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기생충의 오해와 진실
고양이기생충의 오해와 진실
  • 승인 2012.12.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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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5월의 어느 하루, 그날도 동물병원은 오전부터 무척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원무과를 통해 진료실에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질문의 요지를 들어보니 어제 밤 모 방송국 저녁뉴스시간에 고양이로부터 인간에게 전염 가능한 기생충성질환이 보도됐는데 정말 그 질환이 위험하고 또 고양이를 통해 쉽게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느냐는 거였다.  

정확한 정보에 기인하지 않고 단지 감염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보도되는 ‘반려동물을 통한 질환감염 위험성’에 대한 뉴스들이 이전에도 종종 있어 왔기에 또 그중의 하나라고 생각됐지만 이번 경우는 그 성격이 이전 보도들과는 달라보였다.


우선 주요방송사 중 한 곳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저녁뉴스시간에 심도 있게 보도됐으며 외국자료가 아닌 국내자료를 인용했고 그 위험성도 유산, 기형아 출산, 망막신경손상 등 실로 무시무시하게 제시됐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기생충은 톡소플라즈마(Toxoplasma)로 톡소포자충이라고도 부르는 원충류에 속하는 기생충이다. 이 기생충이 주목 받는 이유는 동물과 인간이 함께 감염될 수 있는 인수공통전염병 중 하나이며 고양이과 동물이 최종숙주이기 때문이이다. 즉 고양이과 동물에서 기생충의 최종 생활사인 번식이 이뤄지고 다른 동물에게 감염될 수 있는 충란(蟲卵)을 배설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이 기생충에 감염되면 감염된 사실을 모를 정도로 대부분 경미한 증상이나 무증상으로 지나가게 되지만 면역억제제 또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나 면역력이 극히 저하된 사람에서는 망막변성, 림프절염 등의 증상이 발현되기도 한다. 또 아주 드물지만 항체가 없는 임산부가 임신 초기에 감염되면 유산이나 태아뇌수두증과 같은 태아기형이 유발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무서운 기생충의 최종숙주가 고양이고 근래 한국인들의 이 기생충에 대한 항체생성율이 20%가 넘는다는 그 보도내용은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왜 이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야 하는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섭게 전달됐다. 병명도 ‘고양이기생충’이라는 과학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말이다.
 
톡소포자충의 종숙주가 고양이과 동물인 것은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이 기생충에 감염됐을 때 약 2주 정도만 감염을 일으키는 충란을 배출하며 이후에는 충란을 배출하지 않는다. 즉 감염됐더라도 몇 주가 지나면 인간에게는 톡소포자충을 전파할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톡소포자충 감염은 고양이에서 유래되기보다는 사실 완전히 익히지 않은 육류 섭취, 잘 세척되지 않은 톡소포자충 충란에 오염된 채소와 과일, 오염된 오수와 흙의 접촉을 통해 대부분 이뤄진다는 게 정설이다. 즉 톡소포자충의 충란이 우리 주변의 흙과 물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이들이 우리가 섭취하는 과일이나 채소, 육류소비동물에게 전파돼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심지어 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원관리 등 흙을 다루는 작업을 하는 경우에도 감염될 수 있다. 
 
따라서 톡소포자충의 감염이 걱정된다면 고양이를 멀리할 것이 아니라 매일 먹는 채소나 과일을 보다 깨끗하게 세척하고 물은 가능한 끓여 먹으며 육류 생식을 삼가하고 육류조리 시에는 장갑을 착용하고 조리 후에는 조리기구도 다른 조리기구와 분리해 완벽히 세척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예방법이다. 
 
요즈음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톡소포자충에 노출될 기회 자체가 희박하다. 설령 어느 순간 감염됐더라도 사람에게 유해한 충란을 계속 배출하고 있는 고양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이 도도하지만 사랑스러운 털 뭉치들을 톡소포자충 감염의 원흉으로 지목해 멀리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방송이 나간 후 애묘인(愛猫人)들 뿐 아니라 각 동물관련 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결국 며칠 지나지 않아 정정보도가 나오게 됐다. 그 정정보도를 우리 집 고양이 ‘공주’를 내 무릎에 올린 채 지켜보며 잘못된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변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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