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는 애견에게 약일까, 독일까?
포도는 애견에게 약일까, 독일까?
  •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2.11.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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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이 끝나갈 무렵 마트에서 거봉포도 한 송이를 사왔다. 일반포도에 비해 거봉은 알맹이도 크고 무게도 꽤 나가 한 송이만 먹어도 배가 부를 듯 했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끝내 그 거봉포도를 먹지 못했다.
 
우리 집에는 아프간하운드종 애견 두 마리가 있는데 둘 모두 사람나이로 치면 환갑에 가까운 늙은 노견들이다. 이 중 나이가 좀 더 많은 녀석은 수컷으로 우리집 개와 고양이들 중 가장 크고 무겁지만 실상 서열은 동생인 암컷보다 낮다. 
 
문제는 이러한 서열로 인해 둘에게 먹을거리를 주면 거의 일방적으로 암컷이 음식을 독차지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이 주는 시간을 달리하고 수컷이 먹이를 먹을 때는 반드시 둘을 격리시켜야 한다. 이렇게 철저히 관리하지만 종종 서열순위도 최상위이며 끊임없는 식탐을 보이는 암컷 ‘키씨’는 종종 먹을거리로 인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곤 한다.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그날도 잘 씻어 그릇에 담아 둔 거봉포도 한 송이를 흔적도 없이 중간에 가로챈 녀석도 분명 키씨였다. 키씨의 얼굴 밑 목에서 내려와 가슴까지 이어진 흰색의 아름다운 긴 털이 포도주스 색으로 물들어 있고 행복한 모습으로 입 벌리며 앉아 있는 잇몸 주위에는 포도껍질과 포도씨 잔재로 가득했으니 분명 이 녀석이 범인이었다.

포도는 당질과 각종 비타민류, 주석산, 구연산, 칼륨과 철분이 풍부해 피로회복에 좋은 과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이렇게 유익한 포도가 1990년 후반부터 개에게서는 치명적인 급성신부전(콩팥부전)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다수의 중독 사례가 나타나고 있어 애견에게는 금기시되는 대표적인 과일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집 식탐대마왕 키씨는 1킬로 가까이 되는 거봉 한 송이를 한 번에 드셔주셨던 거다. 다행히 몇 달 지난 지금까지도 별 이상이 없어 다행이지만 위험성을 모르고 주거나 이렇게 사고로 인해 원치 않는 음식을 먹게 돼 병원을 찾는 애견들이 종종 있다.
 
애견들이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먹어 병원에 오는 가장 흔한 경우는 양파나 파 종류를 먹고 탈이 나는 경우이다. 양파를 비롯한 파 종류에는 치오설페이트(thiosulphate)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이 개나 고양이의 혈액 내 적혈구를 파괴해 심각한 혈성 빈혈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실제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먹다 남은 자장면을 애견에게 주거나 자발적으로 먹은 경우가 가장 흔한데 치오설페이트는 조리과정 중 가열하거나 탈수해 건조시킨 가루에서도 독성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자일리톨껌이 치아건강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인기다. 하지만 여기에 포함돼 있는 자일리톨성분은 개에게 저혈당과 아울러 심한 간 손상과 함께 혈액응고장애를 야기한다. 몸집이 작은 애견의 경우 시중에 판매되는 자일리톨껌 두세 조각을 먹고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 특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만일 애견이 자일리톨껌을 섭취하고 12시간 내외에 구토와 저혈당증상인 침울, 보행장애 및 경련증상이 나타날 경우 지체 없이 동물병원을 찾아 응급처치를 받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애견가들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사항들을 평소에 알면서 조심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먹거리 이외에도 주의를 당부하고 싶은 것은 집에서 사람들이 복용하는 약제류다.
 
얼마 전 필자는 임상수의학회에 국내에서 최근 시판되기 시작한 사탕형태의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의 애견중독사례를 보고한 바 있다. 이 약제는 현재 감기 등으로 인한 인후두염 시 목통증을 완화시키는 제품으로 꿀과 향료를 혼합해 사탕형태로 복용하기 쉽고 효과가 좋아 많은 사람이 찾는 약품이다.
 
그러나 이 맛난 사탕(?) 한 알은 애견에게 심한 위장관궤양에 의한 혈변증과 극심한 빈혈을 불러와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음을 명심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반려동물은 아이와 같다.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면 무조건 입으로 가져가는 반려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는 가정에서는 음식물 관리와 함께 사람이 복용하는 약제 관리에도 더욱 신경 써 불행한 사고로 가족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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