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임상순씨를 기리며
고(故)임상순씨를 기리며
  • 조창연 편집국장
  • 승인 2013.11.2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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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의 길을 선택한 아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환자들을 살리고 싶을 겁니다.” 1999년 2월4일 오전 5시30분경 종로 사직터널에서 병원으로 출근하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상태에 빠진 아들의 장기이식을 결정한 홀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떼어준 주인공은 다름 아닌 연세대의대 세브란스병원 레지던트 1년차 임상순 씨. 그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으로 실려온 지 6일만에 그가 근무했던 병원 장기이식센터에서 아름다운 선행을 한 후 영면했다.

교통사고 후 닷새 동안 밤을 세운 어머니도, 그를 살리기 위해 중환자실에서 밤을 새운 레지던트 동료들의 노력에도 그는 깨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세상과 작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정부가 전공의 수급불균형 해소를 위해 전공의 정원을 감축하고 있다. 인턴의 경우 올 3458명에서 68명 줄어든 3390명을 내년에 선발한다. 레지던트는 올해 대비 133명을 줄여 3626명을 선발한다. 과목별로 살펴보면 전체 26개과 중 21개과의 감축이 결정됐다. 가장 많이 감축된 과는 외과로 -6.6%를 기록했다. 흉부외과, 가정의학과, 신경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피부과 등도 높은 감축률을 보였다.

전공의들은 엄밀히 따지면 의사가 아닌 학생이다. 인턴과정 1년, 레지던트 과정 4년간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병원에서 수련 후 전문의시험에 합격해야만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24시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응급실과 각 병동에 상주(?)하고 있는 입원환자들과 씨름하고 있다. 수련이라지만 연일 계속되는 진료로 인해 심신이 지쳐버릴 수밖에 없다. 전문의 준비를 해야 하는 3·4년차 선배들 몫까지 해야 하기에 부담은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잠도 못자고 병원에 출근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도 가슴이 아팠지만 동료들이 상순이를 살리겠다고 5일 밤을 중환자실에서 발버둥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거죠.” 세브란스병원 내과부장을 맡고 있는 한광협 교수의 말이다.

한 교수는 15년 전 제자를 그냥 보내야 했던 죄(?)스러움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내년 2월초 내과 레지던트 중 환자와 동료들에게 봉사하고 헌신한 사람을 위한 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상의 이름은 ‘임상순 상’. 연세의대 내과의국에서는 임상순 씨를 기리는 추모비도 세울 방침이다. 한 교수는 이 사업을 자신이 의대 내과주임교수가 되면 반드시 실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결국 15년 만에 그 꿈을 이룬 것이다.

병원들이 대형화되면서 전공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전공의 수를 감축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인턴제 폐지까지 검토하고 있어 전공의들의 업무량 증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병실을 늘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료진 확충은 인건비 상승 때문에 힘들다고 난색을 표하는 병원들에게 전공의들은 가장 활용도 높은 진료인력일 수밖에 없다.

병원 안팎에서는 “2~3월에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주사 하나 제대로 놓지 못하는 새내기인턴들이 수련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응급실에서 벌벌 떠는 전공의들을 만나면 화내거나 짜증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못 다한 인술의 꿈을 장기기증으로 대신한 임상순 씨를 기리는 사업도 좋고 추모비도 좋지만 대한민국 미래 의료계를 이끌어 나갈 전공의들에 대한 투자와 교육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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