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법 개정안의 문제점
응급의료법 개정안의 문제점
  •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11.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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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윤 의원 등 의원 11명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냈다. 보호자가 치료를 거부해도 필요하다면 의료인 1인의 동의를 얻어 미성년 자녀에게 응급치료를 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의 취지는 미성년응급환자의 경우 부모에게 응급치료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 것이 의료계의 관행인데 이 과정에서 부모가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자녀에 대한 치료를 거부해 자녀의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심신상의 장애를 야기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법안의 취지는 누가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또 타당한 조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실제 의료현장을 잘 아는 임상의사로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 이렇다.

 
우선 이 법안의 취지대로 응급현장에서 수혈의 필요성을 판단한 의사의 결정이 언제나 옳다는 전제가 돼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응급현장을 비롯한 우리나라 의료현장 어디에서도 의료진들이 수혈에 대해 잘 이해하고 가급적 수혈을 피하려는 노력을 실천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한 마디로 정부도 의료진도 수혈에 대해 엄격하게 잘 관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수혈에 대해 너무도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꼭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에서 발표된 논문을 보면 똑같은 수술을 똑같은 조건 아래서 시행한 여러 병원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85%에서 수혈을 하더라는 것이다.

어떻게 치료방법에 있어서 15:85라는 극단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사실이다. 이는 의료진 사이에서도 수혈에 대한 견해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술 중이나 수술 후 출혈이 있으면 정부에서 권장하는 가이드라인에 맞게 고민하고 수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으로 미리미리 수혈해 버리는 것이 현장의 보통 모습이다. 이미 의료계 통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실혈상태에서도 수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성공적인 치료를 한 사례와 노하우가 밝혀지고 있지만 이는 대다수 의사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도 않고 또 관심 밖의 일이다.

특정 종교인들이 수혈을 절대 거부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수혈에 대해 대다수 의사들이 잘 하고 있다는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 법안이 만들어진다면 이는 수혈에 대한 우리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오히려 더디게 할 소지도 있고 현장에서 인권을 무시한 무분별한 수혈남용을 조장하는 상황이 될 지도 모른다.

어려운 일이다. 제언하자면 수혈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인지, 수혈 이외의 방법은 없는지, 보호자가 신뢰할 수 있는 기구를 통해 자문을 거쳐야 한다는 정도는 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할 것이다. 응급상황에서 그런 절차를 어떻게 거치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다행히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가능하리라 본다. 선진국에서 수혈의 문제점과 대체방법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수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 결과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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