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조원 하는 제약사가 없다니…
매출 1조원 하는 제약사가 없다니…
  • 박종훈 고려대 의대 교수
  • 승인 2013.12.1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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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에서 우연히 제약회사 임원과 마주 앉은 적이 있다. 통성명 하는 과정에서 필자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알고 “젊은 나이에 대기업 임원이 된 것이 무척 부럽다”고 했더니 “제약회사가 뭐 대기업인가요”라고 말한다. 유명 제약회사인데 그렇게 말하기에 “무슨 소리냐, 큰 회사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매출 1조원하는 제약회사가 없다”며 “1조 매출도 못하는데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나요?”라는 것이다.

박종훈고려대 의대 교수

그 회사는 나름 꽤 유명한 제약회사인데 전체 매출규모를 들어보니 스위스 모 제약사의 한 가지 제품 매출규모보다도 작았다. 유난히 처방이 많고 유독 약을 많이 먹는 나라라고 하더니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기본적인 시장규모가 있어야 산업이 클 수 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제약산업의 경우 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인구는 우리보다 한참 적은 스위스에 다국적제약사들이 다수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생산을 하는 제약회사는 이런데 오히려 약품도매상은 매출 1조원이 넘는 곳이 있다니 이 분야를 잘 모르는 필자 같은 사람으로서는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결국 생산업이 이 분야에서는 별로라는 소리다.

왜 유독 국내 제약회사 중에는 매출규모가 큰 회사가 없는 것일까? 유수의 다국적제약사가 가진 특징은 엄청난 규모의 연구개발자금을 쏟아 붓는 회사들이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제약회사는 다국적제약사들이 연구비에 투자하는 만큼의 큰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제약회사 임원이 얼핏 이런 소리를 한다. “제약산업을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정부도 그런 차원에서 관리해야 하는데 약의 관점에서만 보기 때문에 연구개발에 필요한 충분한 잉여소득을 올리기 어렵다”고.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그만큼을 회수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는 다분히 제약산업을 그저 최종단계의 약 소비관점에서만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이익을 낸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직원 월급을 주고도 돈이 남아도니까 리베이트를 준다는 의미일까? 복지부 관점에서 보면 약가를 가장 낮게 책정해 원활하게 공급하는 것이 맞지만 이런 구조 속에서 제약산업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글로벌 기업에 목마른 나라다. 충분한 재투자가 이뤄져야 발전이 가능한 제약산업에서조차 복지비 절감대상으로 보면 결국 늘 제자리걸음만 할 것이다. 특허가 풀리기를 기다려 복제약이나 만들고 다국적제약사의 약품을 받아 공급하는 판매회사 정도의 수준에서 우리의 제약산업이 머무른다면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박종훈 교수의 현장제언이 이번 호로 끝을 맺습니다. 1년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연재해주신 박 교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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