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한약재만을 고집할 수 없는 이유
국산 한약재만을 고집할 수 없는 이유
  • 한동하 한의학 박사
  • 승인 2014.02.0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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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사용된 한약재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했던 것 같다. 당시 중국약재를 당재(唐材)라고 했는데 세종이 당재를 대신할 우리 약인 향약(鄕藥)을 찾아보라는 어명을 내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재가 효능은 좋지만 비싸기 때문에 백성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책이 바로 ‘향약집성방’이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찾아낸 대표적인 한약이 바로 당귀다. 국내산 당귀를 토당귀(참당귀:승검초)라고 한다. 당연히 당재인 중국당귀도 있고 일본당귀(일당귀)도 있다. 이들은 같은 산형과로 모양이 비슷하지만 기원식물이 서로 다르고 효능도 다르다.


토당귀가 있지만 일당귀가 보혈작용이 가장 좋아 일당귀를 한약으로 사용한다. 신토불이가 무색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중국당귀는 한약 수급조절대상품목으로 지정돼 의약품이 아닌 식품으로만 일부 수입된다.


인터넷에 보면 “국산감초 구해요”라며 돌아다니는 이들이 있다. 약령시장에서는 “국산계피 있나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구할 수가 없다. 이것들은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것들이다. 


 
‘약방의 감초’라고 해 흔하게 사용되는 감초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감초는 중국북부, 몽고, 시베리아와 같은 추운 지역에서 잘 자라는데 우리나라는 토양이나 기후가 맞지 않다. 동의보감에도 ‘감초를 중국으로부터 들여다가 여러 지방에 심었지만 잘 번식되지 않았다. 함경북도 지역의 것이 그래도 낫다’는 내용이 나온다.


최고 품질의 감초는 바로 내몽고에서 생산되는 양외감초다. 감초의 지표물질은 글리시리진산 2.5% 이상, 리퀴리틴 1% 이상을 함유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일부 재배되고 있는 감초는 지표물질의 함량이 낮고 효과도 떨어져 약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계피도 향약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품질은 베트남의 엔바이(Yen Bai) 지역에서 재배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엔바이의 약어를 따서 계피의 등급을 수령이나 오일함량에 따라 YB1, YB2, YB3, YB4로 나뉜다. 이 중 YB1이나 YB2 등급을 한약으로 수입하고 시중에 식품으로 유통되는 것들은 YB4 이하 품질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계수나무는 계피나무와 전혀 다른 품종으로 약으로 사용되지 않으며 제주지역에서 계피나무를 시험재배하는 정도다.


후박도 마찬가지다. 국내에 후박나무가 있는데 이름만 후박나무일 뿐이다. 한약으로 사용하는 후박은 목련과다. 우리나라에서 후박나무라고 불리는 것은 녹나무과로 기원식물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목련과인 중국후박을 수입하고 있다.


이밖에도 전 세계적으로 지역에 따라 최고 품질을 보이는 한약재들이 있다. 녹용은 러시아 원용, 사인은 라오스, 육두구는 인도네시아산이 좋다. 생지황은 하남성의 회경지황, 우슬도 회경지역의 회우슬이 최고의 품질이다. 석고는 중국 응성석고가 최고다. 향약 중에서는 밀양대추, 정선황기, 구례산수유, 경북 의성작약, 충남 청양구기자, 금산·풍기인삼 등을 한약으로 사용한다. 


식품으로 유통되는 약재를 한약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시중에 유통되는 식품용 약재와 달리 한의원에 공급되는 의약품용 한약은 산지에 상관없이 세계 최고수준의 엄격한 기준으로 중금속과 농약 등 잔류오염물질검사 등을 통과해 안전성이 확보된 한약규격품들이다.


의약품용 한약재를 선택하는 기준은 국산이나 수입이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기원식물이면서 최고의 효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산이라도 기원식물이 다르거나 효능이 없다면 사용할 수 없다. 반면 수입한약이라도 확실한 기원식물이면서 최고의 효과를 나타낸다면 당연히 선택될 수 있다.


위에서 감초 등을 예로 들었지만 국산한약재만으로 구성된 처방은 불가능하다. 향약을 육성했던 조선시대에도 그랬고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안정성이 확보된 최고 품질의 한약이 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국내산 한약재만을 고집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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