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마당 터줏대감 길고양이 ‘시도’
우리 집 앞마당 터줏대감 길고양이 ‘시도’
  •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2.11.12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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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 큰일 났어요! 평일 오전 집에서 걸려온 전화 속 목소리는 아주 다급했다. “동엽이가 아이들을 모두 물어 죽였어요.” 이 무슨 살벌한 소리인가?
 
우리 집은 학교 근처 아파트 밀집지역의 1층 아파트다. 결혼을 앞두고 덩치 큰 아프간하운드 두 마리에 고양이까지 함께 살 집은 사실 서울 시내에서 저택이 아니라면 불가능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아직 별다른 문제없이 이들 모두를 도시의 작은 아파트에서 데리고 살고 있다.
 
이런 독특한 가족구성 때문에 신혼집은 당연히 1층이어야 했고 작지만 각종 나무와 자연석으로 멋들어지게 조경된 조그만 마당이 딸린 지금 이 집은 우리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한편으로는 잘 분양되지 않는 아파트 1층을 분양해 보려는 시공사의 꼼수에 우리가 걸려 든 것일지도 모른다.
 
이사 온 다음 날 우린 이 작은 마당의 주인이 따로 있음을 알았다. 베란다를 통해 우리 아프간들이 마당으로 내려가 찾아낸 깊은 구멍 속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모색 조합이 멋들어진 암컷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흔히 이런 모색조합의 고양이를 부르는 용어 ‘턱시도’ 라는 단어에서 생각해낸 ‘시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시도는 길고양이지만 우리 집 마당을 본거지로 삼고 부지런히 활동하는 아직 어리고 건강한 길고양이였기에 따로 먹이를 챙겨주는 등의 관심은 오히려 불필요해 보였다.
 
그렇게 잘 지내던 시도는 다음해 이른 봄 자신을 꼭 닮은 딸과 아들을 우리 마당에서 출산해 이제 막 젖을 뗄 시기를 맞고 있었다. 이유식 구하기가 싶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우리 부부는 어린 고양이용 사료를 매일 아침저녁으로 굴 입구에 놓아줬다. 그러면 굴 입구로 새끼들이 걸어 나와 먹고는 다시 후다닥 굴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평소 시도의 아지트인 이곳에 종종 출몰하는 우리가 동엽이라고 이름 붙인 덩치 큰 수컷고양이가 이 어리디어린 시도의 새끼들을 한 번에 공격해 모두 몰살시켜 버린 것이다.
 
주변에 다른 수컷고양이가 없어 우리는 동엽이가 시도 새끼들의 아비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잘못됐거나 아니면 젓 뗄 무렵 다시 찾아온 시도의 발정기에 짝을 맺기 위해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충격이었다.
 
보통 수컷고양이들은 주변에 새끼를 부양하고 있는 발정기 암컷고양이를 발견하면 새끼들을 해하고 그 암컷과 교배하려는 습성이 있다.
 
하루아침에 새끼들을 잃은 시도는 어떨까? 그녀는 이후 가을이 될 때까지 우리 마당을 찾지 않다가 어느 늦은 가을 반갑게도 다시 우리 마당, 자신의 굴을 찾아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녀는 다시 매년 봄, 마당에서 피어나는 튤립의 꽃대에 몸을 기대며 베란다 계단에 누워 따사로운 햇살에 잠들고 가을낙엽 무더기 속에 파고 들어가 얼굴만 내미는 행동들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우리 마당에서 지내왔다.

 

눈먼  길고양이 ‘시도’ (사진제공 = 황철용 교수)

그런 시도가 2년 전 가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행복하게 마당에서 쉬거나 노는 모습은 없어지고 움직임이 이상하게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워낙 사람을 경계해 4년 동안 한 번도 만져볼 수 없던 시도였지만 조심조심 소리 없이 다가서는 내게 반응하지 않는 시도. 이미 그녀는 양쪽 눈에 심한 손상을 입고 눈이 멀어 있었다.
 
정상적인 길고양이가 2살에서 3살을 넘기기 힘들다고 하지만 최소한 시도는 우리와 함께 4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눈먼 길고양이가 혼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겠는가? 이날부터 우리는 시도에게 매일 물과 함께 먹을거리를 제공해줬다. 그토록 곁을 주지 않던 시도였는데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듯 물과 음식을 먹을 때 귀와 몸을 만져주는 내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 
 
고양이에게 먹을거리를 준다는 걸 안 이웃들의 항의와 고양이가 있는 것을 알고는 집에서 먹다 남긴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다 놓는(먹고 살라는 걸까? 죽으라는 걸까?) 어느 무지한 이웃들에게 보란 듯이 우리 시도는 그렇게 또 두 해를 잘 견뎌냈다.
 
올해 추정나이 8세. 눈먼 길고양이 시도는 올 여름 장마가 시작돼 굵은 빗줄기가 내리던 시기에 어디론가 사라졌고 매일매일 시도의 밥그릇 사료는 비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그렇게 그녀는 장마가 끝나고 그토록 좋아하던 낙엽 가득한 계절이 왔건만 다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내년에는 다시 올까? 아니면 이제 하늘나라에서만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려나? “보고 싶다 시도야!”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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