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음식 거부하면 ‘잇몸질환’ 의심하라
갑자기 음식 거부하면 ‘잇몸질환’ 의심하라
  •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13.01.21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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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동물 ‘치아관리’ 필요…어릴 적부터 양치하는 습관 길러야

우리 집 먹보 ‘키씨’가 어찌된 일인지 오늘 아침에는 필자가 나름 정성스럽게 준비한 아침밥을 보고서도 먹으려 달려들지 않는다. 평소 하도 먹을 것을 좋아해서 자기 밥그릇을 들고 있는 나를 보면 제자리에서 1m 가까운 높이로 펄쩍펄쩍 뛰며 빨리 달라 보채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건 필히 좋지 않은 징조임에 틀림없었다.
 
아홉 살 된 대형견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키씨’는 평소 무척 건강한 편이지만 어릴 때부터 앓아온 고질적 질환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치주질환이다. 세 살 때부터 시작된 치주질환으로 인해 오늘 아침과 같이 먹이를 거부하는 일이 종종 있어 왔기에 필자는 주저 없이 키씨의 입을 열고 잇몸 상태부터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된 염증의 후유증으로 잇몸이 내려앉고 이 뿌리가 제법 들어난 위턱 큰 어금니 주위로 농양주머니가 차올라 열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 주위 잇몸들이 부어 올라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른쪽 얼굴 아래도 부어올라 눈도 반쯤 감겨있었다.
 

양치질에 거부감이 생기지 않게끔 어린 나이 때부터 천천히 반려동물 전용칫솔과 치약에 익숙해 질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덕분에 키씨는 그날 그 좋아하던 아침도 거른 채 필자와 함께 동물병원으로 출근하여 치과 (대학 동물병원이라 수의치과가 따로 개설되어 있음)에서 치주질환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치료 후 염증은 빠르게 회복됐고 키씨는 언제 그랬는지 모를 정도로 왕성한 먹보로 다시 돌아왔다.
 
수의사와 함께 생활하는 반려동물들도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곳저곳 아픈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치주질환은 평소의 관리 부족에 기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키씨가 만성적인 치주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은 수의사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키씨가 본격적으로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생활하게 된 시점이 세 살 나이가 훨씬 지나서 부터였고 그 전에는 스케일링은 고사하고 양치질 한번 해 본 적이 없기에 약간의 변명의 소지가 있긴 하다.
 
키씨의 치주질환과 같이 어린 나이 때부터 충분한 관심과 관리를 통해 예방할 수 있는 구강질환으로 고통 받는 반려동물들이 점점 늘고 있다. 평소 주기적인 예방접종과 목욕, 중성화수술 등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관리법들은 잘 숙지하고 실천하는 편이지만 치아건강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에서는 사람과 비교 시 충치가 발생할 확률이 아주 낮은 편이다. 이는 개와 고양이 치아가 사람과는 달리 대부분 원추형이라 음식 찌꺼기가 치아상부에 부착될 확률이 낮고 치아 사이의 간격이 넓으며 침의 pH가 상대적으로 높아 충치 원인균에 의해 발생되는 산성 물질을 쉽게 중화시키기 때문이다.
 
또 충치의 원인이 되는 탄수화물과 당 섭취 자체가 사람에 비해 훨씬 적은 것도 충치가 잘 발생하지 않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발생확률이 적을 뿐이지 개와 고양이에서도 충치가 발생할 수 있고 발생 후에는 사람에서와 같이 치아 손상이 급속히 진행된다.
 
사람에게 양치질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와 고양이에서도 어린 나이 때부터의 양치질과 주기적인 스케일링을 통한 꾸준한 치아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동물은 치아에 통증을 느끼거나 불편함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키씨와 같이 음식 섭취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흔한데 고양이에서는 이런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기에 평소 치아관리에 더 노력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치아관리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양치질에 거부감이 생기지 않게끔 어린 나이 때부터 천천히 반려동물 전용칫솔과 치약에 익숙해 질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 시작 때부터 칫솔과 치약을 사용하면 거부감으로 평생 양치질을 싫어할 가능성이 크기에 우선은 주인의 손가락이나 젖은 거즈 등으로 간단히 양치하는 방법부터 시작해 익숙해지면 본격적으로 하루 한번 전용칫솔과 치약으로 꾸준히 양치질을 해 주는 것이 좋다.
 
또 최소 일 년에 한번 이상은 동물병원을 찾아 치아 상태와 잇몸 상태를 확인하고 치석이 심한 경우 스케일링을 실시해 주는 것이 좋다. 사람과는 달리 개와 고양이는 스케일링 시 전신마취를 실시해야 하기 때문에 꺼려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마취 전 사전검사를 통해 마취 위험도를 평가하고 호흡마취 하에서 스케일링이 실시된다면 대부분 안전하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잠자리에 들기 전 우리 집 세 아이들 (애견 둘에 고양이 하나)은 오늘도 얌전히 ‘치카치카’ 양치질을 하고 있다. 물론 양치질을 조금 부담스러워 하는 고양이 ‘공주’만이 싫은 표정으로 거부 의사를 보이기도 하지만 예외는 있을 수 없다.
 

<황철용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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