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제언] 해외의료봉사 나가지 못 나가는 속사정
[현장제언] 해외의료봉사 나가지 못 나가는 속사정
  •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12.0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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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이 국가 재난 사태를 맞았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도 긴급의료구호 활동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의외로 국내 의료계는 차분한 모습이다. 예전 같으면 주요 대학병원의 경우 자체 구호팀을 꾸려 정부와 연합해 활동을 시작했어야 하지만 어느 대학병원도 그렇게 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가 없다. 의료구조활동이 조용해진 이유는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병원계의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일까.

구호활동을 하려면 최소한 억대 예산이 들기 때문에 경영상의 어려움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 당연히 문제가 된다. 드러내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정작 중요한 원인은 봉사를 할 수가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수년전에도 다른 나라의 재난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많은 대학병원들이 자발적으로 구호활동에 참여했다. 갑작스레 발생하는 일이라 예산을 마련하기가 쉽지가 않았겠지만 재난 상황에서 의료기관의 사회참여는 이미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많은 병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를 한 것이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타국의 재난상황에도 자발적인 의료진을 파견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인식될 정도로 사회적 책무를 잘하고 있다고 인정받은 바 있다.
박종훈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그렇다면 이번에는 왜 그런 활동이 주춤한 것일까. 사실 해외의료봉사나 구호활동을 준비 할 때에는 교통비와 체제비 등의 일상적인 제반 경비는 병원과 대학 예산에서 자발적으로 마련한다. 하지만 의약품의 경우 통상적으로 제약사에서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렇게 지원 받았던 것들이 수년이 지난 지금, 죄다 리베이트라는 명목으로 해당 병원들이 최근 검찰조사를 받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금액이 많지도 않지만 봉사하고 리베이트 수수라는 관점에서 조사를 받았으니 그야말로 ‘난감’했을 것이다.

검찰은 해당 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하는 회사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입장이다. 병원과 거래관계가 없는 제약회사에서 지원을 받은 것이라면 모를까 납품업체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어려운 ‘갑’의 입장에서 도와달라는 주문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병원 측 생각은 다르다. “거래도 안하는 회사에 봉사활동에 쓸 의약품을 기증해 달라고 하면 그것이 가능한 일이냐”는 반문이 생긴다. 의료계의 의약품 리베이트 관행은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하는 사안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시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리베이트 관련해서는 엄중하게 조사한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그것이 바로 리베이트 쌍벌죄라는 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최근 필리핀 재난에도 대학 병원들이 구호팀을 꾸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봉사도 철저히 청렴하게 해야 하는 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웃 나라의 어려움을 보고도 어쩔 수 없이 지켜만 봐야 하는 작금의 상황이 올바른 선진국 문화가 맞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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