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식의보감] 여름이면 생각나는 메밀…누군가에겐 사기(邪氣)를 제거하는 약
[한동하의 식의보감] 여름이면 생각나는 메밀…누군가에겐 사기(邪氣)를 제거하는 약
  • 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ㅣ정리·장인선 기자 (insun@k-health.com)
  • 승인 2021.08.0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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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 한의학박사(한동하한의원 원장)

올 여름휴가로 강원도에 다녀왔다. 그런데 강원도 산길을 지나면서 여지없이 메밀밭을 볼 수 있었다. 메밀로 만든 온갖 음식들을 홍보하는 식당들도 많았다. 메밀칼국수부터 메밀냉면, 온메밀, 메밀전병, 메밀막국수까지. 아마 강원도는 메밀이 많이 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강원도에 메밀이 많다는 것은 강원도가 척박한 지역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메밀은 메마른 땅에서도 잘 적응해서 자라고 황무지에서도 쉽게 살 수 있으며 서늘한 산간지역에서도 잘 자란다.

메밀은 원래 사계절이 있는 온대지방의 ‘겨울식량’이었다. <본초강목>에도 ‘메밀은 농가의 동계(冬季)의 식량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먹을 것이 풍족한 요즘에는 메밀로 만든 냉면을 주로 여름에 먹어서 메밀이 여름 음식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메밀은 과거 봄이나 가을에 수확해서 식량이 부족한 겨울철에 모두 소비됐다.

메밀은 과거 겨울철 식량이었지만 메밀의 약성을 보면 겨울보다는 여름에 먹는 것이 더 좋다. 메밀은 사람이 먹는 곡물 중에 기운이 가장 서늘한 곡식이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식량이라면 여름철에는 약에 가깝다.

메밀은 한의서에 교맥(蕎麥)이라고 했다. 이시진은 <본초강목>에서 ‘교(蕎)는 줄기가 위로 뻗어가는 것이 교연(翹然; 특출한 모양)하기 때문이고 가루를 내면 맥(麥; 밀이나 보리) 같기 때문에 교맥(蕎麥)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실제로 메밀을 보면 위쪽으로 가늘고 늘씬하게 자라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메밀을 뜻하는 교(蕎)자가 높을 고(高)자로 만들어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식료본초>에는 ‘메밀은 맛이 달고 성질이 차며 독이 없다. 장위(腸胃)를 실하게 하고 기력을 보익한다. 오장의 더러운 찌꺼기를 없애고 정신을 좋게 한다’고 했다. 또 ‘성질이 차기 때문에 소화가 잘 안 되고 열풍을 통하기 때문에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열풍을 일으키고 눈썹을 빠지게 한다고 했다.

메밀은 변비에도 좋다. ‘장위의 더러운 찌꺼기를 없앤다’는 표현도 메밀에 장의 노폐물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다는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이시진은 ‘메밀은 가장 기를 아래로 내리고 장을 너그럽게[관(寬)] 한다’고 했다. 따라서 찔끔거리는 설사나 복통이 있을 때 효과가 좋다고 했는데 메밀만을 가루 내서 밥으로 먹으면 몇 차례 설사가 나면서 이내 낫는다고 했다. 이러한 효과는 장내 노폐물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변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밀은 하기(下氣) 작용이 있다. 메밀의 기운은 서늘하면서도 기운을 아래도 내려주는 작용을 한다. <본초강목>에는 ‘기가 성(盛)해서 습열(濕熱)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열이 항상 위로 치받치는 소양인이나 비만한 태음인들에게 잘 맞는 식품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고혈압이 있으면서 뇌출혈이 걱정이 사람들에게는 메밀은 더없이 좋은 약이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메밀에는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바이오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인 루틴(rutin)이라는 성분도 풍부해서 혈액순환에도 좋다. 상기(上氣)를 막아주기 때문에 고혈압으로 인한 뇌혈관의 출혈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반면에 이시진은 ‘소화기가 허한(虛寒)한 사람이 메밀을 먹으면 대개 원기를 잃고 눈썹이 빠지게 하니 적당하지 않다’고 했다. 이시진은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맹선이 <식료본초>에서 ‘메밀이 기력을 보익한다’고 한 내용을 반박하면서 수긍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필자도 이에 공감하는 바이다. 메밀은 인삼처럼 정기(正氣)를 보충해서 기운을 내는 효과보다는 사기(邪氣;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들)를 제거함으로써 몸을 건강하게 하는 효과일 것이다.

메밀은 소염, 진통작용이 있다. <본초강목>에는 ‘열종(熱腫; 열감이 있으면서 부은 곳), 풍통(風痛; 급격하게 나타나는 급성 통증, 풍치나 통풍 등)을 없앤다’고 했다. 실제로 메밀은 급성염증을 없애고 이뇨작용이 있어서 요산배출을 촉진하고 퓨린 함량이 낮아 통풍에도 좋다.

메밀은 알곡 이외에 잎도 식용한다. <식료본초>에는 ‘잎은 나물로 무쳐 먹는다. 기를 내리고 눈과 귀를 잘 통하게 한다. 많이 먹으면 설사가 조금 난다’고 했다. 실제로 강원도지역에서는 메밀나물을 먹는다. 나물로 먹어도 좋고 말려뒀다가 차로 마셔도 좋겠다. 많이 먹으면 설사가 난다고 하는 것은 메밀과 비슷한 이유가 되겠다.

<본초강목>에 몇 가지 메밀처방이 있다. 기가 위로 치받쳐 오르면서 나는 기침에 메밀가루와 녹차가루를 꿀물에 섞어 마시면 좋다고 했다. 또 두피가 헐고 궤양이 생겼을 때 메밀가루를 (떡을 만들어) 자주 붙인다.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었을 때는 메밀가루를 약간 노랗게 볶아서 곱게 가루 낸 다음 물에 불어서 붙이면 신효(神效)하다고 했다.

과거부터 메밀은 주로 단메밀을 식량으로 섭취했다. 따라서 식량으로 섭취하는 단메밀을 첨교(甛蕎)라고도 불렀다. 반면에 쓴메밀인 고교(苦蕎)도 있다. <본초강목>에는 ‘고교맥(苦蕎麥)을 다식(多式)하면 위를 상한다. (중략) 기근이 들었을 때 허기를 채울 정도로만 먹는다’고 했다.

쓴메밀은 중국남부, 인도, 네팔 등지에서 재배되며 타타르메밀(tartary buckwheat)로 불린다. 특징적으로 쓴메밀에는 루틴성분이 단메밀에 비해서 70배가 많다. 퀘르세틴도 들어있다. 최근에는 새싹보리처럼 쓴메밀새싹을 키워서 섭취하기도 한다.

(단)메밀은 맛이 담백한 식량이라면 쓴메밀은 맛이 쓴 약에 가깝다. 쓴메밀은 볶아서 차로 마셔도 좋다. 쓴메밀이 없다면 시중의 일반 메밀도 무난하다. 쓴메밀이나 일반 메밀을 깨끗이 씻어서 말린 후에 프라이팬에 볶아서 물을 넣고 한번에 한숟가락 정도씩 끓여 메밀차로 마신다. 여기에 말린 잎을 함께 추가해도 좋다. 양은 한꺼번에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적은 양으로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 좋다.

메밀은 육식과 인스턴트 식품을 즐겨 먹으면서 과식을 하고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들에게 적합하다. 하지만 몸에 좋다는 보약이나 보양식이 독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각종 혈관질환과 함께 비만, 대사증후군, 복부비만,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이 걱정인 사람들이다. 메밀은 절식이 필요하고 체내의 노폐물을 버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메밀은 식량이자 누군가에겐 사기(邪氣)를 제거해서 몸을 건강하게 하는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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