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저당 잡는 ‘위험한 중독’
인생을 저당 잡는 ‘위험한 중독’
  • 김치중 기자
  • 승인 2013.01.18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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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중독에서 벗어나자 ①도박

20조원 달하는 사행산업…220만 도박중독자 ‘양산’
관련부처 ‘눈치보기’ 급급…전면적인 조직개편 시급 

‘돈이나 재물 따위를 걸고 서로 내기를 하는 일’ ‘요행수를 바라고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일에 손을 대는 것’. 도박의 정의다.
 
중독포럼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도박중독자는 22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에 따른 사회적비용만 78조2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53조에 이르는 불법도박까지 합치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피해가 이처럼 큰데도 사행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점이다. 민주통합당이 지난해 11월 ‘800만 중독자시대, 해결책은?’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정책간담회에서 인제대학원대학교 박민수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최근 10년간 사행산업규모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으며 도박중독으로 인한 개인파산, 가족해체, 범죄 등 사회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스포츠경향 이은진 기자

도박중독자 220만명…장외발매소 급증 매출↑
 
국세청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 등의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경마·카지노·경륜·경정 등 4대 사행산업의 매출액은 13조3362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각각 3조원대 규모인 복권과 스포츠토토까지 더하면 연간 사행산업 규모는 20조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사행산업 매출증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장외발매소’를 꼽고 있다. 2000년 36개에 불과했던 장외발매소가 2010년 90개로 증가했기 때문. 전문가들은 “해가 갈수록 장외발매소 매출이 급속하게 늘고 있다”며 “여가가 아닌 도박만을 위해 장외발매소를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도박중독을 유발할 수 있는 사행산업 전반에 대한 정부의 인식 개선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전 국민의 사행활동 평생경험률이 86.5%에 달하고 도박중독자가 220만명에 이르고 있지만 중독예방과 치료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 측에서 손을 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감위 ‘총량제한제’ 유명무실…허가·운영권 분산도 문제
 
가장 큰 개선이 필요한 곳은 국내 사행산업을 통합 관리하고 있는 사감위. 중독포럼에 따르면 사감위는 2013년까지 GDP(국내총생산)의 0.58%수준까지 사행산업 매출감소를 목표로 사행산업 매출 총량제한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지난해 경마?경륜?경정?카지노?복권?체육진흥투표권 등 6대 사행산업의 매출총량은 18조3000억원으로 허용매출총량에서 4120억원을 초과했다. 국내총생산량의 1.5%를 넘는 규모이다.
 
사감위는 초과매출에 대해 부담금을 징수하고 다음해 매출총량비율을 감액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까지 누적매출 초과액수가 7765억원이지만 실제 징수금액은 400분의 1도 안되는 19억300만원에 불과하다.
 
총량비율 감액권고실적도 전무하다. 사감위는 강원랜드의 매출액을 제한하기 위해 2010년과 2011년 2회에 걸쳐 휴장과 영업시간 단축을 권고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스포츠토토에 대해서도 2010년 고정배당률상품 발행횟수를 하향조정하라고 권고했지만 이 역시 무시당했다.
 
전문가들은 사행산업 허가와 운영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여러 정부부처에 분산돼 사감위의 통합관리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경마는 농림수산식품부가, 카지노?경륜?경정 등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복권은 기획재정부가 관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민수 교수는 “사행산업을 관할하고 있는 각 부처 차관들이 사감위 당연직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현실이 이렇다 보니 사감위가 일관된 정책수립은 물론 각 사행업체들 간의 규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감위에 복지부·여성부 등 배제돼···사무처 운영도 문제
 
사감위 사무처 운영도 문제다. 현재 사감위 사무처에는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파견돼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파견기간은 1년에서 1년6개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에는 위원회 권한에 속하는 사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도록 돼 있지만 사실상 사행산업을 관할하고 있는 관련부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중독질환의 치료재활과 사회복지서비스를 주관하고 있는 보건복지부와 가족 및 청소년에 대한 포괄적 사회서비스를 관장하고 있는 여성가족부는 물론 법률시행을 관할하고 있는 법무부 등이 사감위에 원천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이와 관련 중독포럼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사감위 구성을 보면 직접적 인허가권한을 가진 부처가 고유기능과 관계없이 실질적 인허가 적용, 기금징수, 기금용처의 결정 및 집행, 치료보호시설 설치, 서비스 제공까지 배타적으로 포괄하는 이해당사자 중심형태”라며 “국가 사행산업을 규제 감독하는 단체로서 기준과 제도를 준수하지 않는 산업체에 대한 강제력이 없고 조정권고 시에도 사행산업체와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행정부처장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민수 교수는 “유전적으로 도박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는데 사회와 국가가 도박을 장려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유전적으로 도박에 취약한 사람들 대다수는 도박을 끊지 못하고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와 국가가 도박 예방과 대책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야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
“마약만큼 위험한 도박 가정에서부터 차단을” 

 

(자료출처: 중독포럼)


“도박중독이 무서운 것은 가정폭력, 학교폭력, 성폭력 등 사회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지난 6일 기자를 만난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도박중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정에서부터 도박중독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식당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아이들이 떠들거나 울면 부모들이 스마트폰을 아이들에게 주죠. 아이들은 정신없이 스마트폰에서 게임을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을 방치하면 어릴 때부터 도박에 중독될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인간의 뇌 안에는 보상회로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가 자극되면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분비돼 쾌감을 느낀다”며 “도박이나 사행성오락은 보상회로를 자극해 도파민을 분비하는 작용이 매우 빠르고 강력하다”고 경고했다.
 
강력한 보상경험에 노출되고 나면 시간이 걸리거나 보상정도가 강력하지 않은 다른 생산적 행위에 대한 매력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에 도박중독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큰 14세 이하 아동들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경제가 어려운 사람이 도박에 빠져들면 병적도박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우리사회가 도박중독의 무서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도박은 마약과 함께 병적 중독에 빠질 위험이 가장 큽니다. 사회적으로 도박을 너무 쉽게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가장 싸고 강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도박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자체 등에서 부모와 아동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 확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박 등 중독문제는 국가경영철학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중독자들을 단순히 보호시설에서 치료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국가가 사행산업을 권장해 국민들을 중독에 빠뜨리면 안됩니다. 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78조원에 달합니다.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의 우리 자화상이죠. 중독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이 마련되지 않으면 중독으로 인한 가정파탄과 경제?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TIP>도박중독의 기준
 
- 도박에 집착한다
- 바라는 흥분을 얻기 위해 액수를 늘린다
- 도박을 조절하거나 줄이거나 중지하려는 노력이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안절부절 못하거나 과민해진다
- 문제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나 불쾌한 기분을 덜기 위한 수단으로 도박한다
- 돈을 잃은 후 만회하기 위해 다음날 도박판으로 되돌아간다
- 도박에 관여한 정도를 숨기기 위해 가족들, 치료자 또는 타인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 도박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위조지폐, 사기, 도둑질, 착복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른다
- 도박으로 인해 중요한 관계가 위태로워지거나 직업적·교육적 기회나 출세기회를 상실한다
- 도박으로 인한 절망적인 경제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 조달을 남에게 의존한다 (자료출처: 중독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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