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들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들
  • 장은영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승인 2014.05.09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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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 잘못이다. 다 내 탓이다.’라는 생각에 죄책감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경험한다. 주로 무언가 잘못된 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될 때 인간은 죄책감을 느낀다.

의도했든 아니든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다치면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심한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후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자신 때문에 누군가 큰 손해를 봤거나 비극적인 사건이 생겨났을 때 우리는 죄책감을 느낀다. 혹은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해를 끼치지 않았더라도 자신이 지닌 기준이나 양심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 후에도 죄책감을 경험한다.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들을 잘 살펴보면 이 감정이 꽤나 뒤늦게 발달되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감정을 담당하는 두뇌가 발달해야 하고 사건의 인과관계를 기억해두었다가 추리할 수 있는 뇌 부위도 발달해야 한다. 규칙이나 규범을 배우고 이해하며 기억할 줄 알아야하고 자신의 행동을 규범과 비교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이 때문에 공포감과는 달리 죄책감은 상대적으로 뒤늦게 발달하고 출현한다.

 

이러한 죄책감은 빈약해도 문제요, 과도해도 문제다. 최근에는 미디어를 통해 보통사람들보다 놀라울 정도로 죄책감이 빈약한 이들을 목격하곤 하기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죄책감이 사회에 어떠한 해를 끼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이와 반대로 죄책감을 과도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다. 과도한 죄책감은 우울감을 자주 동반한다. 죄책감에서 우울감이 비롯되기도 하고 우울감이 심하다보니 모든 일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죄책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감이나 우울증이라는 개인의 취약성과는 독립적으로 죄책감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경우가 있다. 즉 건강하게 살아왔고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해온 사람들도 죄책감을 느끼며 죄의식과 자책으로 괴로울 때가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심각한 외상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나 희생자의 가족·친지들이 경험하는 죄책감이다.

이들은 피해자인데도 왜 죄책감을 경험할까? 흔히 본래 나약하고 우울증과 같은 문제 때문에 자기 탓을 하게 됐다고 짐작하기 쉽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이나 우울증은 본래 이들이 지녔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본래 세상에 대해 이해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작동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인간은 세상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둘러싼 인과관계를 이해하고자 한다. 인과관계를 알면 어떤 조건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깨닫기 때문에 이후로는 그 결과를 초래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도록 노력해 불행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제가 작동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범죄사건 피해자들의 반응이다. “내가 바보 같았어요. 내가 최대한 저항하지 못한 탓이에요”라고 사건을 이해하고 자신을 자책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며 때로는 제삼자도 범죄사건의 원인이 충분히 저항하지 못한 피해자에게 있다고 믿기도 한다. 이는 충분히 저항하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의 바람이 작동한 결과다. 이로 인해 피해자에게 재차 고통을 주게 되지만 그 배경에는 인간의 단순한 욕구들이 부분적으로는 숨겨져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와 희생자의 가족들이 겪을 죄책감이 심히 우려스럽다. 흔히 사건이 전반부와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가면서 그 사건을 정리하고 이해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건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수록 인간은 무언가 책임을 돌릴만한 것들을 찾아내려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 또는 자신만 살아남았다고 슬퍼하는 생존자들은 책임을 자신의 내부로 돌리게 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사건을 이해할 수 없고 납득이 가지 않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분들이 행여 죄책감을 호소하더라도 이를 개인의 취약성이나 나약함으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이들이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을 만큼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게 드러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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