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사피엔스 vs 네안데르탈인
호모사피엔스 vs 네안데르탈인
  •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11.01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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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모충이라는 기생충이 있다. 멧돼지나 오소리 등 야생동물에 사는데 어쩌다가 사람에게 감염되면 근육통 등의 증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선모충이 근육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것은 2~3주 정도로 그 기간은 선모충은 물론이고 그를 물리쳐야 할 면역계에게도 피곤한 나날이다.

면역담당자인 항체와 백혈구가 아무리 강해도 크기 면에서 개미와 63빌딩 정도로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큰 기생충을 내쫓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생충 역시 조그만 것들이 매일같이 몰려와서 깨작거리는 것이 귀찮다.

여기서 타협이 이뤄진다. 선모충은 캡슐을 만들고 그 안에 숨는다. 싸움에 지친 면역계도 더 이상의 공격을 중단한다. 환자의 증상도 이때 갑자기 좋아진다. 대신 선모충은 우리 몸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한다. 먹을 것을 주고 배설물을 내보낼 파이프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우리 몸은 이 요구를 다 들어주고 더 오래 사는 놈도 있지만 선모충은 1년 정도 그렇게 살다가 죽는다.

선모충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기생충이 인체에 들어오면 면역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데 이는 기생충과 숙주가 타협을 한 결과다.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은 면역계가 지나치게 강해져 자기 몸을 공격하는 것이니 기생충이 없어진 나라들에서 이런 질환들이 늘어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러다보니 자가면역질환의 하나인 크론씨병 같은 경우에선 돼지편충알을 이용한 치료가 시도되기도 하고 기생충의 단백질을 이용해 아토피나 천식을 치료하는 일도 머지않아 가능할 것 같다.

갑자기 기생충 얘기를 한 것은 인간, 즉 호모사피엔스 때문이다. 지구에는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등 몇 종의 유인원이 사는데 ‘호모’가 들어가는 종은 호모사피엔스만 남아 있다. 호모에렉투스를 공통조상으로 진화한 종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 두 종이다. 한때는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생각했지만 DNA 분석결과 두 종은 전혀 다른 계통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서로 공존했을까? 당연히 그렇다. 호모사피엔스는 1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해 유럽과 아시아로 진출했고 네안데르탈인은 주로 유럽에 분포했다고 하니 두 종이 상당기간 공존했으리라 추정된다.

외모가 떨어진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인간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 네안데르탈인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빙하기 때 얼어 죽었다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호모사피엔스가 자기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네안데르탈인을 살려두지 않았다는 것이 훨씬 더 가능성이 있다.

고릴라나 침팬지가 다른 곳에 사는 식으로 공존한 것에 비해 인간은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호모사피엔스가 식인습관을 지녀 네안데르탈인을 마구 잡아먹었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았던 데다 빙하기까지 겹쳤으니 가능성은 충분하다.

호모사피엔스의 호전성은 지금도 여전해 수많은 동물들을 멸종위기로 몰아넣었고 그것도 부족해 툭하면 전쟁을 일으켜 같은 인간들끼리 살상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국가를 만들어 전쟁하고 같은 나라라 할지라도 민족끼리 전쟁을 벌이며 단일민족인 경우에도 이념과 종교 또는 지역을 나눠 전쟁하는 것을 보면 호모사피엔스의 싸움은 끝날 것 같지가 않다.

기생충과 면역계, 이들은 적이지만 타협함으로써 평화를 이뤄냈다. 예수님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기는 힘들다 해도 원수와 싸우지 않고 서로 공존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명색이 만물의 영장인데 기생충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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