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숙주조종 vs 국정원의 인간조종
기생충의 숙주조종 vs 국정원의 인간조종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10.25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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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한 남자가 자신이 만든 살충제를 파리가 들어 있는 상자에 넣었다. 가장 강력한 살충제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던 이 남자는 349번의 실험에서 모조리 실패를 겪었지만 350번째 실험은 좀 달랐다. 파리들이 모조리 바닥에 떨어져 죽어있었으니까.

더 놀라운 것은 살충제의 엄청난 지속력이었다. 상자를 깨끗이 닦은 뒤에도 파리는 상자에 부딪히기만 하면 힘없이 떨어져 버렸다. 폴 뮐러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남자는 자신이 드디어 삶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만든 살충제는 그 화학구조의 앞글자를 따 DDT라고 불렸다 (‘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에서 참고).

실전에 투입된 DDT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이가 매개하는 티푸스로 고생하던 이탈리아병사들은 더 이상 티푸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으며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이 사이판을 탈환한 것도 DDT가 뎅기열을 완벽하게 차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DDT의 위대한 점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말라리아를 박멸단계에까지 몰고 갔다는 데 있다. 지금도 매년 1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환인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데 DDT로 인해 모기가 전멸되니 말라리아 전파가 이뤄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에서는 해마다 300만명이 말라리아에 걸렸는데 DDT를 뿌리고 난 뒤에는 환자 수가 30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인도에서는 7500만 명이 말라리아에 걸려 80만명이 사망했는데 DDT가 살포된 이후 사망자가 거의 없었으며 평균수명이 32세에서 52세로 20년 늘었다. 폴 뮐러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나왔다. 이 책은 DDT로 인한 환경파괴를 문제 삼으면서 DDT가 인간에게 암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단체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고 결국 DDT는 사용금지됐다. 추후 연구결과 DDT가 그렇게 해로운 물질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지만 더 큰 문제는 멸종위기에 처했던 말라리아가 다시금 살아났다는 점이었다.

현재 말라리아는 여전히 세계보건기구가 가장 시급하게 박멸해야 할 무서운 질병 1위다. 말라리아가 없는 미국이야 DDT가 없어도 상관이 없겠지만 당장 말라리아 때문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아프리카를 생각하면 DDT 사용금지가 과연 옳은 조치였는지 의구심이 든다.

연가시의 예에서 보듯 기생충이 자신의 번식을 위해 숙주를 조종한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게다가 톡소포자충 연구를 통해 곤충이나 동물뿐 아니라 인간 역시 기생충에 의해 조종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레이첼 카슨이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얘기는 없지만 혹시 아는가? 말라리아병원체가 카슨의 뇌로 침입해 자신을 위협하는 DDT에 반대하는 책을 쓰게 만들었을지.

이런 억측을 하는 것도 다 기생충이 그만큼 영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국정원 생각이 난다. 지난 대선 때 댓글을 단 사실이 들통 나자 국정원은 난데없이 정상회담회의록을 까보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그쪽으로 돌리려 했다.

그 뒤부터 사람들은 댓글사건은 깨끗이 잊고 정상회담회의록이 왜 실종됐는지, 검찰총장은 정말 혼외자식이 있는지 등에만 관심을 보였는데 이는 국정원의 인간조종술이 기생충에 못지않음을 잘 보여준다.

안타까운 점은 기생충이 본연의 임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해 숙주를 조종하는 반면 국정원은 자기 임무 따위는 까맣게 잊고 오직 인간조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김정일 사망을 국정원이 안 것은 북한 TV가 그 사실을 공표했을 때라니 이런 국정원을 우리가 믿어도 될까.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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