얘기한 것과 대조되는 이 발언은 그가 왜 ‘위대한 전직대통령’으로 불리는지 알게 해준다.

정말 중요한 것은 대통령직을 그만 둔 후다. 전직대통령이라는 지위는 자신이 못 다한 꿈을 펼칠 수 있는 바탕이 돼준다. 좋은 테니스코트를 독점한다든지, 자신이 만든 녹조를 둘러보며 자전거를 타는 것도 충분히 훌륭한 일이겠지만 이보다는 보다 의미 있는 일에 몸 바치는 전직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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